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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열이를 살려내라, 1987. ⓒ 최병수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가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에서 동시에 개최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동시대까지 격동의 근·현대사 100년을 미술의 언어로 풀어낸 300여 작가의 작품 45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근·현대사를 골격으로 예술가와 작품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그려왔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또한 불확실한 미래를 재생적, 창조적으로 상상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 아래 광장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을 우린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한국 근·현대사를 서술하는 중심어로 ‘광장’을 내세운 건 “한국사의 역동성을 가장 뚜렷하게 각인시켰던 지점”(국립현대미술관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패한 밀실의 남한 사회와 타락한 광장의 북한 사회에 모두 실망하여 제3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투신한 이명준을 주인공으로 한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등장하는 밀실과 광장을 통해 대립의 해소를 통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1부인 덕수궁관 전시에는 예술로 민족혼을 강조한 1900~1950년대 작품들과 망국(亡國)의 시대를 살다 간 민족투사들의 지조와 절개가 놓였다. 채용신이 그린 구한말 우국지사들의 초상과 열강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사대부들 및 의병들의 작품, 서양미술의 유입 속에서 조선의 전통 미학을 지키기 위한 고민이 묻어나는 작품들이 소개된다.


2부 과천관은 한국전쟁~현재까지의 미술을 통사적으로 다룬다. 근대화, 민주화, 세계화를 화두로 전쟁의 상흔과 민주화 투쟁을 거쳐 새로운 도약을 일군 70년의 역사가 담겼다. 군사정권에 의한 경제개발과 독재라는 극단의 그림자에 짓눌린 격정적 투쟁과 논쟁의 시대였던 1980년대 작품들을 비롯해 이념체제의 붕괴, 자본주의의 도래, 외환위기 속 위기에 처한 민초들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1990년대 작품들까지 다양하다.


이 중 1980년대 당시 광장을 옮긴 최병수의 대형 걸개그림 ‘노동해방도’와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공동공존의 삶과 민주화를 향한 목숨 건 저항을 보여주고, 미시사적 관점에서 세계를 재해석한 작업들에선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정한 징후를 읽게 한다. 특히 베트남전쟁과 5·18민주화운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공간은 역사적 상처를 어루만지는 수준을 넘어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드리운 비극적 현실을 곱씹게 한다.


3부 서울관은 현재의 광장은 어떤 것이고, 미래의 광장이란 무엇인지 자문하게 만든다. 쉼 없이 자행되는 부조리와 불평등에서부터 난민, 생태, 재난 등의 단어가 부유하는 가운데 개인과 공동체, 실존과 타자, 주체와 객체 같은 명사들이 밀실과 광장,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경계 없이 오간다.


결과적으로 ‘광장’전은 역사와 미술의 상관성을 풍성하게 보여준다. 그만큼 볼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서울관의 경우 짜임새가 헐겁고, 과천관은 의미 대비 너무 많은 작품을 몰아넣었다. 중복되는 작가도 여럿 된다.


그러나 가장 거슬리는 건 전시를 통해 사회라는 거대한 광장에서 부조리에 대항하며 정의가 살아 있는 공평한 세상을 지향했던 예술인들을 호명하고 있지만, 정작 불공정한 관장 임명 논란과 같은 국립현대미술관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선 침묵해왔다는 점이다. 서푼짜리 밥그릇을 대신할 용기도, 광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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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광주비엔날레 전시장면, 참여 작가만 무려 160여명에 달했다.


우연히 일본의 트리엔날레 ‘오카야마 아트 서밋’(Okayama Art Summit, 9·27~11·24)에 대한 보도를 접했다. 기자의 관점이 그러했듯 나 또한 국내 사례를 대입하면 너무도 확연해지는 여러 문제점을 이 기사로 인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선 올해로 2회를 맞이한 이 전시는 국제행사치곤 참여 작가의 수가 17명에 불과해 양으로 승부하는 한국의 비엔날레에 비해 상당히 적었다. 2018년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는 160여명이었고, 같은 해 열린 부산비엔날레는 줄이고 줄였음에도 66명에 달했다. 심지어 얼마 전 막을 내린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작가 수가 무려 1200명을 웃돌아 기사에서 표현된 ‘규모강박증’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공개된 자료만 봐도 ‘오카야마 아트 서밋’은 작은 규모 대비 이색적이라는 인상이 짙다. 일단 2017년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 ‘앞선 삶 이후’(After Alife Ahead)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여 크게 주목받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가 예술감독을 맡아 시선을 끈다.


무엇보다 작가들의 면면이 녹록지 않다. 레바논 출신의 사운드 아티스트 타렉 아투이를 비롯해 빼어난 쇼맨십과 기발한 착상으로 전시할 때마다 시끌벅적한 이슈를 만들어내는 매튜바니가 참여해 개성 있는 무대를 꾸렸다. 연출된 상황을 이미지의 거세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현대무용가 출신의 티노 세갈이 함께하면서 전시의 풍요로움을 더했다.


이 밖에도 시간과 같이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물질화하는 페르난도 오르테가, 인지과학을 바탕으로 한 컴퓨터 제너레이티드 아트를 미술언어로 삼는 이안 쳉 등 유명과 무명을 넘나드는 작가들이 일당백으로 역할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 일본 작가는 없다. 물론 세계 최고의 미술행사인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주최국 이탈리아 작가는 손에 꼽혔고, ‘하우프트반호프’에 작품을 내건 카셀도큐멘타14 작가 가운데 독일 작가는 아예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견줘 새로운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극명하게 부각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제미술행사의 경우 반드시 한국 작가, 아니 ‘지역 출신 작가’가 끼어 있다. 작품성과 주제에 부합한다면 지역이 어디든 무슨 상관이랴. 그게 아니라 단지 개최지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전시에 넣곤 한다. 그러하지 않을 경우 ‘지역 소외’ 운운하며 반발한다.


스스로를 ‘지역작가’로 묶는 아둔함, 우리 지역에서 우리 세금을 사용하니 우리 지역 작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극히 단순한 셈법을 보면 매우 촌스러운 태도이지만 우린 그 딱한 수준을 극복하지 못한다. 지금도 이런 양태가 이어지고 있고, 내년 일제히 개최될 여러 비엔날레를 통해 다시금 증명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작가들은 그런 수혜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예술성에 관한 가치구분에 따른 정당한 개입과 평가를 지향한다. 하지만 지역에서 나름 힘깨나 쓴다는 이들은 헤게모니의 견고함을 위해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행사를 연고주의 혹은 거소(居所)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현재 전국에서 비엔날레 준비가 한창이다. 부디 이번엔 행사와 지역성 모두를 망치는 연고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지역작가 육성이라는 명분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덩치만 키운다고 의미 있는 행사가 되는 것은 아님을 자각했으면 한다. 이런 글 하나로 그들의 사고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말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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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마을은 공기 맑고 조용한 데다 교통이 편리하여 쉼과 치료를 목적으로 한 이들이 많이 찾는다. 요양원을 비롯한 요양병원, 노인복지시설이 여럿 터를 잡고 있고, 장애인복지관 및 발달장애인 직업재활기관 역시 다수 둥지를 틀고 있다.


좁은 동네 특성상 난 그곳에 거주하는 장애인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조금의 불편함도 느낀 적이 없다. 간혹 방죽을 걷다 어정쩡한 인사를 나눈 경우는 있어도 대개는 숱하게 스치는 타인과 나처럼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존재이거나 이웃으로 여길 뿐이다.


신이피·최일준·홍세진 공동작품 ‘병풍풍경’, 영상·설치·회화, 2019


그러나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생각마저 같은 건 아닌 듯싶다. 방어적인 태도를 넘어 그들이 마을 분위기를 망친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왕왕 보기 때문이다. 최근엔 시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 특수학교가 세워진다는 소문에 설립 반대 시위까지 벌일 태세이다. 집값이 떨어지고 유배지처럼 인식된다는 이유이다.


