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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뮤트

삼손영, 소리죽인 상황 #22: 소리죽인 차이콥스키의 5번, 2018, 12채널 사운드 설치, 단채널 비디오 ⓒ삼손영

 

“이 작품은 실패다.” 차이콥스키는 1888년 5번 교향곡의 초연을 마친 후, 자신의 음악에 대해 스스로 혹평을 던졌다. 그 자신도 느낀 것처럼, 이 곡은 “조악하고, 일관성이 없었다”. 그는 “지독한 피비린내가 나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다”는 평론가들의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대중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는 이 곡을 사랑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대포의 포격이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아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들을 위로한 곡으로 더 유명해졌다.

 

홍콩 출신으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작가 삼손영은 독일 쾰른의 플로라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전곡 연주를 요청했다. 이때 그가 덧붙인 하나의 조건은 연주는 하되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연주자들은 바이올린의 활을 켜고, 클라리넷을 불지만 ‘선율’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악보를 넘기는 소리, 현을 긁는 소리, 연주자의 숨소리만이 12채널의 스피커를 통해 공간을 가득 채울 뿐이다.

 

그렇게 오케스트라는 ‘영혼을 담아서’ 연주를 시작해 ‘노래하듯 자유롭게’, ‘달콤하고 그리운 느낌’으로 전개하다가 왈츠를 연주한다. 이어서 팀파니와 현악기, 금관악기가 강렬하게 질주하며 알레그로로 장엄하고 위풍당당하게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 휘몰아치는 연주 안에 ‘음’은 없다. 숨죽인 상황 안에서 관객들은 문득, 정말 억압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음악의 화려함이 은폐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린다. 그래서 삼손영의 ‘음악없음’은 역설적으로 그 ‘음악’의 감정에 더 집중시킨다. 청각을 다시 상상하고 구성하는 이 시간 속에서 ‘소리없음’은 ‘침묵’일 수 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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