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몇 번이나 모험을 할까. 지금은 고독의 성찰보다 생존의 야성을 되살릴 때다. 강렬한 야성의 활력소는 호기심과 모험심이다. 때로는 역경에 부딪혀 살아남고자 하는 절박함은 생명의지를 선사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모험을 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이라기보다 수직상승을 향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시공사)이라는 책에서 위로만 오르려면 욕망은 결국 지금을 잃어버린다고 경고한다. 신나는 모험은 수직상승보다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탐험의 삶이다.
유리병, 신라 5세기, 경주 98호 남분 출토.
신라 5세기 무덤에서 봉황 머리 모양 유리병과 유리잔이 출토되었다. 누가 가지고 왔을까?
유리병 모양은 오이노코에(Oinochoe)라고 불리는 그리스 로마의 병과 형태가 같다. 소담하게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리 같은 몸통을 늘씬한 발목으로 지탱한다. 병 속의 물은 길고 우아한 목선을 따라 천천히 흘러나오다가, 봉황 머리 같은 입구로 이어진다. 천천히 물을 따르려니 손잡이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유리 물병은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달려서 신라까지 전해졌다. 누가 그 긴 모험의 여정에서도 유리병과 잔을 가지고 왔을까? 한국에서 옥이나 토기에 친근했던 사람들에게 빛을 투과시키는 투명한 유리병은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마법의 병으로 보였을 것이다. 무엇을 넣어서 마시든지, 특별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우리 무의식에는 넓은 초원을 가볍게 내달리거나, 철에 따라서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있다. 20세기 이후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면서 분단으로 북방 진출이 어려운 지정학적 상황에서 살아간다. 이 작은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안정제일주의가 되어야 한다. 모험심은 위험한 욕구로 억누른다. 안정강박은 무의식적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의 위안을 유토피아로 만든다. 모험보다 도피처를 갈급하는 세상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신기한 유리병이다. 마법의 병을 찾아서 대륙을 횡단하고 바닷길을 건너가보는 모험이 필요하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전혀 다른 생각과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싶은 호기심의 탐험이 우리의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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