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바구니, 1945년, 달리미술관
어릴 적 요리사를 꿈꾸었던 달리는 부엌을 동경했다.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 달리에게 부엌은 금지령이 내려진, 그럴수록 매혹적으로 다가온 신비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여자들로 북적이고 활기 넘치는 부엌에 잠입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며 늘 그곳을 서성거리곤 했다. 부엌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죄악이라고 배웠던 달리는 그곳에서 일하는 육감적인 하녀들의 땀내, 흩어진 포도송이, 끓고 있는 기름, 벗겨진 토끼의 가죽, 마요네즈를 뿌린 게 다리 등의 열기와 향기를 음미했다. 추억은 언제나 향기로 각인되는 것이다!
특별히 달리는 식사를 신을 받아들이는 성찬식처럼 신비롭고 거룩한 행위로 여겼다. 더군다나 그는 작업에 몰두할 때 빵과 물만을 먹으면서 지냈다. 마치 그림 그리는 행위를 예수의 고행과 동일시했던 것일까? 이처럼 달리에게 빵은 철학적이고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더군다나 빵은 음식이란 개념을 넘어 ‘어머니(모성), 여성, 유년시절’과 같은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랑의 매개체였던 것이다.
1926년 사실주의 기법을 써서 빵을 처음으로 그린 이후 달리는 수없이 많은 빵을 그려냈다. 그의 대표작 ‘포르트리가의 마돈나’, ‘원자핵의 십자가’, ‘회상의 여자 흉상’에도 별난 형태로 빵이 등장한다. 이처럼 빵은 풍요로움 혹은 영적인 의미와 결합하고 있다. 1993년 달리 연극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의 대부분 작품도 빵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한때 달리는 파리협회에서 혁명적인 빵의 결사까지 조직하고자 했으며, 길이가 15m에 이르는 빵을 특별 제작한 오븐에서 구워 파리의 유명한 공공장소에 전시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평을 받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은 미술이 ‘일용할 양식’ 같은 기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해에 가장 먼저 떠오른 빵바구니 그림이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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