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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판화의 귀환 처음엔 일본과 중국 목판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1958년 ‘한국판화협회’가 조직되고 1968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설되면서 한국 현대판화는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판화에 관한 사회적·예술적 인식이 아주 낮아 회화의 아류나 인쇄물에 삽입되는 보조수단 정도로 치부됐다. 그럼에도 한국 현대판화의 선각자들은 우리만의 제지술과 인쇄술에 외국의 기술 및 기법을 신속히 접목하면서 자생력을 다졌다. 1970~1980년대엔 독자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했고, 1988년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 판화과가 설치되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전문 판화가들도 다수 배출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판화는 조형 영역과 표현 영역에서 확연한 색깔을 드러내며 1990년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판화에 대한 대중의 .. 더보기
공공미술과 허울뿐인 예술가 일자리 기존 공공미술의 목적은 예술 향유 확장, 문화 소외지역 환경 개선 및 지역공동체 화두의 예술적 실천에 있다. 하지만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프로젝트들의 다수는 무엇보다 예술가의 일자리 창출을 중시한다. 정부의 국정과제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1972년 문예진흥법이 제정될 당시 생겨나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건축물미술작품제도’를 비롯해, 오늘날 여러 지자체에서 앞다퉈 시행 중인 공공미술 사업 역시 같은 맥락이다. 모두 예술가의 일자리 배양을 통한 소득증대라는 속뜻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긍정적인 의도와 투입되는 막대한 세금에 비해 효과는 미미하다는 점이다. 공적 영역은 진입이 까다롭고 민간 건축주가 발주하는 사적 영역에선 미술인들에게 고른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나마 뭐라도 하나 설치하려면 .. 더보기
국립현대미술관 신임 학예실장을 바라보는 시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단순한 계약직 공무원이 아니다. 동시대 미술의 비전을 제시할 전시 계획에서부터 소장품 구입, 교육, 공공프로그램 등에 관한 연구 기획, 출판 운영까지 총괄하는 미술관의 핵심 요직이다. 그 자리에 최근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김준기씨가 내정됐다.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를 거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한 인물로, 서류상의 경력만 놓고 보자면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민중 색채 짙은 전시 이력이 민중미술계열 대표 인사인 현 윤범모 관장과 겹치는 데다, 이들의 남다른 친분 때문이다. 각종 행사와 전시에 바늘과 실처럼 이름이 등장하고, 심지어 윤 관장의 학교 정년퇴임 전시기획에 참여한 것도 김씨이니 호형호제인 양 바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편향적 경향.. 더보기
온라인의 도전에 직면한 전시환경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신 위기 이후의 새로운 환경이 언급된다. 그렇다면 생활방역이 일상화된 이후 미술 전시 환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미술의 존재방식에 관한 담론을 거쳐야 하는 과정의 지난함이 놓인 현실과 개념 및 표상, 시각과 정신을 한 몸으로 삼는 게 미술이기에 확언하긴 어렵지만 ‘온라인화’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 보인다. 실제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미술장터인 ‘아트바젤 홍콩’은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개최가 무산되자 곧바로 온라인 뷰잉룸을 열어 상업적 가능성을 타진했다. 의외로 성과는 좋았고, 오프라인 페어의 대안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우저 앤 워스와 같은 대형 갤러리들 또한 본격적으로 온라인 플랫폼 구축에 나서며 인터넷을 이용한 작품.. 더보기
