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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9.11.27 신에서 스테이크까지
  2. 2019.11.13 동굴에서 발견한 신화
  3. 2019.10.30 가장 오래된 예술, 춤
  4. 2019.10.16 광화문 현판
  5. 2019.10.02 버려지는 조각, 투빌락
  6. 2019.09.18 사자 인간은 누구일까
  7. 2019.09.04 동굴에서 아파트까지


1940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프랑스 몽티냑 마을 소년들이 강아지를 찾던 중 거대한 벽화가 그려진 동굴을 발견했다. 이 동굴이 그 유명한 ‘라스코 동굴’(사진)이다. 약 2만년 전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벽화는 원시미술을 대표한다. 벽화에는 말과 사슴 등 여러 동물이 등장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동물은 머리에 뿔이 달린 가로 길이가 약 4m인 소이다. 이 소는 오록스종으로 스페인 투우에 등장하는 거친 황소들의 조상이다.


구석기인들은 왜 거대한 소를 그렸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 그 이후의 역사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 1만년 전 차탈회위크 유적에 거대한 소를 그린 벽화가 있다. 학자들은 차탈회위크 사람들이 소를 숭배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약 5000년 전 크레타섬의 신화에 전설적인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등장한다. 머리는 소이고 몸은 인간인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 문명의 상징이었다. 미케네 문명의 왕자 테세우스는 이 상징을 죽이고 미노스 문명을 정복한다. 이후 그리스 문명의 신들은 동물이 아닌 인간의 형상을 갖는다. 


인류의 대표적 문자인 알파벳 ‘A’는 본래 소를 의미하는 기호였다. 문자에서조차 소가 가장 첫머리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소는 인류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였음이 틀림없다. 몇몇 평론가는 가상과 현실을 토대로 라스코 벽화의 동물들이 가상의 사냥감이라고 말한다. 그림 가운데 있는 붉은 사슴은 사냥감이 맞다. 하지만 거칠게 달려가는 소의 경우 단순한 사냥감이 아니라 쇼베의 동굴곰처럼 라스코 동굴의 상징이자 숭배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굴벽화에는 소가 많이 등장한다. 구석기인들에게 소는 신성한 동물이었고 농경시대에는 친숙한 가축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저 음식 재료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인류에게 신성하고 친숙했던 가축들이 공장에서 사육되고 도축되면서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인간이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대상의 운명이 달라진 것이다. 신에서 스테이크로 추락한 소를 떠올릴 때마다 디자인에 있어 가치 기준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다. 때론 잔인하게 느껴진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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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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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상은 누구일까? 이 문제에 크게 두 가지 대답이 있다. 하나는 신, 다른 하나는 동물이다. 전자는 창조론, 후자가 진화론이다. 불과 150년 전까지 사람들은 인간의 조상은 신이라고 믿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 “우리의 조상이 원숭이냐”며 크게 반발했지만 다윈의 진화 가설들이 검증되면서 이젠 ‘창조’보다 ‘진화’ 스토리를 믿는 사람이 더 많다.


디자인의 본질은 스토리에 있다. 인간은 경험에 기반한 상상력을 동원해 자신들의 존재를 이야기로 구성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천년의 시공간을 초월해 하나의 집단으로 결속한다. 사실 진화론도 최근의 발견이 아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진화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단군신화가 대표적이다. 단군의 어머니 웅녀(熊女)는 본래 곰이었다. 웅녀는 신의 아들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 이렇듯 단군신화는 인간이 신의 자녀라는 창조론과 인간이 동물의 자녀라는 진화론을 적절히 조화시킨 사례이다.


1994년 프랑스 퐁다르크 근처에서 동굴이 하나 발견되었다. 이 동굴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쇼베 동굴’이라 부른다. 이 동굴은 지금까지 발견된 구석기 유적 중 가장 오래되었다. 학자들은 쇼베 동굴 사람들이 곰을 숭배했다고 추정한다. 발견 당시 삼각형 모양의 제단(사진 동그라미) 위에 동굴곰의 머리뼈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곰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일까. 그렇다면 동굴곰을 조상이나 신으로 여겼다는 의미다.


