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놀이에서의 점심’, 1881년, 필립스미술관 소장
르누아르의 ‘뱃놀이에서의 점심’은 초여름의 따사로운 햇빛과 미풍을 한껏 느끼게 만든다. 그는 모파상이 묘사했던 샤투의 시아르 섬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 ‘푸르네즈’의 테라스에서 배를 타러 온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놀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등장인물들은 르누아르의 친구들로 당시 파리 미술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놀고 있는 젊은 여자는 르누아르의 전속모델이자 양재사인 알린 샤리고이다. 훗날 그녀는 결혼을 주저했던 르누아르의 무려 18살 연하 부인이 된다. 그녀는 그림에서처럼 활기가 넘치고, 분위기를 잘 맞춰주는 재주 있는 여자였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다른 소녀는 르누아르가 즐겨 그린 모델 앙젤르이다. 그녀는 드가의 그림 ‘압생트’의 모델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벌써 낮술에 취한 느낌이다. 바로 옆 체크무늬 재킷을 입은 멋쟁이 남자는 카유보트인데, 재산가답게 인상주의 그림을 일찍이 사들이기 시작한 컬렉터였지만, 아마추어 이상으로 그림을 썩 잘 그리는 화가이기도 했다. 르누아르의 아들 피에르의 대부가 될 정도로 르누아르와 절친한 사이였다. 난간에 기댄 남자는 노잡이이며, 이 카페의 주인이다. 장난스러운 농담에 새끼 고양이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는 숙녀는 여배우 잔 사마리인 것으로 보인다.
여름 한 나절, 태양은 사람과 사물들 사이에 화사하게 넘쳐난다. 덕분에 파티를 즐기는 인물들의 의상, 모자는 물론 술병의 색감마저도 상큼한 한 나절의 생기를 느끼게 한다. 붉은 줄무늬 차양막이 강가에 살살 부는 바람에 펄럭인다. 이 차양막에 의해 전경과 배경은 잘 구분되어 조화롭다. 아무리 작고 우연한 것일지라도 얼마나 섬세하고 풍부하게 처리했는지 느낄 수 있다. 르누아르는 1881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대미술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면서 인상주의가 잃어버린 분명한 형태와 탄탄한 구성을 부활시키고자 한다. 이 작품은 섬세한 필치의 인상주의 화풍에서 견고한 형태의 고전주의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그려진 걸작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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