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조각을 할까? 조각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활동을 넘어 인간의 내면적 이상을 담는다. 무덤이나 성전을 지키는 이집트의 ‘아누비스’와 아시리아의 ‘라마수’도 구석기 시대의 ‘사자인간’처럼 독특한 형상을 가진다. 아누비스의 머리는 자칼이다. 라마수의 머리는 인간이지만 몸은 사자이고 날개가 달려 있다. 이렇듯 인간의 내면적 상상은 주어진 감각 재료들을 조립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디자인 이론가인 빅터 파파넥은 북극의 원주민 이누이트족을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는다. 이들에게 예술이나 디자인 개념은 없지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누이트족은 생존을 위해 디자인한다. 얼음 벽돌로 조각된 이글루는 로마의 아치형 돔을 연상시키지만 기능은 훨씬 뛰어나다. 밖의 온도가 영하 40도를 넘나들어도 이글루 내부 온도는 영상 20도를 유지한다. 이누이트족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각을 한다. 10㎝ 크기의 작은 조각이지만 제법 디테일이 살아 있다. 특이한 점은 세울 받침이 없어 손에서 손으로 전하며 감상된다. 즉 손으로 만지며 감상한다.
감상이 끝나면 ‘투빌락(tubilak)’이라는 전통에 따라 바닷가나 냇가에 버려진다. 투빌락은 ‘해로운 영혼’이란 말로 조그만 상아 조각을 가리킨다. 빅터 파파넥에 따르면 이누이트족의 조각은 조각한 사람의 사악한 생각과 감정을 빨아들이는 주술적 대상이다. 이 조각을 던져 버림으로써 분노와 적개심이 사라지고 그 사람의 원한이 깨끗이 정화된다는 것이다.
사자인간과 아누비스, 라마수, 투빌락 조각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이끈다. 고대인이나 이누이트족의 조각은 무덤에 묻히거나 버려짐으로써 그 역할을 다했다. 반면 현대미술의 조각은 미술관으로 간다. 현대미술은 높은 가격에 판매되어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야 비로소 완성된다. 내면의 감정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대의 조각 과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결과가 크게 다르다. 보존되는 것과 버려지는 것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예술일까. 곱씹어볼 문제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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