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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선승혜의 그림친구

오아시스의 마음가짐


둔황(敦煌)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곳으로 사막지대의 오아시스 도시다. ‘모래가 우는 산’(鳴沙山)과 ‘초승달 샘물’(月牙泉)의 오아시스를 가진 둔황은 깨달음의 가치공간으로 시간을 초월한다. 돈독한 빛이라는 지명은 상징적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막고굴(莫高窟)이라는 수많은 굴을 파고,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몇몇이 모여서 명상과 담론으로 마음의 가치를 잃지 않았던 태도가 둔황을 만들었다. 막고굴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지친 이에게 쉼을, 여행을 다시 떠나는 이에게 안전을 기원하는 화해의 장소다. 둔황은 나와 너의 경계가 없다는 점에서 탈경계를 경험한 곳이다.


둔황 막고굴



21세기 국경을 넘어서서 신(新) 실크로드의 부활을 도모한다면, 그 시작은 인본가치여야 한다. 미래형 비단길은 오아시스의 길로 부르고 싶다. 수많은 무역로가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수많은 북방민족이 제국을 세우고도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 비단길의 실크라는 무역품은 사라졌지만, 둔황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힘의 경쟁은 다변하는 것이지만, 인본적 가치는 영속한다.

“진리는 가르칠 수 없고 깨닫는 것이다”라고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를 쓰며 말했다. 극한 메마름의 사막에 서면 한 모금의 물로 본질에 이른다. 오아시스에서 가치를 배워보자. 사막 한가운데 물은 볼품없는 나무라도 생명이라서 소중하게 생명수를 준다. 둔황은 거친 사막 속에 생명수 같은 안식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수세기를 넘어서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았다. 수많은 변명을 비우고 사람을 품어내는 진심을 놓지 않을 때, 지금 여기가 둔황 같은 가치공간이 될 수 있다.

현실은 온화하지만 않고, 격하게 움직이는 판에서 상대와 함께 뛰어야 한다. 다같이 버틸 수 있는 힘은 문화예술의 인본가치다. 군사외교는 오늘의 동지를 내일의 적으로 만든다. 문화예술은 상대와 호흡을 적절히 맞추며 지혜를 알려준다. 적을 적으로, 무기를 무기로 만드는 태도를 버리고, 조화의 지혜를 나누고 싶다. 인본적 가치로, 오아시스 같은 예술로 지속가능한 문화유산을 만드는 그 길에 서고 싶다.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