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민, ‘Giggle’ 연작 중, Extinguisher, 2010(출처: 경향DB)
소화기 통을 메고 하늘로 오르려는 이 남자 예사롭지 않다. 의자를 발사대 삼아 소화기 분말을 열심히 뿜어보지만 얼굴만이 하늘을 향할 뿐 비상할 기미라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복장은 꼭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실험맨 같다. 우스꽝스러운 실험을 진지하게 펼치면서 결국 보는 이로 하여금 피식 웃게 만드는 상황도 방송과 비슷하지만, 배경 선정이며 구도에 정말 많은 공을 들인 나머지 진짜 웃어도 되는 건가 조금 헷갈리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보자기를 두른 채 책상 위에서 뛰어내려봤자 슈퍼맨이 되기는커녕 엄마의 잔소리 위를 날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우리의 모험시대는 끝이 난다. 그렇게 철이 들었던 작가 류현민은 어느 날 소주잔을 얼굴에 붙이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서 일탈의 쾌감을 느꼈다. 결국 떨어질 게 뻔한 실없는 동작 앞에서 다들 웃어대던 술자리의 희열. 누구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싸구려 실험은 책임질 필요도 없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이 그저 실없는 농담 같은 해방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작품 연작의 제목도 피식 웃거나 킬킬대는 것을 뜻하는 ‘기글’이다.
그 실없는 웃음을 위해 작가는 허무맹랑한 실험을 반복한다. 줄자를 기다랗게 양 귀에 걸고 더듬이를 대신하거나 전원선을 엉덩이에 연결해 충전을 시도하고, 건물 옥상에서 우산으로 안테나 신호를 받으려 애쓴다. 그러나 실소 끝에 눈가에 한 방울 눈물이 고이듯, 작가의 이 진지한 실험들은 실패한 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뭔가에 매달린 채 살아가는 불완전한 인간의 몸짓처럼 안쓰럽다. 한편의 유쾌한 블랙코미디처럼.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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