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경계 밖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할 만큼 먼 거리에서는 당연히 여기와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멀리 날아갈수록 낯섦은 깊어진다. 공항 가는 길은 그곳만의 기후, 자연,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러나 정작 공항 자체는 경계에 머문다. 넓은 활주로를 위해 도심에 들어서지 못하고, 엄청난 소음은 주변으로 정착할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도 못한다. 공항에 근무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만 있을 뿐, 일상이 축적되지 못하는 곳. 여기와 저기를 잇는 허브이면서도 스스로는 외따로 존재하는 이방인 같은 존재일 뿐이다.
김신욱, Airport Way, 2015
런던에 살고 있는 김신욱은 히스로공항을 이용할 일이 잦아지면서 점점 공항을 둘러싼 주변부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오래전 히스꽃이 만발하던 농지의 대다수는 공항 부지로 편입되었고, 일부는 산업 시설이나 목장으로 변신했다. 서커스나 노천 술집이 들어서 더 멀리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유혹하는 한철 장사가 성행하기도 한다. 드문드문 주택가가 있지만 대개는 비행기의 굉음을 감내해야 할 만큼 변방에 몰린 이들이 머문다. 모두가 제 갈 길만이 바쁜 이곳에서 상주하는 직원처럼 공항을 찾는 단골이 등장하기도 한다. 카메라나 망원경을 들고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을 기록하는 이들은 전 세계 비행기의 기종과 항로를 꿰찬 채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낙으로 삼는다. 그들은 오직 공항만이 선물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취미의 세계에 몰입한 자들이다. 김신욱의 ‘공항’ 연작은 이용객의 입장이 아니라 공항 자체가 지닌 장소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들은 꽤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겨서 굳이 따지자면 이곳보다는 저곳에 더 가까운 것처럼 생경하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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