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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를 라거펠트

한 해에 6번의 샤넬 컬렉션 쇼, 5번의 펜디 쇼, 2번의 개인 브랜드 쇼 기획은 기본이고, 패션 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열고,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브랜드 캠페인을 기획해온, 샤넬보다 더 오래 샤넬을 이끈 카를 라거펠트가 작고했다.

 

카를 라거펠트, 노란 모직 코트, 1954 ⓒKunst-und Ausstellungshalle der Bundersrepublik Deutschland GmbH

 

그는 1954년 국제 양모 사무국(IWS)에서 주최한 공모전 코트 부문에서 수상하며 패션계에 발을 들였다. 호주산 양모를 전 세계에 홍보하고 시장을 확장하기 위한 이 프로그램은 재능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을 통해 업계의 비전을 확산시키기 위한 유용한 전략이었다. 발망의 어시스턴트를 시작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오트 쿠튀르에서 옷의 정석은 배울 수 있었지만, 지루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기성복’ 디자이너의 길을 택한다. 이후 대담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대의 흐름을 주도한 그는 패션산업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혁신이 필요하던 샤넬은 부정적인 여론에도 그를 영입했고, 그는 샤넬의 새 시대를 열고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패션은 예전 것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것을 반복하는 일이라고 했다. 새로운 명분으로, ‘시즌’에 맞춰 빠른 속도로 계속 다시 태어나야 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 ‘미션’때문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우울증, 약물중독, 자살유혹에 시달릴 때, 라거펠트는 커피도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며 ‘운동선수’처럼, ‘숨을 쉬는 것처럼’ 건강하게 일을 했다. 동시에 논란을 불러오는 언행도 이어나갔다.

 

그의 사망을 두고 세계 최대 규모의 동물보호단체 PETA의 공동창립자인 잉그리드 뉴 커크는 “그의 죽음은 모피, 이국적인 가죽을 갈망하던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까칠한’ 조의문을 남겼다. 패션 황제의 죽음을 안티모피캠페인에 이용한다는 비난이 이어진다. 자신이 한 모든 일에 후회도, 회환도 없다는 라거펠트는 이제 떠났다. 새 시대가 그냥 오지는 않겠지만, 한 시대는 그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떠나고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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