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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안목의 쪽지

추운 날 뜻밖의 소포가 도착했다. 갖고 싶던 필립 퍼키스의 <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 사진집. 미국 사진가 필립 퍼키스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아무렇지 않은 대상을 그가 아무렇지 않게 툭 찍는 순간, 눈길을 거둘 수 없는 끌림의 장면이 탄생한다. 여기에 시어에 가까운 그의 글까지 보태지면, 한 장의 사진은 한없이 편안하면서도 무한대로 빨려 들어가는 사유의 장으로 변한다. 그의 사진집을 낸 ‘안목’은 사진가 박태희가 꾸려나가는 1인 출판사다. 그는 유학 시절 필립 퍼키스에게 사진을 배웠다. 이제 둘은 사제지간을 넘어 서로 같은 길을 걷는 사진가로서 우정과 교감을 나누는 사이다. 전시와는 또 다른 분위기로 필립 퍼키스의 매력을 전하는 이 정갈한 책에 예사롭지 않은 쪽지가 딸려 있다. 쪽지가 들려주는, 증정본을 전하는 사연은 이렇다.


Philip Perkis, In a Box upon the Sea 중에서


낡은 기계에서 제본을 한 탓에 만든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파본이 꽤 나왔다. 그러나 사진집의 특성상 그리고 안목의 직업병에 가까운 꼼꼼함으로 인해 자주 기계를 세우고 인쇄 톤을 맞추느라 이미 인쇄 과정에서 손해를 감수해 준 인쇄소에 차마 책임을 묻기는 어려웠다. 몇 백권씩만 제작하는 사진집 인쇄는 애초 이문을 남기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아까운 파본을 주변과 나눠 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유독 자존심 상할 만큼 사진집 구매에 인색하다.

쪽지는 이런 현실 속에서 외롭지만 고군분투하려는 안목의 다짐 같아서 따뜻하면서도 아렸다. 안목에는 미처 말하지 못했는데, 나는 원래 파본 수집을 좋아한다. 제본 과정에서 표지의 앞뒤가 뒤바뀌는 등의 사고를 거친 책들은 귀신 곡할 노릇이라는 신비감과 함께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본을 손에 넣은 듯한 기분에 젖게 한다. 이번에는 이 귀한 파본 사이에 안목의 쪽지도 같이 꽂아둔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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