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이자, 예술가인 루스 이언은, 캠든아트센터 안으로 360개의 나무, 풀, 물건들을 들여놓았다. 양상추, 장바구니, 물뿌리개, 왁스, 꿀, 전나무, 수은, 도끼는 각자 자리를 잡았다. 30개씩 열두 그룹으로 배치된 이 사물들은 각자 특정 날짜를 지시하며 그대로 ‘달력’이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군들이 만든 새로운 달력 ‘공화력’이었다. 혁명군에는 바스티유 감옥뿐 아니라 종교, 정치, 경제,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권력인 그레고리력 역시 변혁의 대상이었다.
루스 이언, 백투더필드(Back to the Field), 2015, 캠든아트센터 설치장면 ⓒ 루스 이언 (사진촬영:Hydar Dwach)
1주일을 10일, 1개월을 30일, 1년을 360일로 정하고, 1년에서 부족한 5일이나 6일은 선행의날, 재능의날, 노동의날, 이성의날, 보상의날, 혁명의날로 명명하여 축제일로 삼았다. 이 달력에서 기존에 있던 종교 축제의날과 성인의날은 삭제되었다. 10일마다 1일씩 쉬자, ‘안식일’은 줄어들고 노동시간이 늘어났다. 프랑스를 생산성이 강한 나라로 만들고 싶었던 혁명군은 달력 안에 직업윤리를 강조하는 새로운 질서를 담았다.
이들은 예술가, 시인, 원예사와 협력하여 날짜의 이름을 새롭게 정리했다. 그 이름들은 자연의 변화, 농경의 규칙을 담고 있었다. 대개의 경우 5일째에는 말, 소 같은 가축의 이름이 등장하고, 10일째에는 술통, 와인 압착기, 도끼, 칼 같은 도구의 이름이 등장한다. 달력을 따르자면, 사람들은 열흘에 한 번 마을에 모여 나라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법규를 소리 내어 읽으며 함께 식사를 한다. 그리고 곡괭이 사용법을 배운다.
혼란에 빠진 국가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겠다는 혁명군의 의지를 담은 ‘혁명력’은 브뤼메르(안개달) 18일 쿠데타로 혁명을 종결시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명령에 따라, 1806년 1월1일 이후 사라졌다. 탄생 후 12년 만의 일이었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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