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 잉크를 녹여낸다는 말을 이해민선에게서 처음 들었을 때 몹시 낯설었다.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사진의 끈적거림이나 물 한 방울에도 얼룩이 번지는 사진의 표면은 익숙한 일이었으나 사진이 애초에 액체 상태였다는 사실에 그다지 예민하지 않았던 탓이다. 사실 잉크라는 물질 없이는 눈에 비친 이미지들은 제 아무리 카메라 렌즈에 빛으로 맺혀도 종이에 닻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러나 이해민선의 섬세함은 우리가 보는 이미지가 빛과 액체와 고체라는 물성의 전환 과정임을 놓치지 않는다. 하여 그의 작품 속에서 세상 모든 이미지는 비록 허상일지라도 부피와 무게와 질감을 갖는다.
그는 잡지 사진이나 직접 촬영해 출력한 사진의 표면에 특수한 약품을 처리해 잉크를 녹여낸다. 그리고 이렇게 녹여낸 잉크를 질료 삼아 애초 사진이 있던 종이 위에 전혀 다른 풍경을 그린다. 그 과정 속에서 화려한 도심 빌딩의 이미지가 잉크로 녹아내려 한 덩어리의 돌산으로 바뀌고, 굽이치는 강 풍경은 증발되고 강물이 증발하고 남은 자국마냥 잿빛 점으로만 남는다. 마치 대도시 고층 건물의 속살은 도시 외곽 먼지 날리는 돌산에서 실어온 돌멩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은유라도 하는 것처럼.
이해민선의 작품은 엄밀하게는 사진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사진의 육체를 보는 듯한 기분에 젖게 한다. 스펙터클한 이미지가 사실은 우리가 보고 싶거나 보여주고 싶은 환상의 표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까. 한 줌의 도료로 남은 잉크는 그 환영의 세계 뒤에 숨겨진 이미지의 본질을 묻는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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