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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대피소 리허설

박준범이 민통선 마을 대피소에서 마주한 장면은 상상과 달랐던 모양이다. 어떤 마을 대피소 안에는 감자만 가득하다던데, 그가 방문한 곳은 다양한 운동기구를 갖추고 있었다. 비상시에는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돕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테지만, 평상시라면 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돕는 역할도 기꺼이 수용하는 다목적 공간인 셈이다.

 

북한으로부터 언제 날아들지 모를 포탄의 사정거리 안에서 사는 이들에게 위협을 가정하고 대피를 준비할 때 피어나는 ‘공포’의 무게는, 헬스장으로 변신 가능한 대피소의 무게감과 비슷해졌을지도 모른다. 불안감은 지독한 일상이 되어 불안해도 불안하지 않은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박준범, 대피소 리허설, 2015, 3채널 비디오, 27분17초 ⓒ박준범

 

작가는 북한과의 경계지역에 있는 마을에 북으로부터 위협이 닥치는 긴박한 재난 상황을 가정했다. 재난 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대피소로 피하거나 대피소를 만드는 일일 터. 작가는 ‘대피소 리허설’을 기획했고, 일곱 사람이 이 과정에 참여했다. 건축가가 대피소 구조 설계에 합류했다.

 

산기슭 반지하에 위치하며, 정원 20명 규모로 가정한 이 대피소는, 실제 경기도 어딘가에 위치한 실내공간에 설치되었다. 급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처한 대피소에 과밀수용은 필연적이다. 작가는 이 공간에서 50명이 30일간 외부와 격리되어 거주하는 상황을 설정했다. 대개의 경우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없는 대피소의 구조를 고민하며 건축가와 복층 설계를 협의했고, 정원초과 상황에서도 서로가 가급적 쾌적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편의시설도 고려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주변에서 주워온 폐자재, 사물들이 새로운 쓰임과 역할을 부여받아 대피소의 외피와 내부를 구성했다. 완성과 동시에 해체되기 시작한 대피소는, 재난이 일상이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한시적이고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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