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외국인 지팡이, 1993(1994년 스톡홀름에서 작품을 시연 중인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방인의 기분을 느껴보지 않는다면, 이방인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1943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규범 사이 긴장감, 그 긴장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했다.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고민하며 작업하던 그는 1977년 캐나다로 이주한 후 이방인으로 살면서 사회 안에서 상처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외국인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분위기, 이방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억압하는 현실을 본 작가는 이방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구를 만들어 ‘문화적 보철기구’라고 명명했다.
‘외국인 지팡이’는 이방인이 사용하는 일종의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의사소통 기구다. 작가는 이 지팡이 안에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물건들을 넣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주민들은 지팡이 속에 넣은 자신의 물건들을 매개로 자신을 소개하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보디츠코에게 말하기는 공동체 일원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지만, 이방인들은 공공의 장소에서 자신들만의 목소리나 이미지를 갖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투표권도 가질 수 없는 이방인들은 발언권을 박탈당한 채,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지만, 침묵하기에 길들여져 있었다. ‘외국인 지팡이’는 이방인들에게 ‘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그들이 침묵의 늪에서 한 발짝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독려했다. 그렇게 보디츠코의 작업은 이주민들이 그들 스스로 가장 강력한 억압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각성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적 보철기구가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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