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복지도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째서 거북해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내 이웃보다 내 집값을 먼저 걱정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일부 주민에게 장애인시설은 납골당이나 화장터처럼 기피·혐오의 대상인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정말 집값이 떨어질까. 2017년 교육부가 전국의 특수학교 167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전체 16개 지역 중 14개 지역에서 부동산 가격에 변화가 없었고, 나머지 2개 지역은 오히려 땅값이 올랐다. 결국 주민들의 장애인학교 반대 주장은 근거가 없는 셈이다.


특수학교를 포함한 장애인 시설을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시설로 인해 집값이 하락한다는 주장의 실체는 ‘편견’이다.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비정상과 정상으로 구분하는 미성숙한 의식이 편견을 확장시킨다. 여기엔 동등한 인격체로서 공동공존의 개념은 들어 있지 않다. ‘차별’이라는 형태 없는 폭력만이 부유할 따름이다.


그런 차원에서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의 ‘공동창작 워크숍’은 고유한 조형방식을 넘어 새로운 창작방식과 예술적 가치탐구의 과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유무형의 경계를 허무는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조경재, 김환, 신이피, 홍세진 등 장애 및 비장애예술가 7명이 함께한 지난 5개월간의 기록은 심신의 장애보다 무서운 부정적 편견에 따른 사회적 장애를 공동작품을 통해 스스로 해체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6일 개막한 ‘멀티탭: 감각을 연결하기’를 주제로 한 전시는 인간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란 배려와 존중임을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무대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개념을 시각예술로 재확인시킨 공동창작 워크숍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다양성 존중에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내적으론 ‘동등한 예술생산자’라는 공통의 가치관을 재조성하고, 외적으론 대중들이 나와 다른 삶의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는 융합의 길을 제시했다. 참여 작가 중 한명인 최챈주의 말처럼 장애인을 낯선 사람 혹은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마주하는 사람, 같이하는 사람으로 대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훨씬 건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물론 그때가 오면 장애인 교육시설로 인해 집값이 떨어진다는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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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요한손, 테트리스 청주, 2019 ⓒ홍경한


서양의 미술이 보는 즉시 읽혀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옛 그림은 해석에 방점을 두었다. 자연을 그려도 ‘그것’을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마음’을 담았다. 유럽의 미술이 종교와 신화에 치중했다면 우리 미술은 자연주의 사상 아래 인간 내면의 본질을 강조했다.


이처럼 대상의 외형에 치중했던 서양과는 달리 우리의 옛 그림은 뜻과 정신을 옮기는 사의(寫意)를 중시했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역시 상징적 서술에 무게를 둔 작품이다. 실제로 본 것은 아니나 인간의 욕망과 바람을 의미적으로 표현한 이 그림은 안평대군이 1447년 4월20일 밤 꿈에 본 풍경을 들은 안견이 3일 만에 그렸다고 전해진다.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제작 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몽유도원도’는 낮은 토산을 현실로, 뾰족하고 거친 산세를 도원(桃園)으로 묘사하고 있다. 도원은 현실참여적인 면모를 지녔던 안평대군의 고민이 밴 꿈속 유토피아였고, 이를 조선 최고의 화가는 그림을 통해 가장 이상화된 세계를 만들어냈다. 


지난 8일 개막한 청주공예비엔날레도 도원을 내세웠다. 주제부터 ‘미래와 꿈의 공예-몽유도원이 펼쳐지다’이다. 1200여 명의 작가 작품 2000여 점이 내걸린 이번 전시의 소개 글에는 “꿈처럼 환상적인 즐거움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공예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새로운 공예의 미래를 열고자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갈지자를 그린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이 뒤섞여 있어 공예특성화 비엔날레라는 정체성에서부터 혼란스럽다. 본전시에 해당하는 ‘몽상가들’에서처럼 섹션별 작품의 적지 않은 수가 이현령비현령에 머문다. 


예를 들어 방치된 쓰레기를 통해 생태순환과 인간욕망을 등치시킨 강홍석 작가의 설치작품은 상당히 장소 특정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선사하지만 굳이 공예전시가 아니어도 무방하다. 청주에서 버려지는 물건들로 제작된 미카엘 요한손의 야외설치작품 ‘테트리스 청주’ 또한 공예의 이상적 아름다움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 이병찬의 ‘생명체’라는 제목의 거대 비닐 키네틱 작품마냥 무리하게 끼워 넣은 흔적도 쉽게 드러난다. 생명의 힘과 역동성을 캔버스에 담은 송대섭의 회화 ‘개펄’ 시리즈를 공예 본전시에 넣은 것이나, 정영환의 아크릴 풍경과 몇몇 수묵화 및 족자그림을 보면 흡사 종합미술전을 연상케 한다. 특히 제아무리 몽유도원도의 서사 구조를 차용하고 ‘공예-적’으로 지평을 넓힌 특별전인들 ‘평양의 오후’를 주제로 한 북한사진전과 동물조각 등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전시감독이 의식한 결과겠으나 전반적으로 공예작품의 비중은 높다. 하지만 나열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너무 많은 작품으로 인해 일부 공간은 마치 백화점 매장 같은 착각마저 심어주고, 초대국가관 작가인 중국의 위엔 민쥔이나 팡리쥔의 작품은 공예(工藝)의 의미를 공예(共藝)로 확장한 결과라고 해도 꽤나 억지스럽다.


대체 어디서 이상향의 공예, 새로운 미래의 공예, 공예의 본질을 발견해야 하는지 의아하게 만드는 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몽유도원을 꿈꿨으나 텍스트상의 논리에 그친 전시감독의 기획력 한계를 보여준다. 주최 측이 제공하는 자화자찬식 자료를 베끼기에 급급한 일부 언론보도와 달리 길을 잃고 헤매는 청주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실패한 몽유도원은 그렇게 수십억원의 세금을 낭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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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 1주년 기념 조형물 ‘스프링(Spring)’은 높이 20m에 달하는 거대한 위용에 약 35억원이라는 몸값을 자랑한다. 하지만 서울시 최악의 환경조형물이라는 오명도 안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만들었음에도 도시 정체성과 청계천이라는 장소성 및 역사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약 4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강남구 싸이 ‘말춤’ 조각도 곧잘 도시 흉물 상위에 오른다. 싹둑 잘린 손목 형상의 이 황금색 ‘엽기조각’은 강남구의 기대와는 달리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은커녕 심미성조차 심어주지 못한다. 정책 관계자들의 단순한 발상과 미숙한 창의성이 낳은 결과이다.


클래스 올덴버그, ‘스프링(Spring)’, 2006, 청계천 ⓒ홍경한


이들 조형물 외에도 한국엔 보편적 대중 정서와 미적 가치가 반영된 ‘공공미술’과는 거리가 먼 조형물이 넘쳐난다. 공공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치인들의 전시행정 사례이자 혈세 낭비로 인해 욕먹어도 싼 조형물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지역 상징 조형물’에 이르면 더욱 심해진다.


경북 군위군의 ‘대추화장실’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공중화장실 겸 조형물이다. 특산품인 대추를 홍보하기 위해 2016년 약 7억원의 예산을 들여 세웠다. 그러나 허허벌판에 위치해 파리만 날린다. 강원도 고성군의 ‘항아리 조형물 겸 건축물’의 처지도 ‘대추화장실’과 유사하다. 논두렁에 자리한 16m짜리 이 기괴한 조형물엔 무려 15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됐으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뿐더러 관람객도 드물다.


이 밖에 밥도 못 짓는 괴산군의 ‘대형 무쇠솥’(약 5억원)을 비롯해, 전복산업의 활력을 돋우고 관광객들에게 복의 기운을 전달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완도군의 ‘황금전복’ 조형물(약 2억원), 성의 상품화라는 논란에 휩싸인 강원 인제군 소양강 둔치의 황금 ‘마릴린 먼로 동상’(5500만원) 등도 세금 누수의 대표적 사례이다. 전북 고창군의 ‘주꾸미 미끄럼틀’(약 5억원)이나, 읍·면 상징 대형 포도조형물과 대형 붓 등을 잇달아 설치한 화순군(약 17억원)도 예외는 아니다. 모두 내 돈이라면 저랬을까 싶은 것들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조악하고 상상력 부족한 지역 상징 조형물들은 계속 만들어질 예정이다. 전북 무주군이 추진 중인 ‘태권브이’ 조형물과 인천 월미도의 ‘사이다병’ 조형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재정자립도 최하위인 신안군의 100억원짜리 ‘황금 바둑판’, 비난 여론에 밀려 현재는 다소 잠잠해진 1000억원짜리 부산판 ‘자유의 여신상’도 동일한 범주에 든다.