3만년 전의 동굴곰 제단은 진화론을 암시한다. 5000년 전 단군신화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조화를 꾀했다. 2000년 전 기독교 등장 이후 사람들은 창조론을 믿었지만 이제는 다시 진화론이 대세이다. 이렇듯 진화와 창조 스토리는 순환한다. 경험은 신화를 낳았고 신화는 신을 낳았다. 종교는 신을 근거로 진화론을 비판했고 과학은 경험을 근거로 창조론을 비판했다. 그런데 최근 발견되는 구석기 동굴은 종교와 과학의 논쟁을 넘어선다. 무엇이 진실일까. 누가 아는가, 빅데이터에 근거한 인공지능이 다시 창조론의 손을 들어줄지.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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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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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TV를 켰는데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이 음악에 맞추어 즐겁게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다. 방송 제목은 <생로병사의 비밀-치매혁명 프로젝트>였다. 방송 내내 의사, 뇌과학자를 인터뷰하며 춤이 치매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라 주장한다. 요약하면 단순한 동작의 운동보다 복잡한 동작인 춤이 뇌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어쩐지 뇌발달이 가장 활발한 어린아이들은 춤을 많이 춘다.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춤을 권장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춤을 빼놓고 대중문화를 논할 수 있을까. 춤은 아이돌이나 클럽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장 오래되고 일상적인 예술이다. 예나 지금이나 각종 행사와 의례에서 춤을 춘다. 나는 예술을 크게 ‘춤’과 ‘건축’으로 구분한다. 두 분야는 모방대상이 다르다. 건축가는 조상의 건축형식을 모방하지만 자유로운 몸짓인 춤은 명확한 모방대상이 없다. 그래서 춤은 신내림 무당처럼 신의 영감이 몸에 깃든 것이라 여겨졌다. TV 인기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맨 앞줄 어르신들이나 록밴드 공연의 관객들은 마치 신의 영감을 받은 듯 춤을 춘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무사의 신이여.”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도 일리아스를 읊기 시작할 때 신을 암시했다. 이들은 모두 모방이 아닌 영감에 의해 몸을 움직인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도 춤을 추었을까? 춤을 추려면 음악이 필요하다. 만약 춤을 추었다면 음악이 있었을 것이다. 음악에는 리듬과 멜로디가 있어야 한다. 리듬이야 이것저것 두드리면 되지만 멜로디는 관악기나 현악기가 필요하다. 2000년대 들어 독일 남부 아흐 계곡의 홀레펠츠 동굴(구석기)에서 오래된 관악기(사진)가 발견되었다. 구멍이 4~5개인 것을 보면 피리나 플루트의 원조다.


약 4만년 전 이 악기는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 엄중한 의식에 사용되던 것일까. 탁월한 연주자가 공연했을까. 어찌되었던 당시에는 예술 개념이 없었기에 요즘의 클래식 관객처럼 점잖게 앉아 연주를 감상하기보단 흥겨운 가락에 맞춰 춤을 추었을 것이다. <전국노래자랑> 어르신들처럼. 그렇다면 이 악기는 구석기인들이 춤을 추었다는 증거이자 동시에 최초의 치매 예방 도구였던 셈이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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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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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타이포그라피 디자인 강병인씨. 사진 김정우씨 제공


