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마음을 합쳐서 같이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지혜가 한국미학이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회복탄력성이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 크고 작은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회복탄력성이란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다시 일어나는 힘이다. 심지어 사람은 고난을 겪고 나서 마음이 더욱 풍부해진다고 한다. 회복탄력성은 생존과 진화의 원동력이다.
임희지, 난초,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 임희지(林熙之·1765~?)의 난초 그림을 본다. 그는 조선 말 중인 출신으로 중국어 번역을 담당하는 한역관이었다. 그는 중인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높은 관직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깨끗한 풍모를 지녔다고 지인에게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서울의 중인들과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옥류동의 송석원에서 결성한 문학 동아리인 송석원시사에 참가했다. 그의 행복은 벗들과 함께 나누는 예술 교류에 있었다.
조선 말기의 중인들은 사대부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던 신분적·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심정을 시로 썼다. 중인들의 시가 자포자기의 마음을 토로했더라도, 실은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개인주의 예술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바로 어려움이 삶과 예술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회복탄력성으로 난초를 본다. 서양란은 꽃이 화려하지만, 동양란은 잎이 수려하다. 동양란의 잎은 여리고 부드럽지만, 뿌리는 적은 물에도 살아남을 정도로 강인하다. 꽃은 화려하지 않지만, 향기는 은은하게 만리를 간다. 난초는 바람에도, 가뭄에도 부드럽게 견디어 내는 강인함이 있으면서, 은은한 향이 나는 사람됨의 상징이 되었다. 난초 같은 인품을 갖추는 데 신분의 구별은 없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회복탄력성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은 사람들의 관계성, 바로 ‘금란지교(金蘭之交)’에서 나온다. 주역의 계사전에서 “군자의 도는 나아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며, 침묵하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을 수 있고, 마음이 같이하는 사람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고 한다. 내 마음에 난초의 인품과 금란지교의 우정을 소중히 품어가는 새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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