지자체들이 상징 조형물 건립에 혈안인 데에는 지자체장의 임기 중 성과주의와 근거 없는 경제 진흥 낙관론이 있다. 그들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인프라 구축 없이 상징 조형물만 세우면 관광·홍보·경제 활성화가 절로 될 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 상징 조형물은 무관심의 대상이자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채 지자체장 개인 상징물로 그치기 일쑤다.


지자체 관계자들의 수준 낮은 미의식도 문제다. 미술에 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이해는 된다. 그럼에도 유치한 지역 상징 조형물들을 보면 정치를 한다는 이들의 인문학적 수준이 의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지역 상징 조형물에 내재된 고질적 병폐를 해결하려면 사용자 관점을 우선하는 정책 관계자들의 의식 변화가 이뤄져야 하며, 공동체에 의견을 묻고 협업하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릇된 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감시시스템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적지 않은 세금을 쓰면서도 욕이나 먹는 지역 상징 조형물의 난립을 막을 수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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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프리즈 프로젝트 뉴욕(Frieze Projects New York) 2016, Tribute to Daniel Newburg Gallery 1984-94 ⓒ Photo courtesy: Tim Schenck


다소 당황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화제를 몰고 다녀 미술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예술성과 아무 상관 없는 석·박사 종이쪼가리는커녕 제대로 된 정규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다. 가구디자이너, 간호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자신에게 ‘좀 더 나은 대우’를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예술계로 입문했다.


애초 거룩한 미술사적 계보를 잇겠다는 생각 따윈 내다 버린 카텔란은 1980년대 데뷔 당시부터 정치, 사회, 종교, 미술계를 조롱했다. 운석에 짓눌린 교황을 묘사한 90년대 작품 ‘아홉 번째 계시’를 통해 종교의 역할에 대해 되물었고, 고상한 샹들리에가 달린 공간에 살아 있는 당나귀를 넣는 작업으로 미술계의 폐쇄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샹들리에 공간은 허례허식과 쓸데없는 권위를 내세우는 미술관 및 갤러리이고 오도 가도 못한 채 울부짖는 당나귀는 작가 자신을 포함한 작가들이다.


이뿐 아니다. 그는 한 지방 갤러리에서 통째로 훔친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어 예술적 소재의 허용 범주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으며,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선 자신에게 허용된 전시공간을 향수 광고 에이전트에게 팔아넘겨 충격을 주었다. 이름도 재밌는 캐리비언비엔날레를 창설해 참여 작가들을 모두 캐리비언 해안에 휴가를 보내는 등의 기발한 이벤트는 상당히 유명한 일화다.


그런 그가 최근 영국 블레넘 궁전에서 전시 중이던 작품 ‘아메리카’를 도난당해 대중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미국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물론, 그의 작품 ‘행복한 눈물’까지 덩달아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도둑질로 사라진 황금변기로 인해 또 한번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는 작가와 작품으로 등극한 셈이다. 실제로 무려 70억원에 달하는 이 작품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은 지금도 매우 높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변기가 황금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예술이 선사하는 풍자의 맛과 작품 속에 내재된 메시지이다. 즉, 동시대인들이 늘 체감해온 물질만능주의와 부(富)의 불균형에 대한 카텔란식 비판의식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 제목이 ‘아메리카’이긴 해도 돈이면 다 된다는 인식이 낯설지 않은 현실,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할 것 없이 소수의 자본권력이 그렇지 않은 이들의 몫, 기회, 파생권력까지 모두 쥔 채 사회적 자본의 세습까지 이뤄지는 구조를 생각하면 부의 불균형에서 열외될 나라는 없어 보인다. 특히 작금 논란이 되고 있는 조국 장관을 둘러싼 의혹은 한국의 자본권력이 정의로운 기회를 앗아가고 계급주의와 신분주의, 음서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읽게 한다.


믿음에 대한 무례함이라는 가톨릭 국가들의 반발을 사긴 했어도 교황 역시 인간일 뿐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아홉 번째 계시’처럼 ‘평등’ 또한 ‘아메리카’에 담긴 메시지 가운데 하나이다. 한 끼 식사로 10만원짜리 호텔 뷔페를 먹건, 2000~3000원 하는 김밥 한 줄을 먹건, 배설은 동일하다고 말하니 말이다.


유머러스함 뒤에 숨겨진 진지함을 특징으로 하는 카텔란의 모든 작업은 부조리한 것과 금기시되는 것들에 관한 냉소적 진술이며, 그 발언의 결과는 습속되어온 사회의 폐단과 부패한 상류의식에 금을 낸다. 반대로 우리가 카텔란의 작품에 짙은 공감을 표한다는 건 그만큼 사회가 썩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 국민감정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증명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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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석연, ‘1950년’, 종이에 연필, 64x147cm, 1956 ⓒ 갤러리 아트사이드


연필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필기도구이다. 돌잡이에 놓이는 것들 중 하나도 연필이니, 어쩌면 연필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손에 쥐는 몇 안되는 사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예술가들에게도 연필은 유용한 창작수단이자 소재이다. 그러다보니 연필을 이용해 독창적인 작품을 남긴 이들도 많다.


다수의 연필화를 후대에 물려준 박수근을 비롯해 이중섭, 천경자, 변시지 등의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이중섭이 그린 ‘소와 새와 게’ ‘세 사람’ 등의 작품은 연필로 그린 소품임에도 유화나 ‘은지화’ 못지않은 예술성을 지닌다.


연필화를 독자적인 경지로 끌어 올린 작가 중엔 원석연(1922~2003)도 있다. 흔히 ‘개미화가’로 불리는 그는 2003년 작고하기까지 80평생 연필화에만 집중했다. 출중한 묘사력을 충족시키는 재료로 연필만 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특별히 잘 다룰 수 있고 자신 있는 재료가 있기 마련인데 그에겐 연필이 딱 그러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의 연필화는 빼어났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품 두 점을 출품해 모두 입선할 만큼 수준이 남달랐다. 유럽에서 유학한 첫 번째 화가로 알려진 근대미술의 거장 배운성조차 까만 탄소덩어리에 불과한 연필 하나로 어떻게 그토록 풍부한 수묵화와 같은 느낌을, 단순한 흑백에 기쁘고 슬픈 감정을 녹여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


주제의 폭도 넓었다. 서민적인 내용에서부터 ‘낫’과 같이 일상의 사물을 옮긴 것들, ‘다대포’와 ‘병아리와 거미’처럼 지근거리에 있던 자연과 동물까지 제한이 없었다. 무엇보다 원석연의 연필화는 향토성이 짙었다. 새끼줄에 두어 번 엮인 ‘굴비’나 갈고리에 꿰인 채 머리만 달랑거리는 북어를 농밀하게 묘사한 정물화는 그 자체로 한국적이었을뿐더러, 전쟁과 가난으로 힘들고 지친 삶을 잇던 1950~1960년대의 정경을 소환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러나 원석연의 명성을 높인 작품은 ‘개미’ 연작이다. 미적이면서도 시공을 뛰어넘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서이다. 일례로 수천마리의 개미떼를 사실적으로 담은 작품 ‘전진’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다. 


또한 한 마리의 개미가 넓은 공간 귀퉁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림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 같지만 실제론 한없이 외로운 동시대인들의 고독을 빼쏘았다.


