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TV를 켰는데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이 음악에 맞추어 즐겁게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다. 방송 제목은 <생로병사의 비밀-치매혁명 프로젝트>였다. 방송 내내 의사, 뇌과학자를 인터뷰하며 춤이 치매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라 주장한다. 요약하면 단순한 동작의 운동보다 복잡한 동작인 춤이 뇌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어쩐지 뇌발달이 가장 활발한 어린아이들은 춤을 많이 춘다.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춤을 권장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춤을 빼놓고 대중문화를 논할 수 있을까. 춤은 아이돌이나 클럽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장 오래되고 일상적인 예술이다. 예나 지금이나 각종 행사와 의례에서 춤을 춘다. 나는 예술을 크게 ‘춤’과 ‘건축’으로 구분한다. 두 분야는 모방대상이 다르다. 건축가는 조상의 건축형식을 모방하지만 자유로운 몸짓인 춤은 명확한 모방대상이 없다. 그래서 춤은 신내림 무당처럼 신의 영감이 몸에 깃든 것이라 여겨졌다. TV 인기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맨 앞줄 어르신들이나 록밴드 공연의 관객들은 마치 신의 영감을 받은 듯 춤을 춘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무사의 신이여.”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도 일리아스를 읊기 시작할 때 신을 암시했다. 이들은 모두 모방이 아닌 영감에 의해 몸을 움직인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도 춤을 추었을까? 춤을 추려면 음악이 필요하다. 만약 춤을 추었다면 음악이 있었을 것이다. 음악에는 리듬과 멜로디가 있어야 한다. 리듬이야 이것저것 두드리면 되지만 멜로디는 관악기나 현악기가 필요하다. 2000년대 들어 독일 남부 아흐 계곡의 홀레펠츠 동굴(구석기)에서 오래된 관악기(사진)가 발견되었다. 구멍이 4~5개인 것을 보면 피리나 플루트의 원조다.
약 4만년 전 이 악기는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 엄중한 의식에 사용되던 것일까. 탁월한 연주자가 공연했을까. 어찌되었던 당시에는 예술 개념이 없었기에 요즘의 클래식 관객처럼 점잖게 앉아 연주를 감상하기보단 흥겨운 가락에 맞춰 춤을 추었을 것이다. <전국노래자랑> 어르신들처럼. 그렇다면 이 악기는 구석기인들이 춤을 추었다는 증거이자 동시에 최초의 치매 예방 도구였던 셈이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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