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장 피에르 곤살베스 드 리마, 7월11일, 12일, 13일, 2013, 캔버스에 아크릴릭, 121.9×91.5㎝ ⓒ 데이비드 호크니
평생 그림을 탐구하고 실험을 놓지 않았던 데이비드 호크니였지만, 그의 조수이자 동료인 도미니크 엘리엇이 사망한 뒤 몇 달간은 좀처럼 붓을 들 수 없었다.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처음 방문한 미국에 매료된 호크니는 LA로 이주했고 30여년의 시간을 보냈다. 2004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하늘, 숲, 나무, 꽃을 그리면서,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기후 안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계절감을 만끽한다. 그는 풍경 안에서 순환하는 계절에 따른 생명의 운동, 한계를 알 수 없는 다양성을 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자연 속에서 순리를 만나는 일이었다. 너무 낡은 매체이기 때문에 동시대의 감성을 담을 수 없다고 여겨지기도 하고, 세월의 경험을 담을 수 있어서 나이든 사람의 예술이라고도 묘사되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는 새로움과 담을 쌓지 않았다. 오히려 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꾸준히 발굴하며 늙어가는 중이었다.
호크니가 잠들어 있던 시간, 그의 집 한쪽에서 23세의 청춘 엘리엇은 약물과 술에 취해 독극물을 마시고 사망했다. 조수의 죽음을 계기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 호크니는 작업을 멈추고, 영국을 떠났다. LA에서도 고통을 동반한 침묵의 시간은 이어졌지만, 고통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그와 같이 엘리엇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조수 장 피에르 곤살베스 드 리마의 초상이 그 출발점이었다. 두 손에 머리를 파묻은 채,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서 호크니의 통증을 본다. 남겨진 자들은 고통 안에서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 그는 이 작업을 시작으로 82명의 친구, 동료의 초상과 1점의 정물화를 완성했다. 한 작품, 한 인물을 위해 3일의 시간을 보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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