특히 네모난 화면 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개미 무리를 그린 1986년 작품은 정치적으로 분열하고 경제적으로 신음하는 오늘의 사회와 흡사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개미는 불공정과 부정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길 잃은 이들을 본뜬 듯하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걷는 놈 없이 고꾸라져 버둥거리고 몸통과 다리가 분리되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 개미에게선 생사의 경계에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한낱 곤충에 불과한 개미를 통해 시대의 고통을 표현한 원석연. 비록 존재한 시간은 다르나 우린 그의 개미를 보며 현재의 인간 삶과 개미들의 삶이 그리 다르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개미마냥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권력을 쥔 이들의 온갖 반칙과 꼼수, 편법과 특혜 의혹 앞에 좌절하는 동시대인들의 쓸쓸함과 허무함을 체감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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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 라이브 퍼포먼스, 2014


미술가그룹 ‘옥인콜렉티브’는 지난 10년 동안 사회와 예술의 상관성을 넓은 맥락에서 가시화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교육·노동·성·장애·지역 등과 얽힌 예민한 동시대 문제를 여러 작품과 전시를 통해 공론의 장으로 소환했고, 사적 가치를 공적 가치로 전치시키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다.


그 시작은 강제철거가 진행 중이던 옥인아파트에서 진행된 1박2일 공공예술 프로그램 ‘옥인아파트 프로젝트’(2009)였다. 이후에도 그들은 미술과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예술로 풀었으며, 그 궁극의 지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더 나은 삶’이었다.


하지만 ‘더 나은 삶’에 옥인콜렉티브의 구성원이었던 이정민, 진시우 작가 자신들의 삶은 들어 있지 않았다. 최근 ‘허망함’과 ‘죄송함’을 남긴 채 세상을 등지면서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미술언어로 위로하며 이웃의 사연을 공공의 기억으로 승화시켜온 그들의 작업 역시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게 됐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미술계는 충격에 빠졌다. 아직 분명하진 않지만 생활고가 큰 원인이었음이 전해지면서 충격은 비통함으로까지 번졌다. 여러 굵직한 전시에 초대받은 경력을 지닌 데다, 지난해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수여하는 ‘올해의 작가상’ 최종후보에 오를 만큼 역량을 인정받은 작가들이기에 더욱 그랬다.


사실 생활고로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은 한둘이 아니다. 2011년 가수 이진원이 가난을 견디다 못해 뇌출혈로 사망했고, 2015년엔 유학을 다녀와 왕성하게 활동하던 한 중견 미술인을 비롯해 연극배우 김운하, 영화배우 판영진씨 등이 빈곤한 형편을 극복하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만 해도 활발하게 활동해온 한 공연기획자가 생을 마감하는 등, 지금도 예술가들의 비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예술을 통해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추구했으나, 본인들의 나은 삶에선 소외됐던 옥인콜렉티브의 두 작가 역시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건강한 미래를 위한 예술이 무엇인지 제시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경제적 궁핍함, 허약한 구조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셈이다.


안타까운 건 이와 같은 비극이 특정인에 국한된 것도, 생활고만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수의 예술가들이 잠재적 아사 위기에 놓여 있는 건 자본논리에 휩쓸리는 구조의 불균형, 저마다 다른 예술장르에 대한 섬세한 접근의 부재로 이해하는 게 옳다. 최소한의 민생고라도 해결할 수 있는 안전망을 통한 예술의 지속성 측면도 헐겁다.


이에 정부는 2011년 ‘예술인복지법’을 만들어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하고 이른바 판매가 되지 않는 작품은 경제적인 보상이 낮다. 더구나 세금 값보다 소중한 ‘의미 값’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회인식과 예술의 효용성을 외면하는 교육,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창조산업으로 연결하는 고리의 희미함도 예술로 먹고살 수 있는 길을 험난하게 한다.


옥인콜렉티브의 이정민, 진시우 작가는 자신들의 죽음을 예고하는 예약 메일에 “바보 같지만 작가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 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예술이 예술가의 전부인 삶이 결코 ‘바보 같은’ 것은 아님에도 현실은 ‘바보 같은’ 짓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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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가격과 관련하여 한국 미술계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 ‘호당 가격제’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작품의 크기가 크면 작품 가격도 상승하는 가격 산정법이다. 예를 들어 캔버스 1호(우편엽서 2장을 합친 것보다 약간 작은 크기)가 10만원이라면 10호는 100만원이다. 규격화된 캔버스의 순서를 의미하는 호(號)의 개념상 10호가 1호의 10배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가격은 10배로 뛴다.


박수근, ‘산’, 1959, 국민화가 박수근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지만 작품 가격은 최고 수십억원대에 이른다. ⓒ 박수근미술관 소장·정기용 기탁


예술성보다 물리적 크기에 값을 매기는 ‘호당 가격제’ 외에도 납득하기 불가능한 가격 산정요소는 또 있다. 바로 ‘학력’과 전공 유무 등이다. 그리고 이런 황당한 기준이 자칫 세금으로 구입한 작품에 적용될 상황에 놓였다.  


최근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소장품 가격을 재평가하기 위한 용역을 받아 연구·진행한 결과로 ‘미술품 가격 결정 모형’을 내놨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꽤나 괴상하다. 작가가 대학·대학원을 졸업했는지, 전공 유무에 따라 통상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상 경력, 언론보도 내용 등도 모두 점수로 매겨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계산법이라면 미술대학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반 고흐의 작품 한 점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현실은 설명하기 어렵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박수근이나 공식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브 클라인, 장 뒤뷔페, 앙리 루소와 같은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설사 시장에 선보인 적 없는 작가의 작품에 한정해도 모양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에 넘치는 ‘실기박사’들의 작품은 가격 면에서 상대적 우위에 선다. 박사 학위가 있다 하여 작품 수준도 반드시 박사급일 리는 없는데도 말이다. 


협회의 미술품값 산출 근거에는 개인전 개최 횟수를 포함한 초대전, 대관전 유무 등도 들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허점이 많다.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1년에 10번이든 100번이든 개최할 수 있는 게 개인전이고, 초대전이란 이름으로 대관전을 여는 작가도 드물지 않다. 상도 상 나름이며, 언론보도 내용 또한 비중이 제각각일 수 있다.


사실상 작품 가격 산정에 있어 가장 유의미하게 평가해야 할 부분은 미술사적 선구성 및 미학적 가치, 사회적 역학성을 포함한 ‘작품성’이다. 박수근, 마르셀 뒤샹, 피카소 등의 작품 가격이 상당한 것도 미술사에 남긴 기념비적 작품에 기인하지, 학력 및 경력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구매자의 취향과 소장 욕망이 즉시 작동하는 미술시장에선 작품성 자체도 절대적 척도가 되진 않는다. 특히 전문가들이 혹평하는 작품이라도 ‘지불의사’가 강하면 가격은 얼마든지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잘 팔리는 게 곧 우수한 작품성을 뜻하진 않는 이유다.


그동안 미술품 가격은 작가에 의해 제시되고 유통채널과의 조율을 거쳐 시장경제체제에서 자연스럽게 운영되어 왔다. 반면 작가 제시 가격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미술품 가격 결정 모형’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졌다. 난해한 미술품 가격에 대한 해답을 이끌어내려 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품 가격 산정 근거로 제시한 학력, 경력, 작품 크기 등의 정량화 요소들은 설득력이 약하다. 무엇보다 이런 엉성한 잣대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소장품 가격을 재평가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시간을 갖고 더 연구할 일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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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Hotel Room’, 캔버스에 유채. 1931. 미국 작가인 에드워드 호퍼는 과학문명의 발달과 물질의 풍요로움에 의한 인간성의 상실을 공허하고 외로운 모습의 인물과 풍경으로 옮겼다.


약 반세기 전만 해도 텔레비전을 구입하려면 ‘추첨’을 거쳐야 했다. 흑백에 불과한데도 쌀 스무 가마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할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소수의 부자들은 행여 도둑이라도 맞을까 봐 시청이 끝나면 서둘러 미닫이문을 닫은 채 고이 간직하곤 했다.


문 달린 텔레비전은 이제 생활사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지능형 기술을 통해 모든 사물을 연결하여 상호 소통하는 시대로, 김일 선수의 한·일전 TV 중계를 보려고 집주인의 비위를 맞추던 시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네 삶의 환경은 많이 변했다. 모든 것이 풍족해졌고, 넉넉해졌다. 


