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러브 디퍼런스, 2003
2003년 2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대규모 항의 시위가 열리던 주말, 뉴욕에서 만난 비평가 몰리 네스비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작가 리크릭 티라바니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전쟁, 빈곤, 자연파괴, 금융위기 같은 불안감에 흔들리는 일상 속에서, 지구의 멸망을 예견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사람들에게 ‘유토피아’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 키워드는 ‘여기 아닌 어딘가’를 상상하며 ‘지금 여기’를 들여다보는 계기는 될 수 있었다.
기획단은 만남이 교차하는 물리적이고 개념적 장소 ‘유토피아 스테이션’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들은 작가들에게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을 담은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이 작업들을 모아 그해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 ‘유토피아 스테이션’을 설치했다. 참여작가들 가운데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는 전시장 안에 거울로 된 대형 테이블을 설치한 ‘러브 디퍼런스’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유토피아’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유토피아 스테이션에는 유토피아를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이 스쳐간다. 사람들은 이 역에 잠시 멈추어, 듣고 보고 휴식을 취하고 생각하고 대화를 나눈다. 미래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를 세계를 상상하는 이 플랫폼 안에서, 다양한 의견이 모이고 흩어졌다. 공연, 콘서트, 강의, 독서 모임, 영화상영회, 파티, 이벤트가 열리는 ‘역’은 유토피아로 가는 노정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장소가 되었다.
이후 전시, 포럼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유토피아 스테이션에는 300명 이상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유토피아에 대한 그들의 ‘정의’를 찾아갔다. 웹사이트 projects.e-flux.com/utopia/에서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테마로 한 지상 포스터전이 열리고 있으며 모든 포스터는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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