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이런
옛이야기가 있다. 천생연분은 태어날 때부터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서로의 손가락을 묶고 있다는. 그러나 운명의 신도 실수는 하는
법이라서 그토록 단단해 보이던 실 또한 살다 보면 끊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후지 요시카쓰의 부모님도 그렇게 해서 각자의
인생을 살기로 했다. 이럴 때 문제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묶인 붉은 실이다. 이 실은 연인 사이보다 단단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혼란스럽던 후지 요시카쓰는 이 붉은 실을 작업 대상으로 삼아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Fujii Yoshikatsu, Red String
작업은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으로 시작해 자신과 동생의 등장이 잦아지는 두툼한 가족 앨범을 한 축으로 삼는다. 여기에 독립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홀로서기를 촬영해 덧보탠다. 이 과정에서 서먹했던 아버지와의 느슨한 관계가 다시금 조여지기도 한다. 헝클어진
이부자리와 아무렇게나 정리한 살림살이에 카메라 시선이 닿을 때마다, 무심한 아버지가 아니라 쓸쓸한 중년 사내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기 때문이다.
아
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한들 부모님이 다시 결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완벽한 가정에 대한 책임과 상처로부터 가족
모두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되기는 했다. 어릴 적 각자 자신을 안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은 언젠가 붉은 실이 끊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고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가족의 인연이 이어지리라는 단서였을까. 행복했던 한때의 이
사진들은 어쨌든 작가에게 운명적으로 드리워진 붉은 실을 증명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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