‘착한 대학’은 없을까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강력한 ‘물리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대학들도 캠퍼스를 폐쇄했다. 강의는 온라인으로 옮겨 갔다. 지난 22일 기준 연세대, 한남대, 홍익대, 서울대, 경희대 등 다수의 대학들이 비대면 강의 연장을 확정했다. 필수적 예방의 일환으로 개정된 교육방법에 대해선 교수와 학생 모두 이해하는 입장이다. 당황스럽기는 해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분위기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이 한 달 단위로 규정된 등록금 면제 최소 휴업 기간을 고려한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콘텐츠 부실, 실험·실습 부재에 따른 교육의 질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후자는 등록금 감면 혹은 재정적 배상 요구의 배경이다. 실제로 반값등록금국민운동본부와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예술대학생네트워크 등은 .. 더보기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나라 전체가 웅크려 있다. 미술계 또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동면 상태에 빠졌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답답하다”라는 형용사 속에는 애달픔과 당황스러움이 묻어 있다. 이대로 가다간 예술인을 포함한 경제적 취약계층의 삶이 허물어질까봐 걱정이다. 나 역시 코로나19의 영향 아래 놓였다. 예전 같으면 꽤나 분주했을 3월이지만 올해는 사뭇 다르다. 예정되어 있던 강의는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각종 세미나와 회의, 심사, 평가 등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2주에 한 번씩 진행하던 방송도 중단됐다. 국공립미술관을 비롯한 전시공간들도 대부분 휴관에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전시마저 드물다. 집에 틀어박힌 채 갈 수도 없고 갈 곳도 없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이 무료한 상황은 그 자체로 적잖은 초조와 불안을 유발했.. 더보기
‘인스타용 전시’의 속살 10여년 전만 해도 미술전시에 가서 사진을 찍고 그것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 올리는 문화는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는 많이 변했다. 사진과 영상에 기반을 둔 플랫폼이 유행하면서 기존 미술관의 엄숙하고 무거운 느낌을 걷어낸 전시들이 인기다. ‘인생 짤’ 운운하는 인증샷 테마전도 부쩍 늘었다. 이를 소위 ‘인스타용 전시’ 혹은 ‘갬성(감성) 전시’라 부른다. 인스타용 전시를 찾는 관람객의 다수는 20~30대이다. ‘느낌적인 느낌’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에게 전시장은 일종의 문화놀이터에 가깝다. 미술관은 스튜디오이며 작품은 ‘나’를 빛내는 소품이다. 교양과 오락 사이의 모호한 중간지대인 이런 전시들은 대중과 예술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이래저래 자주 접하다보면 전시.. 더보기
기생(寄生) 정치와 기생(寄生) 전시 올해 총선에 나선 여당 예비후보들의 주된 표제는 문재인 대통령 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길을 걷다 보면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현수막으로 내건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으며, 예비후보 경력에 ‘문재인’이라는 이름을 포함시킨 경우도 심심찮다. 단지 전·현직 대통령 이름을 빌렸다고 지역일꾼으로 뽑는 유권자들이 있을까 싶다가도, 효과가 있으니 저런 장면들을 연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국민들을 위한 정책과 비전이 아닌 이념과 계파주의로 승부하려는 전략이 긍정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아니, 솔직히 필자는 그들의 양태를 친문마케팅이라 쓰고 ‘기생 정치’라 읽는다. 일반적으로 ‘기생(寄生)’은 숙주(宿主)에 의지하여 생존·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숙주와의 관계에 따라 공생하기도 하나,.. 더보기
윤범모 관장의 1년, 초라한 성과 지난해 이맘때, 미술계는 꽤나 소란스러웠다.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에서 역량 평가 낙제점을 받아 탈락한 후보가 재시험 기회를 얻어 최종 선발되면서 ‘코드 인사’ 논란이 거셌다. 당시 관장 후보는 민중미술계열의 근대미술사학자인 윤범모씨였고, 인사권자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고위직을 역임한 도종환씨였다. 내 편 네 편 진영에 따라 달리하는 양심을 지닌 일부 기회주의자들을 제외하곤 미술계 구성원 대부분은 불공정한 관장 공모 심사 과정에 분노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액면 그대로 믿었기에 배신감도 작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윤범모 관장체제 아래에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그야말로 무색무취였다. 애초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실망마저.. 더보기
전업비평가로 산다는 것 20대 후반부터 이어온 미술전문지 편집장 생활을 접은 이후 올해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한 해를 보낸 적이 없다. 잠시였으나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던 작년까지만 해도 조직의 일부였다. 이 때문에 2019년은 온전히 ‘전업비평가’로 산 첫 해라고 할 수 있다. 불완전한 익명성의 층위를 가시화하고, 예술과 사회에 새로운 모더니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면 그 직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이 조화를 이뤄 생활고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직업은 없다. 난 전업비평가야말로 부합하는 직업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체험해보니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컸다. 일단 수입이 들쑥날쑥했다. 계획적인 살림은커녕 평균 산출이 불가능할 만큼 롤러코스터를 탔다. 벌이도 영 신통치 않았다. 이곳저.. 더보기