지난 시간, 미술계 역시 천태만변했다. 예를 들어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은 기존 회화나 조각 외에도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표현의 지층에 영향을 미쳤다. 미디어의 발전에 따른 특유의 양방향 소통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들과 정보, 조형언어를 실시간으로 획득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미술교육 및 전시형식 또한 달라졌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198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이 유학을 다녀오며 서구 교육제도를 이식받았고, 이는 일종의 연구 활동에 가까운 작업을 잉태하는 데 중요한 균형추가 되었다. 


특히 글로벌리즘이 지배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화천을 이룬 전시형식은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기존의 공간에서 벗어나서 대안공간, 비엔날레, 임시공간, 임의공간으로까지 확대되며 작가들에게 폭넓은 전시 기회를 제공했다. 같은 시기 전국 각지에 우후죽순 자리 잡은 창작스튜디오는 미술 기반 조성에 일조했다. 


시장만 해도 그렇다. 1970~1980년대만 해도 시장에 그림을 내놓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림을 판다는 것은 예술의 순수성을 갉아먹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잘 팔리는 작가가 좋은 작가인 양 대접받고 있다. 널리고 널린 게 아트페어이고 옥션이다.


상대적이긴 해도 동시대인들에겐 경제적 여유로움이 생겼다. 일상은 한결 편리해졌다. 적어도 외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에드워드 호퍼의 우려처럼 물질의 풍족함은 도시의 무미건조함과 인간 소외라는 내적 부작용을 낳았다.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이 활성화될수록 현실 속 자신은 더욱 공허하고 허무해졌다. 진정한 소통 없는 관계로 인한 외로움도 심화됐다.


다소 결은 다르지만 미술인들 또한 현실인과 예술인 사이에서 심적 갈등과 허무를 느끼며 산다. 여러 것이 변했는데 월평균 수입이 수십만원에 불과한 자신의 궁핍함은 전혀 개선되지 않음에 절망한다. 더 배우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해 없는 돈 끌어모아 석·박사에 유학까지 다녀왔건만 학연과 인맥에 치이는 현실에 좌절한다. 


절망과 좌절은 때로 마음에 상처를 낸다. 전시기회가 늘었다고는 해도 되레 작품전을 여는 것만으론 미술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길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레지던시가 숱하게 존치되고 있지만 1년마다 짐 싸는 ‘떠돌이’ 신세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 등이다.


다른 것은 전부 유동적인데 유독 고착된 작가들의 삶. 난 풍요 속 빈곤에 흔들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깊은 시름을 본다. 견디기 힘든 초조함을 장식품 생산 공장이 아니라 예술다운 예술을 하겠다는 이들에게서 읽는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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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2019~2023)’을 발표했다. 박물관·미술관의 양적 확대를 골자로 하는 내용도 담겼다. 공공성 강화와 전문성 심화, 지속 가능성 확보라는 3대 목표 아래 추진할 16개의 전략 및 핵심 과제 중 일부다.


문제는 ‘모두가 누리는 박물관·미술관’ 전략에 포함된 박물관·미술관 확충 계획이 과연 미래지향적인 것인지 의아하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국공립 및 사립 박물관·미술관 수는 이미 1124개에 달한다. 5년 전에 비하면 약 23%나 많은 수치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개최 중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전. 공공성과 대중성을 조화롭게 살린 콘텐츠라는 평가를 받는다. ⓒ 서울시립미술관


그러나 국민의 박물관·미술관 이용률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2018 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박물관·미술관 이용률은 16.5%이다. 2010년(14.8%) 대비 1.7% 상승했으나, 16.6%였던 2014년에 비해선 오히려 줄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체부는 2023년까지 186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추가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873개인 박물관은 1013개로, 미술관은 251개에서 297개로 늘어난다. 그리 되면 박물관·미술관 이용률이 지금의 2배 수준인 30%로 올라설 것이라는 게 문체부의 예상이다.


문체부가 목표로 삼은 30%는 ‘2018 문화향수 실태조사’에서 비교 대상이었던 주민자치센터 이용률(30.4%)과 비슷하다. 물리적 접근성이 용이한 공간이다. 때문인지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에도 접근성은 지역 간, 계층 간 격차 해소 차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하지만 박물관·미술관 이용률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변별력 있는 내용이다. 관람비용, 거리, 통행시간 등은 후순위다. 이는 좋은 콘텐츠가 있다면 다소 멀고 불편하더라도 기꺼이 방문한다는 것이요, 가까워도 흥미롭지 않다면 거리를 둔다는 얘기다. 주민자치센터 이용률이 높은 것도 정보화 교육에서부터 문화예술 강좌까지,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다채롭고 실속 있는 콘텐츠를 저렴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으나, ‘안’을 무엇으로 채울까라는 과제는 박물관·미술관도 마찬가지다. 아니, 본연에 충실해 성공적으로 이용률을 올린 예도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간송미술관이나 색깔 있는 전시로 흥행을 이어 온 대림미술관, 근래 안은미래전과 데이비드 호크니전으로 주목받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대표적이다. 2013년 대구미술관이 개최한 구사마 야요이전을 전국에서 33만명의 관람객이 찾은 것 또한 작품의 질이 높고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콘텐츠 덕분이었다.


그런데 정부의 이번 계획에는 새롭게 개관하는 박물관·미술관에 무엇을 담을지에 대한 내용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박물관·미술관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지어만 놓으면 이용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결론만을 담고 있다.


박물관·미술관 이용률이 저조한 건 박물관·미술관이 부족해서라기보단 콘텐츠가 변변치 못해서이다. 너도나도 만들었다가 뒷감당을 하지 못해 하루 방문객이 수십명에 불과한 박물관·미술관이 수두룩하고, 야간 개장까지 감행했지만 인건비와 시설비만 쌓이는 ‘적자’ 공립미술관이 적지 않은 현실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발 있는 것만이라도 효율적으로 운영하자. ‘속’ 없는 껍데기에 불과해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한 ‘부실’ 박물관과 미술관이 지금도 넘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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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공립미술관장은 곧잘 부유하는 자들의 몫이다. 비정주적 삶이 일상임에도 자리에 대한 욕망은 고정적이다. 다만 그 욕망에 비례해 과연 그들이 지역과 미술계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성과는커녕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내리고 타기 바쁜 지하철 내부에 포스터 형식의 이미지 몇 점 걸어놓고 “예술의 즐거움과 치유의 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하는 궤변 따위다. 


폴란드 태생의 작가 마그달레나 아바카노비츠(Magdalena Abakanowicz)의 인체조각을 비롯한 여러 시리즈는 인간의 존엄과 예술의 용기, 신념에 대한 의미적 풍경을 생성한다.


많은 이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 미술관에 가는 것은 ‘예술의 효과’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예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체감하기 위해서이다. 한데, 국립현대미술관장이라는 이는 그저 또 다른 광고의 하나로 소비될 복제물을 열차 내에 늘어놓곤 예술의 즐거움과 치유의 시간을 말한다. 이미 낡고 흔한 방식을 ‘혁신적인 시도’라고 자평한다. 


그는 약 6개월 전 불공정 절차와 코드 논란 끝에 관장 자리에 올랐다. 미술계 시선을 의식한 듯 “업적은 지금부터 만들어 갈 것”이라며 당찬 포부도 내비쳤다. 그런데 고작 지하철에 그림 복제물을 붙여 놓는 게 혁신적 시도라니. 듣고만 있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미술관, 말이 나와 하는 얘기지만 그곳에 가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형식의 작품들이 자의식을 상실한 채 맹한 표정을 짓고 있다. 철 지난 ‘양식의 발작기’를 다시 소환해 뒤섞어 놓은 것들, 예술의 종말을 통해 예술이 비로소 자유를 획득할 수 있었던 위대한 유산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대체 섭외 기준은 무엇이고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 것일까.