‘광화문’은 세종대왕이 붙인 이름으로 그 뜻은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이다. 광화문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등 우리 역사의 수난 속에서 훼손과 복원의 곡절을 겪어왔다. 문화재청은 지난 8월14일 광화문 현판 글자의 원래 색상이 금박이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현재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된 현판을 떼고 새 현판을 달 것”이라고 발표했다. 옛것의 복원을 내세운 것이지만 이에 대해 다른 시각들도 있다. 한재준, 강병인 등 디자인계 많은 인사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가끔 광화문 앞을 걷다가 문득 광화문을 올려다보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광화문 뒤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어릴 적 총독부를 무너뜨리는 뉴스를 스쳐가듯 접했지만 별반 감흥은 없었다. 사진을 보고서야 총독부의 규모와 광화문의 초라함에 놀랐다. 역사적인 건축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만약 총독부가 아직까지 있었다면 어떨까? 요즘 같은 시절이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시원한 느낌은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광화문 현판이다. 예전 글씨를 복원했다고 하는데 지금 광화문의 상징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글자도 거꾸로 읽어야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역사는 새롭게 잇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화문은 한자가 아닌 한글 ‘광화문’으로 쓰여지는 것이 맞지 않을까. 광화문 주변의 맥락을 살펴봐도 그것이 자연스럽다. 광화문 앞에는 세종대왕이 앉아 있고, 광장 지하에는 한반도의 역사와 한글을 소개하는 상설 전시장이 있지 않나.


광화문 현판은 복원이나 문자에 대한 선호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역사학자 크로체가 말했듯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현대의 광화문은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현대는 민주주의 공화국이며 한자가 아닌 한글을 공용문자로 사용한다. 이곳에 오는 해외 관광객들은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을 방문한다. 외국인이 충무공을 보고 세종대왕을 지나 광화문 앞에 섰을 때를 상상해 보자. 과연 현재의 현판이 맞을까? 총독부를 무너뜨리고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걷어냈듯이,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과감히 바꾸자.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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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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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조각을 할까? 조각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활동을 넘어 인간의 내면적 이상을 담는다. 무덤이나 성전을 지키는 이집트의 ‘아누비스’와 아시리아의 ‘라마수’도 구석기 시대의 ‘사자인간’처럼 독특한 형상을 가진다. 아누비스의 머리는 자칼이다. 라마수의 머리는 인간이지만 몸은 사자이고 날개가 달려 있다. 이렇듯 인간의 내면적 상상은 주어진 감각 재료들을 조립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디자인 이론가인 빅터 파파넥은 북극의 원주민 이누이트족을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는다. 이들에게 예술이나 디자인 개념은 없지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누이트족은 생존을 위해 디자인한다. 얼음 벽돌로 조각된 이글루는 로마의 아치형 돔을 연상시키지만 기능은 훨씬 뛰어나다. 밖의 온도가 영하 40도를 넘나들어도 이글루 내부 온도는 영상 20도를 유지한다. 이누이트족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각을 한다. 10㎝ 크기의 작은 조각이지만 제법 디테일이 살아 있다. 특이한 점은 세울 받침이 없어 손에서 손으로 전하며 감상된다. 즉 손으로 만지며 감상한다.


감상이 끝나면 ‘투빌락(tubilak)’이라는 전통에 따라 바닷가나 냇가에 버려진다. 투빌락은 ‘해로운 영혼’이란 말로 조그만 상아 조각을 가리킨다. 빅터 파파넥에 따르면 이누이트족의 조각은 조각한 사람의 사악한 생각과 감정을 빨아들이는 주술적 대상이다. 이 조각을 던져 버림으로써 분노와 적개심이 사라지고 그 사람의 원한이 깨끗이 정화된다는 것이다.


