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알버스, 여섯 개의 기도문, 1966~1967, The Jewish Museum, New York, Gift of the Albert A. List Family, JM, 테이트 모던 제공
세상은 조금씩 살기 좋아지고 있는 걸까. 지금 여기에서 그 믿음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을 ‘조금 앞서’ 기념하면서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애니 알버스(1899~1994)의 개인전을 열었다. 직물을 ‘공예’에서 ‘예술 형식’으로 전환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그는, 바우하우스의 학생이자 선생이었다.
공식적인 교육제도 안에서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여성들의 입학을 허용한 바우하우스는 진보적 교육기관이었다. 공예와 순수예술 간에는 경계가 없고, 성차별도 없다고 강조하며 자유와 혁신을 이야기하던 바우하우스였지만, 여성이 남성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것은 교묘한 명분을 들어 완곡하게 막았다. 이곳을 졸업한 후 ‘전문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었던 대다수의 여학생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라고 언급되는 ‘직조 공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애니 알버스 역시 바라던 회화 대신 직조를 전공한다. 그는 평면회화와 직조를 연결시킨 ‘회화적 직조’라는 개념을 내세우면서 직조를 사용해 짜임새 있는 딱딱한 패턴의 시각적 어휘를 개발하여 독자적인 기하추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회화’를 놓지 않기 위한 그의 의지가 엿보인다.
‘회화적 직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여섯 개의 기도문’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내용을 담아 베이지색, 검은색, 흰색, 은색의 수직 태피스트리 6점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수직과 수평으로 중첩되는 선들은 그 무엇도 선명하게 발언하지 않지만, 작가는 그 선들의 매듭과 엉킴 사이사이에 언어로 표현하기에 부족한, 언어가 쉽게 왜곡할 수 있는 감정들을 직조해 나갔다. 그 사이에는 여성의 ‘창의성’을 외면하던 바우하우스를 향한 ‘어떤’ 감정의 실타래도 꼬여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