또 다른 전시공간인 대형 아트페어에 들어설 때마다 접하는 온갖 동물과 예쁘장하게 다듬어진 그림들은 누군가의 지갑이 열리기만을 고대한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어쩌면 당연할 수 있으나, 늘 지적했듯 대중 간택에 호소하는 얄팍한 ‘상품’이 작품인 양 둔갑되어 ‘값’과 ‘가치’의 차이를 희석시키는 장면의 연속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이해는 되지만 측은함이 스미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측은함에 무게를 더하는 건 정부다. ‘예술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의 행정력을 죄책감 없이 소비한다. 혈세를 쏟아부으며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고 지원, 심사, 평가 등의 명목으로 미술계 구성원들을 줄 세운다. 그들이 경전처럼 대하는 ‘대중예술 향유 확산’과 ‘작가 자생력 확보’라는 명분은 추상적인 반면, 지원금보다 매출이 적은 상황은 꽤나 리얼하다. 그 돈을 예술인 복지나 순수 창작 지원에 얹히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표현과 창조적 가능성도 인정되는 시대임에도 진부함이 재탕되는 현상, 욕망과 욕구가 충만할 뿐 미래를 위한 변화에 둔감한 내적 양태는 한국미술계에서 쉽게 목도할 수 있다. 현대미술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풍경이다. 그래서 안타까운 건 미술계 지식인들의 행태다. 


그들은 일본 사상가 고소 이와사부로가 말한 경계석을 세우거나 표지를 만드는 최초의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사실상 몇 푼의 거마비와 문제의식을 교환하는 무언의 동조자가 되어 일그러진 미술계를 찬양하고 그 낯설지 않은 풍경의 일부가 된다. 


난 이런 흐름을 접하며 문득 문득 우리는 대체 어떤 길을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문한다. 자문의 빈도만큼 걱정은 짙어진다. 마음속 가득한 속상함을 토로하기에 이 지면은 너무 좁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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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Haacke. News, 1969/2008. 독일 작가 한스 하케는 예술을 통해 권력과 부조리, 관료주의, 비도덕적 자본주의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다뤄왔다. 그의 실증 가능한 사실에 의한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4월 미술평론가 이선영은 한 매체에 ‘공무원이 책정하는 이 지면의 원고료는?’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해 큰 공감을 얻었다. 모 지자체가 운영하는 창작공간 입주 작가들의 평론을 써서 보냈더니 원고료가 달랑 13만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관료주의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 글에 동의를 표했던 이유는 전문성 따위가 들어설 자리 없는 원칙을 신봉한 채 정량적, 기계적, 보수적으로 일하는 관료제의 견고함을 일찌감치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급된 사례가 글쓴이만의 황당한 경우는 아니었던 것도 반향에 일조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숱했다. 얼마 전만 해도 그랬다.


하루는 모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로부터 평론을 의뢰받았다. 하지만 거절했다. 일단 지자체가 제시한 A4 1장에 1만3000원이라는 원고료부터 터무니없었다. 원고 장수별 글자 수 등을 감안하여 기준 20% 범위 내에서 가감하여 지급 가능하다고 해도 20여만원 수준의 고료는 지나치게 초현실적이었다. 


작품을 보러 작가 작업실이 위치한 지역까지 오가는 시간과, 평론을 작성하기 위해 보름 가까이 작품과 씨름해야 하는 노동은 계산에 없는 고료도 문제였지만, 내가 적절치 못한 규정의 선례가 된다는 것이야말로 비평을 사양한 이유였다. 20년 넘은 경력의 중견 평론가가 그런 조건에 응한다면 후배들은 정당한 대가와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런데 이런 예는 지자체가 정한 강의 수당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일례로 최근 어느 지자체에서 미술 관련 강의를 부탁하면서 강사 수당표를 보내왔다. 아무 잘못 없는 섭외 담당자에게서 받은 그것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의 ‘강사 수당 및 원고료 등의 지급 기준’이었다. 그곳엔 친절하게 특1~2급에서부터 5급까지 7단계의 등급이 매겨져 있었다. 적용 대상과 시간당 지급 기준까지 상세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미술’ 강의를 하는데 보수는 전·현직 장차관 및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장 등이 미술전문가보다 훨씬 높게 설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특급’에 해당되어 시간당 초과까지 60만~70만원을 받는데 ‘1급’은 30여만원을 받아 차이가 거의 2배에 달했다.


적어도 시장이나 군수 정도는 되어야 특급이 되는 요상한 표를 보면서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미술전문가가 미술을 말하는 자리에서조차 ‘미술 문외한’이라 자처하는 정치인보다 낮게 대우하는 구조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고, 같은 세금임에도 방송인 김제동 강의에는 1550만원의 예산을 기꺼이 책정하면서 전문 강사에겐 그것의 100분의 1 남짓한 비용을 지급하는 고무줄 잣대엔 할 말을 잃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문 영역에서의 원고료와 강의료, 심사자문비 등등의 지급 기준은 비전문가인 정책자들이 정한 규정 아래 유지되고 있다. 미술을 알지 못한다면서 미술인들의 지식과 경험값을 임의로 지정하고, 비상식적 예산을 노동의 삯으로 제시하면서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상머리 앞에서의 건조한 숫자놀음은 합리적이며 합당함이 존재하는 사회를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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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작가 에르빈 부름의 작품은 세계적인 아트페어나 비엔날레 등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지난해 한 외국화랑을 비롯한 유수의 전시공간들이 기획한 전시에 소개되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편이다.


많은 전시공간이 해외 작가 작품들로 채워지면서 국내 작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유수의 갤러리와 국공립미술관들은 외국 작가 모시기에 혈안이고, 한국에 진출한 외국 미술유통업체 역시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실제로 국내 주요 화랑 중 하나인 국제갤러리는 지난 4월 덴마크 출신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전시를 개최한 이후 스위스 출신의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 작품전을 잇고 있다. 콜롬비아 태생의 오스카 무리요까지 포함해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개최된 서울 전시의 적지 않은 수가 외국작가들이다.


PKM 갤러리 또한 최근 1년간 진행된 전시의 절반가량을 외국 작가로 채웠다. 학고재갤러리도 구미작가들에게 자주 전시공간을 내주고 있다. 국내 진출한 외국 화랑들의 양태도 비슷하다. 2016년 문을 연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지금까지 상당수의 전시를 외국 작가들에게 할애했다. 페로탱 갤러리를 포함한 페이스 갤러리, 리만머핀 갤러리 등 여타 외국 갤러리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국공립미술관 역시 자국 작가들에 대한 애정도가 낮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러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작가인 안톤 비도클과 덴마크의 아스거 욘 전시를 각각 3개월과 5개월에 걸쳐 개최한다. 바로 전엔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하룬 파로키와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 전을 대대적으로 열었다.


기획전 현황도 유사하다. 과천관에서 지난 2월 막을 내린 ‘문명’전 참여작가 130여 명 중 한국 작가는 10% 내외에 머문다. 디지털 체계와 이를 둘러싼 환경을 다룬 기획전 ‘불온한 데이터’ 참여작가 10여명 중 한국작가는 두어명에 불과하다. 대체로 박서보, 김중업, 윤형근 등 몇몇 인지도 높은 작가들을 의무방어전처럼 투입하는 구조다. 중견작가 및 신진작가 지원전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정보가 실시간 공유되는 동시대에서 미술 분야 및 장르, 학제 간 경계는 무너진 지 오래다. 미술언어 자체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한국 작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건 한국미술의 미래와 관련된 현실의 문제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독과점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지닌 일부 갤러리들의 외국작가 사랑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판매를 위축시키고 소장과 향유의 편식을 우려하게 한다. 그렇잖아도 적은 국내 컬렉터들을 흡수하고 있는 외국 화랑들은 국내 군소화랑들의 존속마저 위협하고 있다. 특히 국공립미술관의 편애는 전시기회 기근에 시달리는 작가들에 대한 주의 부재를 증명할뿐더러, 작가 발굴의 가능성마저 차단한다.


이들 화랑과 미술관의 암묵적 키워드는 ‘국제화’이다. 그러나 화랑들이 말하는 내수시장 국제화가 문화사대주의, 선민의식으로 비춰진다면 옳은 방향이 아니다. 미술관이 국제화라는 명분 아래 경쟁력 있는 한국 작가들에게 무심하다는 인상을 심어줄 경우 정책의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국제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흐름인 건 사실이지만, 일방적인 국제화는 문화식민화의 다른 말이며 자칫 한 국가의 예술적 바탕을 무너뜨리고 타자화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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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베니스의 기온은 차다. 반팔을 입고 다니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베니스비엔날레의 열기는 계절의 스산함을 밀어내기에 충분하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인파만 놓고 보자면 베니스는 벌써 한여름인 셈이다.