사자인간과 아누비스, 라마수, 투빌락 조각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이끈다. 고대인이나 이누이트족의 조각은 무덤에 묻히거나 버려짐으로써 그 역할을 다했다. 반면 현대미술의 조각은 미술관으로 간다. 현대미술은 높은 가격에 판매되어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야 비로소 완성된다. 내면의 감정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대의 조각 과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결과가 크게 다르다. 보존되는 것과 버려지는 것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예술일까. 곱씹어볼 문제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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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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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 독특한 모양의 조각을 소개한다. 몸은 인간인데 얼굴은 사자다. 지금까지 이런 형상의 생명체가 발견되거나 보고된 적이 없다. 아마 사자 인간이 조각되었던 수만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피엔스는 경험한 적이 없던 이 형상을 어떻게 조각할 수 있었을까? 하라리의 논리를 살펴보면, 어느 순간 인간 집단이 커지기 시작했다. 큰 집단을 응집시키기 위해선 먹고사는 문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했다. 가령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라고 말하고 허구적 신화나 신을 만들어 믿음을 유도하고 질서를 유지했을 것이다. 하라리는 이를 인지 혁명이라 말하고 사자 인간 조각을 증거로 제시한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사자 인간은 정말 상상 속의 동물일까?” 나는 상상력으로 작동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사피엔스가 살던 동굴에 들어가 사자 인간을 찾아보았다. 앗 저기 있다!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자 인간을 조심스레 따라가 보았다. 그는 커다란 모닥불이 있는 거대한 공간에 도착했다. 벽면에 그려진 동물들은 일렁이는 불빛에 살아 있는 듯 꿈틀댄다. 그는 사피엔스들 앞에 나와 뭐라 웅얼거리더니 춤을 추며 의식을 주도한다.


요란한 의식이 끝나고 다소 지친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자탈을 벗는다. 아 사자 인간은 사자탈을 쓴 주술사였구나! 아마 용맹을 상징하는 부족의 주술사였을 것이다. 그의 보금자리는 다른 사피엔스들이 사는 동굴 입구가 아닌 깊숙한 안쪽이다. 그는 사냥이나 채집에 참여하지 않고 벽화를 그려 신화를 기록하거나 종교의식을 주관한다. 가끔은 새로운 상상력을 동원해 사피엔스들에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면을 선사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직전 주술사의 선반에 놓여 있는 작은 사자 인간 조각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상상을 하니 헷갈린다. 하라리 말대로 사자 인간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조각일까. 아니면 누군가 주술사를 보고 재현한 조각일까. 하긴 사자탈도 주술사의 상상력에 의해 디자인된 것이니 하라리의 주장이 틀릴 것은 없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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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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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한여름 피서로 동굴이 인기입니다.” 장을 발효시키는 자연동굴에 관람객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동굴 관리자는 한여름에도 실내 온도가 16도로 유지된다며 자랑한다. 머루를 발효시키기 위해 조성된 인공동굴 온도도 비슷하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고 왜 구석기인들이 동굴에 거주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동굴은 배후지로서 안전했을 뿐만 아니라 추운 날 따뜻하고, 더운 날 시원한 최적의 생활 공간이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동굴 벽화가 발견되었다. 특히 프랑스 남부 베제레 계곡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베제레 계곡은 석회암 지역이다. 벽화가 발견된 동굴 중 상당수도 석회동굴이었다. 왜 그럴까? 석회벽이 밝은 흰색이라 그림 그리기 좋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뼈가 칼슘(Ca)이기에 같은 칼슘인 석회가 친숙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시멘트의 주원료도 석회다. 구석기인들의 동굴과 현대의 건축재료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점차 동굴 밖으로 나왔다. 정착을 시작한 신석기인들은 동굴을 찾아다니지 않고 땅 위에 동굴을 지었다. 신석기 도시 유적으로 여겨지는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의 차탈회위크(Catalhoyuk)가 대표적이다. 복원된 조감도를 보면 건물 모양이 독특하다. 낮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전체가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출입구가 천장에 있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건물 위로 다닌다. 땅 위에 지어진 이 거대한 인공동굴에 8000~1만명 정도가 거주했다고 하니 아마도 옥상이 거리 역할을 했을 것이다. 


건축재료와 공법이 발전을 거듭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수십층 높이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차탈회위크의 수평 건물이 수직축의 빌딩이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땅속이 아닌 20~30층의 하늘에서 생활한다. 공간의 효율성은 좋아졌지만 에너지 효율성은 떨어졌다. 동굴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했지만 현대의 아파트는 반대다. 겨울에는 보일러를, 여름에는 에어컨을 가동해야만 한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졌다. 구석기 동굴과 아파트 중 무엇이 더 효율적일까? 인류문명과 기술의 발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가끔은 인류문명의 방향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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