헐거우나 볼만한 국립현대미술관 ‘광장’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가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에서 동시에 개최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동시대까지 격동의 근·현대사 100년을 미술의 언어로 풀어낸 300여 작가의 작품 45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근·현대사를 골격으로 예술가와 작품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그려왔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또한 불확실한 미래를 재생적, 창조적으로 상상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 아래 광장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을 우린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한국 근·현대사를 서술하는 중심어로 ‘광장’을 내세운 건 “한국사의 역동성을 가장 뚜렷하게 각인시켰던 지점”(국립현대미술관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 더보기
비엔날레의 ‘규모강박증’과 연고주의 우연히 일본의 트리엔날레 ‘오카야마 아트 서밋’(Okayama Art Summit, 9·27~11·24)에 대한 보도를 접했다. 기자의 관점이 그러했듯 나 또한 국내 사례를 대입하면 너무도 확연해지는 여러 문제점을 이 기사로 인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선 올해로 2회를 맞이한 이 전시는 국제행사치곤 참여 작가의 수가 17명에 불과해 양으로 승부하는 한국의 비엔날레에 비해 상당히 적었다. 2018년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는 160여명이었고, 같은 해 열린 부산비엔날레는 줄이고 줄였음에도 66명에 달했다. 심지어 얼마 전 막을 내린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작가 수가 무려 1200명을 웃돌아 기사에서 표현된 ‘규모강박증’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공개된 자료만 봐도 ‘오카야마 아트 서밋’은 작은 규모.. 더보기
장애·비장애 경계 허문 예술가들 내가 사는 마을은 공기 맑고 조용한 데다 교통이 편리하여 쉼과 치료를 목적으로 한 이들이 많이 찾는다. 요양원을 비롯한 요양병원, 노인복지시설이 여럿 터를 잡고 있고, 장애인복지관 및 발달장애인 직업재활기관 역시 다수 둥지를 틀고 있다. 좁은 동네 특성상 난 그곳에 거주하는 장애인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조금의 불편함도 느낀 적이 없다. 간혹 방죽을 걷다 어정쩡한 인사를 나눈 경우는 있어도 대개는 숱하게 스치는 타인과 나처럼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존재이거나 이웃으로 여길 뿐이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생각마저 같은 건 아닌 듯싶다. 방어적인 태도를 넘어 그들이 마을 분위기를 망친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왕왕 보기 때문이다. 최근엔 시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 특수학교가 세워진다는 소문에.. 더보기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실패한 ‘몽유도원’ 서양의 미술이 보는 즉시 읽혀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옛 그림은 해석에 방점을 두었다. 자연을 그려도 ‘그것’을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마음’을 담았다. 유럽의 미술이 종교와 신화에 치중했다면 우리 미술은 자연주의 사상 아래 인간 내면의 본질을 강조했다. 이처럼 대상의 외형에 치중했던 서양과는 달리 우리의 옛 그림은 뜻과 정신을 옮기는 사의(寫意)를 중시했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역시 상징적 서술에 무게를 둔 작품이다. 실제로 본 것은 아니나 인간의 욕망과 바람을 의미적으로 표현한 이 그림은 안평대군이 1447년 4월20일 밤 꿈에 본 풍경을 들은 안견이 3일 만에 그렸다고 전해진다.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제작 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몽유도원도’는 낮은 토산.. 더보기
욕먹어도 싼 ‘지역 상징 조형물’ 청계천 복원 1주년 기념 조형물 ‘스프링(Spring)’은 높이 20m에 달하는 거대한 위용에 약 35억원이라는 몸값을 자랑한다. 하지만 서울시 최악의 환경조형물이라는 오명도 안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만들었음에도 도시 정체성과 청계천이라는 장소성 및 역사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약 4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강남구 싸이 ‘말춤’ 조각도 곧잘 도시 흉물 상위에 오른다. 싹둑 잘린 손목 형상의 이 황금색 ‘엽기조각’은 강남구의 기대와는 달리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은커녕 심미성조차 심어주지 못한다. 정책 관계자들의 단순한 발상과 미숙한 창의성이 낳은 결과이다. 이들 조형물 외에도 한국엔 보편적 대중 정서와 미적 가치가 반영된 ‘공공미술’과는 거리가 먼 조형물이 넘쳐난다. 공공의 희생을 강요.. 더보기