58회를 맞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의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이다. 흥미롭다는 형용사로 인해 왠지 긍정적 의미로 읽히지만, 실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녕과 평화가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정한 것인지 되묻는다는 게 핵심이다.


살아가기 버거운 세상을 역설적으로 꼬집는 주제 때문인지 79명의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 역시 환경, 난민, 전쟁, 여성, 인종, 소수자 등 당대 인류가 처한 시대 징후에 집중되어 있다. 하나같이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슈들이다.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나온 철조망과 금속 잔해들을 이용한 이불 작가의 설치작업 ‘오바드V’(2019).


문제는 잘 정돈되어 매끄러운 관람이 가능한 반면, 비엔날레 특유의 역동적 파괴를 체감하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작품 간 갈등은 적으나 서로에게 건조하다. 반드러운 전개에 갇힌 나머지 목소리는 웅얼거리는 수준에 멈춰 있고, 날것 그대로의 생경한 자극을 통한 뜻밖의 미적 가치를 심어주지도 못한다.


그나마 총탄이 박힌 초등학교 콘크리트벽 자체를 전시장으로 가져와 마약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멕시코의 현실을 그린 테레사 마르골레스나, 종말적 시각으로 희망과 절망, 인간의 운명 등을 축 늘어진 검은색 인체 조각에 투사한 독일 작가 알렉산드라 버켄 등의 작품이 밋밋한 전시에 균열을 낸다. 


작은 입자를 실내가 꽉 차게 확대해 시각에 건축적 요소를 결합시킨 중국 작가 리우웨이를 포함한, 환경의 생물학적 순환성을 다룬 한국의 아니카 이와 지미 더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강서경의 설치도 민숭민숭한 흐름에 틈을 벌려 놓는 작품에 속한다. 그러나 기대를 모은 작가 이불은 ‘오바드V’라는 제목의 작업을 선보였으나 최근 과잉이다 싶은 남북문제를 주제로 삼아 신선함이 떨어진다. 심지어 위치마저 좋지 않아 존재감이 약하다.


결과적으로 상업갤러리 디렉터가 지휘한 본전시는 썩 괜찮은 재료와 양념을 갖고도 평범한 요리를 내놓는 데 그쳤다. 민감한 치부인 자본과 정치를 억누른 채 인류 공통의 문제를 다양한 매체로 소화하려 했음에도 ‘문화적 논쟁의 장’이라는 비엔날레의 특성을 살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각자의 언어로 저마다 색깔 있는 예술세계를 펼친 국가관이 보다 흥미롭다. 


일례로 박제화된 유리장 내에 광석과 식물을 설치해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피력한 핀란드관이나, 수상도시 베니스를 상상력의 단초로 한 작업으로 인간 삶의 목적과 존재의 본질에 접근한 프랑스관은 당대 미술 흐름과 예술 담론의 틀에 부합한다. 아프리카 식민국가 중 최초로 독립을 쟁취한 가나의 탄생 역사와 자유의지를 담아낸 가나관, 그리고 인형들의 기이한 움직임과 역할을 통해 동일 공간 내에 있음에도 무관심한 인간 상태를 유럽이라는 지역에 빗댄 벨기에관도 시각적 볼거리 이상의 의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를 주제로 한 한국관은 혼란스럽다. 기획자가 밝힌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신체와 소리, 빛의 향연’은 과대포장에 가깝고, ‘매혹적으로 펼쳐지는’ ‘감각적인 오디오 비주얼 설치’ 등의 발언은 텍스트 내에 머물 뿐, 현장은 다른 표정을 짓는다. 인정하든 안 하든 내 판단에는 그랬다. 그런데 나만 그리 헤아리진 않을 듯싶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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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발표된 ‘2018 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예술인들의 약 70%는 예술 활동을 통해 얻는 수입이 월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수입이 아예 없다는 예술인도 30%에 달한다. 그나마 미술인들의 수입은 월 수십만원에 불과하다.


통계만 보면 예술가들은 예술로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미술인을 포함한 예술인들의 처우개선에 목소리를 높인다. 안전판을 만들어줘야 한다거나 강화된 창작지원 및 예술인복지 제도를 통해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셀도큐멘타에 선보인 ‘다니엘 노어’의 ‘Expiration Movement’(2017). 세계적인 국제미술행사로 다시 한번 각인된 2017년 카셀도큐멘타는 전체 예산 약 420억원을 카셀시와 헤센주의 지원, 그리고 독일 연방문화원의 후원으로 마련했다. 카셀의 성장 동력은 파격적인 내용 외에도 지자체와 시민들의 예술지원과 의지에 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선 정부나 지자체가 어째서 예술과 예술가들을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에 만족스러워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관련 기사나 글에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지원하느냐”는 불만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일종의 ‘특혜’라는 시선도 있다.


맞는 말이다. 예술인들의 예술 활동은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것이 맞고, 현재 예술계에서 행해지는 각종 지원은 소득의 일부분을 국가에 납부하는 돈이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술만 해도 창작지원금을 비롯한 창작공간 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세금으로 충당한다. 


문제는 ‘예술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과 세금지원이라는 두 인식의 충돌이다.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 혹은 불평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예술가들의 사명감 및 그로 인한 사회 공헌, 공공성을 단순히 사적 기호와 욕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교육의 부재와, 예술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거나, 시장과의 균형을 위한 순수예술지원의 당위성 등을 수긍할 만한 실질적인 기회조차 드물기 때문이다.  


예술계 또한 어째서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이 보편적 사회보장제도 내에서의 지원과 달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좀처럼 답하지 않는다. 예술의 비물질적 가치를 기준으로 한 지원에 관한 사회적 합의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공감의 장’이 요구됨에도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내는 세금이 아깝다고 하면서도 정작 당신들이 낸 세금으로 만든 작품을 관람하지 않는 오늘은 아쉽다. 실제로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8년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지난 1년간 미술전시 관람률은 약 15%로, 밑바닥을 맴돈다. 연극(14.4%)과 뮤지컬(13%)은 민망한 수준이다.


다행히 과거 대비 전반적으로 나아지고는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소득에 따른 편차와 장르 간 편중이 심하다. 이를 극복하려면 예술계는 작품의 특성과 질에 관심을 기울여야 옳다. 그러나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만든 전시나 공연인 만큼 적극적으로 누리려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이 태도는 단순히 무언가를 보는 것을 넘어 ‘예술의 쓸모 있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물론 예술경험을 통한 향유와 예술품과의 직접적인 대화는 납세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예술현장을 찾자. 지원의 못마땅함이 공감으로 대체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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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동종세력의 비호를 받으며 철저한 공생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생명력을 이어간다. 특히 정치권력은 세간의 시선이나 상식 따윈 아랑곳없이 인맥을 투하하고, 비호세력들은 ‘내 편’이라는 선 긋기를 통해 그릇된 절차상의 하자(瑕疵) 앞에서조차 입을 다문다.


세속의 관점에서 ‘내 편’은 타인에겐 한없이 가혹할지언정 ‘내 편’이기에 용서되는 아이러니한 개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내 편’과 ‘네 편’을 구분하는 기준인데, 그건 바로 자기 이익과 맞닿는 득실의 무게이다. 공생의 가늠도 여기서 비롯된다.


캐나다 작가 데이비드 알트메드의 인체 작품은 상상 속 이미지를 통한 리얼리티에 방점이 있다. 모호한 내러티브와 초현실주의적인 형상은 오히려 동시대 사회 속 이야기와 현실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그 현실 내부엔 인간을 비롯한 관계, 권력, 경계, 분류 등의 다양한 화두도 들어 있다.


