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는 전시 소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문제를 표상화하며 그 의미를 되묻는 역할도 한다. 사진은 대림미술관에서 오는 29일까지 진행되는 하이메 아욘 전시 장면. ⓒ홍경한
20대 후반부터 이어온 미술전문지 편집장 생활을 접은 이후 올해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한 해를 보낸 적이 없다. 잠시였으나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던 작년까지만 해도 조직의 일부였다. 이 때문에 2019년은 온전히 ‘전업비평가’로 산 첫 해라고 할 수 있다.
불완전한 익명성의 층위를 가시화하고, 예술과 사회에 새로운 모더니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면 그 직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이 조화를 이뤄 생활고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직업은 없다. 난 전업비평가야말로 부합하는 직업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체험해보니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컸다. 일단 수입이 들쑥날쑥했다. 계획적인 살림은커녕 평균 산출이 불가능할 만큼 롤러코스터를 탔다. 벌이도 영 신통치 않았다. 이곳저곳 대학 강의를 나갔으나 그건 대체로 재능기부에 가까웠다. 현장을 매개하며 미학적 소통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평의 직능이 그 자리에 서게 하는 동기였을 뿐, 사실상 주머니 사정과는 무관했다.
평론을 주된 업으로 삼지만 각 재단이나 미술관 등에서 의뢰하는 평론은 공들이는 시간과 정성 대비 지나치게 헐값이었다. 모 지자체가 운영하는 창작공간 입주 작가들의 평론을 써서 보냈더니 원고료가 달랑 13만원에 불과했다는 한 미술평론가의 지난 4월의 토로는 현재도 유효하다. 주어진 소명의식을 고려하면 각종 심사나 평가, 자문 사례비 역시 소소했다. 기관이나 실무 담당자에게 밉보일 경우 그마저도 참여할 기회가 줄어든다. 사전 양해 없이 원고를 난도질해놓고도 공식 사과 한 번 한 적 없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예술경영지원센터와는 다른 차원이나, 전문가 명단을 놓고 자의적으로 빨간 줄을 긋는 공공기관이 여전히 존재한다. 비판적인 글을 자주 생산하는 비평가들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벙어리와 귀머거리로 살라는 것과 진배없다.
전업비평가들은 정체성의 불안정함도 겪는다. 실제로 현장에선 평론가라는 명사 자체가 직업인 이들에게 툭하면 ‘소속’을 따진다. 기관들이 내미는 서류에는 직장명과 단체명, 소속을 기입하는 항목이 따로 있다. 이에 한번은 소속을 ‘미술계’로 써야 하나 싶은 상상까지 해봤다.
이처럼 전업비평가로서의 삶은 여러모로 고되다.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만큼 책임의 무게 또한 가볍지 않다. 미술 현상과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분석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원리 연구와 논리적 규명에 필요한 공부도 게을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직장에 적을 두고 있을 때보다 훨씬 바지런해야 한다. 교수, 총감독, 편집장 등 계급과 직함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선 특히 그렇다.
우리나라에는 300여명의 미술평론가가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활동하는 평론가는 손에 꼽는다. 전업비평가는 더욱 적다. 나머지는 무대가 없어서 혹은 생활고에 시달려 이직을 했거나 그냥 쉰다. 미술을 통해 의미 있는 담론을 생성할 수 있는 인재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장되고 있는 셈이다. 궁극적으로 이는 사회적 손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부의 지원과 관심은 낮다. 차세대 비평가를 발굴·육성하는 공적 프로그램도 거의 없다. 있다 해도 극소수를 대상으로 소액의 원고료를 잡지사에 대신 내주는 수준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내년엔 전업비평가들을 둘러싼 환경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도 미술계 구성원이고, 평론가 없이 예술 가치를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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