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민, 관계의 감각 2017, 리넨에 유채, 38×46㎝
화가가 그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한 가지를 흔들리지 않고 실천할 수 있기를 오랫동안 원해왔다’고 기술한 문영민은 무릎 꿇고 엎드린 남자의 뒷모습을 그려왔다. 작가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화면에 담으며 일상에서 되풀이되는 한 부분을 회화라는 반복 행위로 옮기는 실천을 수행 중이다. 반복은 시간을 살아내는 일이자 경험을 축적하는 일, 성찰의 도구, 혹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특정할 수 없는 어떤 공간 안에서 한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다. 남자는 절을 하는 중이다. 한국사회에서 절은 익숙한 동작이다. 제사상 앞에서, 장례식장에서 죽은 자를 애도하며, 남겨진 자를 위로하며 사람들은 몸을 숙인다. 크고 작은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에서 절을 하는 행위 역시 익숙하게 일상 안에 스며들어 있다. 작가는 절하는 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몸을 낮추는 동작’에 깃들어 있는 의미를 돌이켜 보았다. 유년 시절 경험한 제사의 과정, 엄숙하게 절하는 행위에서 어떤 무거움과 염원의 마음을 보았던 작가에게 절을 하는 모습은 애도의 보편적 표현이었다.
작가의 질문은 한 영혼을 향해 절을 하면서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면, 절하는 사람의 마음이 영혼에게 가 닿을 것인지로 이어졌다. 작가에게 절을 한다는 일은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문득 낯설어지고, 의미를 포착할 수 없는 모호하고 불가사의한 행위로 다가왔다. 그의 작업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이 되었고, 알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작업이 되었다. 동일한 장면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시간을 가진 작가는, 절하는 행위를 통해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인간의 뒷모습을 타고 남은 재와도 같은 회색빛에 담았다. 흥분과 격정이 가라앉은 회색으로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는 그렇게 담담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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