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언제인가. ‘당신이 가진 것은 시간뿐’이라고 말했던 작가 샹탈 애커만은 ‘지금’의 이름으로 사막의 풍경을 소환한다. 허공에 V자 형태로 매달린 다섯 개의 스크린에서는 마치 달리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처럼, 각각 다른 속도와 시점으로 덜컹거리는 사막이 흘러가는 중이다. 그 안에서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전시장은 간간이 암전에 가까운 어둠에 휩싸였다가, 곧이어 붉은 모래, 바위 절벽이 펼쳐지는 예의 그 사막 풍경을 거칠게 흘려 보낸다.
샹탈 애커만, 지금, 2015, 멀티플 채널 HD 비디오 설치, ⓒ샹탈 애커만
다섯 개의 스크린 사이로 시선이 겹치고 흔들리는 가운데, 문득 파란 하늘이 화면을 채울 때면, 사막의 바위와 모래는 더 건조하고 거칠게만 보인다. 텅 빈 사막에 시선을 준 사이, 전시장 안에는 두려움 가득한 울부짖음, 엔진 소음, 동물의 괴성이 만드는 불협화음이 차오른다. 시작도 끝도 없이 반복되는 영상 사이를 뚫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총성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전쟁과 죽음의 장면이 떠오른다. 애커만은 하늘과 모래가 끝없이 출렁이는 빈 사막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우리가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은 늘, 야만과 유혈의 신호다”라는 말을 보탰다.
“영상 앞에서 관객은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또한 시간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저항감을 느끼는 이유다.” 그는 관객이 그의 영상 앞에서 온몸으로 흘러가는 매 시간을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공허한 사막에서 샹탈 애커만이 보았을 ‘지금’은 반성 없는 인류의 과거가 무한 반복되는 ‘지금’일까, 그 결과 어쩌면 땅 위의 생명이 소멸한 ‘지금’은 아닐까. 스치는 풍경들의 스산함이 암시하는 ‘지금’은 어둡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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