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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마 아프 클린트, 미래를 위한 그림,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설치 전경 ⓒ데이비드 힐드

 

누군가가 지금 이 시대, 이 세상은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마저도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면,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 사람의 평가로부터 초연하게, 자기 확신과 미래 비전만으로도 뒤틀리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으려면 어떤 능력을 연마해야 할까.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출중한 예술가 지망생들이 진학하던 왕립미술학교에 입학, 우등생으로 졸업한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평가받는 시점을 스스로 유예시키기로 했다. 풍경화·삽화·초상화에 능했던 그는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생명과 우주가 만들어내는 유대감을 비롯한 영적인 세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과학적 근거를 놓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기하학적 무늬, 생명체의 패턴, 문자를 혼용한 도상을 활용해 다른 영역과의 소통가능성을 실험했고 이는 추상화의 형식으로 구현됐다.

 

종교와 과학을 분리하지 않는 태도로 작업에 매진한 그는 예술과 정신성, 정치, 과학 시스템 사이의 관계망을 탐색하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형태를 찾아나갔다. 하지만 그가 구현한 추상적 회화는 당시의 미술계 안에서는 해독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한 영역이었다.

 

시대가 아직 그의 작품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한 작가는 사후 20년간 작품을 봉인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1980년대 중반 이후 1200여점에 이르는 그의 추상화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자 전문가들은 그를 ‘추상화의 대부 칸딘스키, 몬드리안보다 앞서 추상미술을 선보였던 선구자’라고 추앙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대규모 회고전 앞에서 관객들은 역사 뒤편에 묻혀 있다가 화려하게 등장한 한 여성 예술가의 인생극장에 탄복한다. 이 장면이 작가가 기대한 ‘자신’을 알아주는 시대와의 조우일까. 작가만이 알 일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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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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