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류블로프, ‘성삼위일체’, 1400년경
알음알음 좋은 영화를 보기 위해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화가 선배로부터 건네받은 영화가 A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류블로프>(1966)였다. 15세기 탁월한 성화를 남긴 러시아의 유명한 화가이자 수도사였던 안드레이 류블로프(1360~1430)를 소재로 한 영화다. 흑백영화는 전율 그 자체였고, 마치 천국의 열쇠를 쥔 사람처럼, 지인들에게 발설하고, 선물하고, 강권했다. 인생에서 이런 드문 만남은 일종의 ‘에피파니(Epiphany·신의 현현)’가 아닌가!
류블로프의 대표작 ‘성삼위일체’는 러시아 정교에서 최고로 손꼽는 이콘화다. 예수와 성가족을 그린 이콘(icon)은 기독교 예배를 위한 그림을 말하는데 주로 동방교회에서 예배를 위해 많이 사용되었다. 이 그림은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수도원 중 하나인 성세르기우스 수도원에 그려졌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화가는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성삼위일체를 그렸다.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야훼는 세 명의 인물로 등장한다. 바로 성부, 성자, 성령이다. 아브라함은 이들을 극진히 대접했고, 나이 많은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축복을 받는다. 화면에는 후광과 날개를 단 세 명의 인물이 그릇이 놓인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 뒤편으로 아브라함의 장막과 상수리나무가 보인다. 성삼위일체라는 제목답게 얼굴은 거의 비슷하다.
세 존재는 각각 누구일까? 왼쪽은 성부 하나님으로, 가장 높은 신분임을 짐작할 수 있게 황금색 옷을 입고 정면을 응시하며 축성하고 있다. 가운데는 성자 예수로, 얼굴은 성부에게 향해 있고 희생을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고 있다. 당시 붉은색은 황제의 색으로 예수가 이 땅에 온 새로운 왕임을 상징한다. 오른쪽은 성령으로 예수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녹색은 생명의 상징으로 그가 새로운 생명을 주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세 인물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푸른색은 신성과 영원한 진리를 드러낸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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