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엄마의 모국어는 아랍어다. 이후 엄마는 프랑스로 이주해 딸 지네브 세디라를 낳았다. 프랑스어를 쓰며 성장한 그는 이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딸을 낳았다. 딸은 영어로 말한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서로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삼대’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네브 세디라, 모국어, 2002, 3채널 비디오, 5분, 테이트모던 설치장면 ⓒ지네브 세디라
지네브 세디라는 자신의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정체성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3채널 영상 작품 ‘모국어’를 완성했다. 작가와, 그의 엄마, 딸, 세 여성은 서로서로 대화를 나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서 화면을 마주한 관객들은, 영상을 통해 각자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 정도만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영상의 소리는 헤드폰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소리가 없기 때문에 서로의 말에 반응하는 동작, 표정을 좀 더 유심히 보게 된다.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것도 같고 머뭇거리는 느낌도 있다. 곧 헤드폰을 하나씩 끼고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그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비디오 속 엄마와 나는 아랍어와 프랑스어로 대화한다. 두 번째 비디오의 나와 딸은 프랑스어와 영어로 대화하며, 마지막 할머니와 손녀는 아랍어와 영어로 대화하는 중이다. 엄마와 딸은 그런대로 묻고 답하며 대화를 주고받는데, 할머니와 손녀는 불편해 보인다. 각자의 모국어로 말을 건네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쑥스럽게 미소 짓는다. 작가가 연출한 이 어색한 대화의 시간은 문화적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 세대를 거쳐 어떻게 계승되는지 묻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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