Give & Take 006, 2012
모기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죽이거나 혹은 물리거나’라는 양자택일 앞에서 전쟁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내 피를 앗아간 모기를 잡으며 안도감과 쾌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세상 모든 전쟁이 그렇듯 끝내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는 이 싸움 또한 복잡한 질문을 유발한다. 선의의 폭력이란 없기에 이 미물을 살생하는 것도 온당치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마냥 물리고만 있는 것이 답일까. 아니라면 모든 번식처를 미리 차단함으로써 종의 멸종을 유도하거나 직접 피를 보지는 않는 좀 더 점잖은 살생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까.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화생방에 의존한 살생은 과연 모기에게 덜 고통스러운 것일까.
정지필은 이렇듯 꼬리를 무는 질문에 한 가지를 덧댄다. 모기의 죽음을 작품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백과사전적 기록인가, 시각적 유희인가 아니면 가장 극단의 폭력인가. 그는 작업을 위해 모기가 기꺼이 자신의 살갗 위에서 만찬을 즐기도록 고통을 감수한다. 그 대가로 모기는 생포된 채 유리판 사이에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작품 속 풍부한 계조의 붉은 피는 작가의 것이니, 그야말로 모기와 작가가 피를 나눈 생물학적 합작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사연이야 어떻든 크게 확대해 놓은 그의 원본 작품은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아름답다. 평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던 모기의 형태는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운 발견까지를 가능케 한다. 모기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의 죽음은 정지필의 사진에 이르러 유쾌하지만 진지하게 큰 사건으로 변한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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