썩은 사회에 대한 냉소 다소 당황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화제를 몰고 다녀 미술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예술성과 아무 상관 없는 석·박사 종이쪼가리는커녕 제대로 된 정규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다. 가구디자이너, 간호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자신에게 ‘좀 더 나은 대우’를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예술계로 입문했다. 애초 거룩한 미술사적 계보를 잇겠다는 생각 따윈 내다 버린 카텔란은 1980년대 데뷔 당시부터 정치, 사회, 종교, 미술계를 조롱했다. 운석에 짓눌린 교황을 묘사한 90년대 작품 ‘아홉 번째 계시’를 통해 종교의 역할에 대해 되물었고, 고상한 샹들리에가 달린 공간에 살아 있는 당나귀를 넣는 작업으로 미술계의 폐쇄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샹들리에 공간은 허례허식과 쓸데없는 권위를 .. 더보기
‘개미’에 담긴 암울한 시대상 연필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필기도구이다. 돌잡이에 놓이는 것들 중 하나도 연필이니, 어쩌면 연필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손에 쥐는 몇 안되는 사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예술가들에게도 연필은 유용한 창작수단이자 소재이다. 그러다보니 연필을 이용해 독창적인 작품을 남긴 이들도 많다. 다수의 연필화를 후대에 물려준 박수근을 비롯해 이중섭, 천경자, 변시지 등의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이중섭이 그린 ‘소와 새와 게’ ‘세 사람’ 등의 작품은 연필로 그린 소품임에도 유화나 ‘은지화’ 못지않은 예술성을 지닌다. 연필화를 독자적인 경지로 끌어 올린 작가 중엔 원석연(1922~2003)도 있다. 흔히 ‘개미화가’로 불리는 그는 2003년 작고하기까지 80평생 연필화에만 집중했다. 출중한 묘사력을 충족시.. 더보기
‘옥인콜렉티브’ 작가 부부의 죽음 미술가그룹 ‘옥인콜렉티브’는 지난 10년 동안 사회와 예술의 상관성을 넓은 맥락에서 가시화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교육·노동·성·장애·지역 등과 얽힌 예민한 동시대 문제를 여러 작품과 전시를 통해 공론의 장으로 소환했고, 사적 가치를 공적 가치로 전치시키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다. 그 시작은 강제철거가 진행 중이던 옥인아파트에서 진행된 1박2일 공공예술 프로그램 ‘옥인아파트 프로젝트’(2009)였다. 이후에도 그들은 미술과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예술로 풀었으며, 그 궁극의 지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더 나은 삶’이었다. 하지만 ‘더 나은 삶’에 옥인콜렉티브의 구성원이었던 이정민, 진시우 작가 자신들의 삶은 들어 있지 않았다. 최근 ‘허망함’과 ‘죄송함’.. 더보기
미술품 가격을 매기는 데 웬 학력? 미술품 가격과 관련하여 한국 미술계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 ‘호당 가격제’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작품의 크기가 크면 작품 가격도 상승하는 가격 산정법이다. 예를 들어 캔버스 1호(우편엽서 2장을 합친 것보다 약간 작은 크기)가 10만원이라면 10호는 100만원이다. 규격화된 캔버스의 순서를 의미하는 호(號)의 개념상 10호가 1호의 10배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가격은 10배로 뛴다. 예술성보다 물리적 크기에 값을 매기는 ‘호당 가격제’ 외에도 납득하기 불가능한 가격 산정요소는 또 있다. 바로 ‘학력’과 전공 유무 등이다. 그리고 이런 황당한 기준이 자칫 세금으로 구입한 작품에 적용될 상황에 놓였다. 최근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소장품 가격을 재평가하기 위한 용역을 받아 연.. 더보기
풍요 속 빈곤에 흔들리는 그들 약 반세기 전만 해도 텔레비전을 구입하려면 ‘추첨’을 거쳐야 했다. 흑백에 불과한데도 쌀 스무 가마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할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소수의 부자들은 행여 도둑이라도 맞을까 봐 시청이 끝나면 서둘러 미닫이문을 닫은 채 고이 간직하곤 했다. 문 달린 텔레비전은 이제 생활사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지능형 기술을 통해 모든 사물을 연결하여 상호 소통하는 시대로, 김일 선수의 한·일전 TV 중계를 보려고 집주인의 비위를 맞추던 시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네 삶의 환경은 많이 변했다. 모든 것이 풍족해졌고, 넉넉해졌다. 지난 시간, 미술계 역시 천태만변했다. 예를 들어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은 기존 회화나 조각 외에도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표현의 지층에 영향을 미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