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니발레 카라치, 헤라와 제우스, 1608년쯤
6월은 헤라의 달이다. 그리스 여신 헤라는 라틴어로 유노(juno)가 되었고, 이것이 영어의 6월(June)이 된 것! 흥미로운 사실은 서양미술사에서 헤라가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이 적다는 점이다. 아프로디테에게 밀리고, 아테네에게도 밀린다. 헤라의 미모가 달려서일까? 아니면 아프로디테의 관능과 아테네의 지혜보다 부족했던 탓일까? 아마 예술품을 주문했던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조강지처를 상징하는 헤라가 더 이상 구애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헤라는 통상 질투의 여신으로 알려져 왔다. 사실 헤라는 결혼의 신성함과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여신이다. 자신이 주관하는 결혼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제우스의 여인들을 응징하는 데 일생을 다 보낸 여자다. 고대 그리스 같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결혼과 가정을 지키기 위한 시기와 질투는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질투할 줄 아는 족속만이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에서 남편의 권력은 곧 부인의 위상이다. 헤라가 신 중의 신 제우스의 부인 자리를 절대 포기할 리가 없는 것이다.
언뜻 이 그림은 아프로디테가 제우스를 유혹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헤라가 이렇게 유혹적인 자태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헤라가 제우스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헤라 곁에는 그녀를 상징하는 공작이 있고, 제우스 곁에는 그의 신조 독수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큐피트는 왜 등장하는가? 엄청나게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헤라는 그다지 남자들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여신 중 최고의 여신조차도 바람기 많은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에로틱의 대가인 아프로디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는 증거다. 바로 가슴 아랫부분에 착용하고 있는 아름다운 띠 역시 아프로디테에게 빌린 액세서리다. 제우스는 이미 자신의 무기인 불벼락(천동이 가진 번개)도 잊어버렸을 정도로 유혹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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