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남, 진달래#030, 2012
봄날이 가고 있다. 스러진 진달래 꽃잎처럼. 연하디 연한, 흔하디 흔한 이 꽃은 우리 정서의 밑바닥에서 꽃을 피운 지 오래다. 한때는 철이와 순이부터 빨치산까지 모두가 지천에 널린 이 꽃잎을 따먹었으며 누군가는 거리에서, 누군가는 경기장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부르며 뜨거운 마음을 터뜨렸다. 함경도가 고향인 시인 김규동은 그의 시에서 이 꽃을 사뿐히 즈려 밟기에는 차마 사치스러워 심장으로 들어가게 했다고까지 고백한다. 시 제목이 ‘육체로 들어간 꽃잎’인 까닭이다.
평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김규동의 이 시가 사진가 고정남의 ‘진달래’ 작업에도 영감을 던졌다. 그의 고향 전남 장흥에도 늘 진달래는 흐드러졌다. 무심하게 그리고 수수하게. 전혀 화려하지 않아서, 호기심과 의아함에 다시 한번 눈길이 가고 마는 그의 사진들도 이 꽃을 닮았다.
사실 그의 작업은 사진 한 장만으로는 말하기 곤란하다. 작업 속에서 그의 진달래들은 늘 콘크리트 대전차 장애물과 한 쌍을 이룬다. 유사시 파괴시켜 전차나 장갑차의 진입을 막기 위한 이 군사시설물은 대개는 북녘 땅 가까운 곳, 진달래를 만나기 쉬운 길가에 버티고 있다. 선홍빛 진달래와 차가운 콘크리트는 둘다 익숙한 풍경이면서 동시에 한없이 낯선 조합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렇듯 너무 무디어진 나머지 오히려 진부해 보이기까지 하는 깊은 상처를 진달래처럼 소박하고 아리게 뒤흔들어 놓는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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