예술계, 아니 미술계에도 ‘편(便)’은 존재한다. 미술 없는 미술협회나, 사상적 동지를 주춧돌로 문화권력이 되고픈 패거리들, 학연과 지연 등의 온갖 연을 바탕으로 한 무리 등이 그것이다. 이들 또한 공생의 시효가 유효하다면, 이로움과 해로움을 스스럼없이 시도하며 모두로 포장된 그들만의 권력을 좇는다. 


공정한 과정 및 기회의 평등을 훼손하는 ‘편’의 공생을 끊을 수 있는 이들은 ‘알아야 할 것을 다른 이들도 알게 하는’ 기자와, 잠들지 않는 이성을 통한 정의로운 결과를 숭배하는 비평가이다. 그중에서도 비평가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예리한 비판의식과 날카로운 눈으로 건강한 미술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지성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단지 기대에 불과하다. 문화예술계에 낙하산이 횡행하고, 무능력한 인사들이 권력에 의해 또 다른 권력이 되는 현실 앞에서도 말수는 적다. 불편부당함에 맞설 용기는커녕 자신들을 옹립시키는 데 공헌해온 작가들의 창작환경과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고 있는 오늘에도 딱히 관심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비평가라는 직업은 무색무취해졌다. 심지어 병약하다. 권력에 저항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과도 거리가 있다. 대신 무미건조한 언어로 무언가를 적당한 선에서 부풀려 치하하며 알량한 사익을 위해 대상의 명망을 가시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소임에 충실하다. 


그러니 내 시각에서 비평가란 더 이상 문무를 겸비한 감성과 행위가 유전되는 식자는 아니다. 예술과 예술가의 삶에 등불이 되는 비판적 선각자라기보다는 침묵을 신주로 삼는 보신주의자들에 가깝다. 아니면 잉여의 감상을 대안으로 착각하는 낭만주의자이거나.


이러한 감정은 후배들이 경력과 자존감에 상처를 받아도 하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개인미디어에 넋두리를 늘어놓는 게 전부인 선배 평론가들의 처신에서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누릴 것 다 누린 이들이 가상의 공간에 앉아 후배들을 위하는 양 벌이는 결론 없는 호들갑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지금까지 어디에 살았기에 자다 봉창이냐고 되묻고 싶을 정도다. 


역대 훌륭한 비평가들에 의해 생산된 비평은 예술적 절망에 빛을 선물했으며, 신화화되는 현실의 오기(誤記)에 제동을 걸었다. 과거만 해도 비평가는 그 자체로 예술의 질량을 재는 천칭이자 시대의 분동이었다. 하나, 소수를 제외한 작금의 비평가들은 그런 역할도,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다. 권위는 잃었고 필력도 무뎌졌다. 이제라도 본연의 자세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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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한다는 건 외형상 한 나라의 시각예술을 대표하는 성격을 띤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척박한 미술생태의 반영이자, 빈약한 인적 자산과 구조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틈’이기도 하다.

 

‘아트팩트넷(ArtFact.net)’ 등, 유명 미술전문 분석지에 이름을 올린 한국 작가들의 활약은 주목할 이유이긴 해도, 반드시 미술사적 평가까지 긍정적인 건 아니다. 분석의 단초로 활용할 수는 있어도 작가와 작품에 관한 절대적 기준인 양 맹신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비엔날레 대표작가가 되고, 유력 매체가 제공하는 지면 한 귀퉁이에 새긴 이름 석 자는 어떤 가능성을 담보한다. 적어도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문화적 상태인 ‘동시대성’에 근접해 있다는 건 인정받는다.

 

독일 신라이프치히 화파 작가 중 한 명인 네오 라우흐(Neo Rauch)의 (2014), 네오 라우흐는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면서 곧잘 닮은 작품의 모델로 부각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동시대성은 같은 시대의 작품이라 해도 이전의 방식으로 제작되거나 철 지난 미술문법에 대해선 엄격한 편이다. 미학의 도량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과 변별력 있는 개념, 새로운 모더니티를 구축할 수 없다면 예술적 역량 또한 외면받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한 한국 미술의 현주소는 어떨까. 결과부터 말하면, 동시대성을 읽을 수 있는 사례는 생각보다 적다. 숱한 전시와 작품들이 만들어지지만 나와 세상을 관통하는 철학은 사적 내러티브를 넘어서지 못하기 일쑤이며, 보잘것없는 것에 이데올로기를 부여하거나 미적 가치판단의 불가능성을 시스템으로 세탁하는 경우도 심심찮다.

이런 현실은 가까운 전시장에만 가도 확인할 수 있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작품의 태반은 비릿한 돈 냄새와 물감이 뒤범벅된 것들이지, 방식의 전환을 연구한 조형과는 거리가 있다. 취향에 읍소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미소 짓는 작품들이 즐비하고, ‘예술적’일 수는 있어도 결코 ‘예술’은 될 수 없는 상품도 흔하다. 나름 힙(hip)하다는 것도, 알고 보면 국적불명의 염속예술이 주를 이룬다.

 

사고변환의 전제조건인 작가들의 미적 태도에서는 씁쓸하기까지 하다. 세상을 재해석하고 재발견하며 번역하려는 의지는 고사하고, 일부는 서양미술의 뒤꿈치에서 그들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아류를 끝없이 생산한다. 여기서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고유한 메티에(metier)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형식도, 기법도, 언어도 누군가와 혹은 무엇과 어떤 지점에서 닮았다.

 

심지어 작품만 봐도 어느 나라에서 공부했고,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만큼 독창성 역시 귀하다. 분명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다른 문화, 다른 시선에서 저마다의 삶을 영위했을 터인데, 어쩌면 그리도 획일적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예술가의 삶을 존경한다. 생존의 문턱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서둘러 종결되길 고대한다. 하지만 그들이 생산하는 예술의 가치와 삶은 구분되는 것이 합당하다. 삶에서의 부족함은 서로 나누고 채울 수 있으나, 사회적 의제로써의 예술에 주목하고,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는 예술의 가치완성은 온전히 작가들의 몫이다. 동시대를 무대로 역사를 촉발할 수 있는 힘 또한 예술과 예술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역할과 의미를 정작 당사자들만 모르는 듯하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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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은 오늘의 의제를 예술을 통해 해석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새로운 모더니티를 생성하는 데 방점을 둔다. 이는 전 지구적 현상으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비평가든 기획자든 그들의 시각은 국지적이지 않다. 글로벌 흐름이 만들어내는 맥락과 상호 관련 속에서 미술을 이해한다.

 

작가들도 매한가지다. 개별적이면서 타인과 공유되는 경험이기도 한 동시대성을 발판으로 미적·물리적 확장을 끊임없이 도모한다. 특히 시대흐름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젊은 작가들은 동시대 미술 특유의 영토 구분 없는 교류에 민감하며 자신만의 미술언어로 지구촌 곳곳의 예술현장에 서기 위해 부단히 경주한다.

 

하지만 세계로의 접근을 위한 ‘통로’는 대체로 작가들 개별 노력에 의해 마련된다. 낡은 교수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술대학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의 해외지원정책이란 것도 유한하거나 빈약해 보편적 체감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잭슨 폴록, One: Number 31, 1950. 유럽 미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미국 미술은 1940년대 등장한 잭슨 폴록에 이르러 탈 유럽화가 가능했다. 미국이 동시대 미술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작가 작품에 관한 이론적 논쟁과 더불어 당시 미국 정부의 계획적인 지원과 정책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물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등재되는 정보와 국공립미술관 및 지자체들이 운영하는 창작공간에서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은 작가 경쟁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의 카셀 및 베니스 투어프로젝트만 해도 작가들의 견문을 넓히는 시기적절한 투자였다. 그러나 아직까진 동시대 미술 담론의 저장소이자, 능동적 활동에 있어 온전한 디딤돌이라 판단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정부와 공공기관은 단순 자료를 제공하는 수준인 게 태반이고 그나마도 단기 혹은 일회성 지원,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폐쇄적 운영, 지원금 사용 영역 제한 등의 제약이 적지 않은 탓이다. 더구나 미술을 고급 상업 콘텐츠로 해석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은 되레 동시대 미술의 결과 다른 편협한 가치를 생산한다.

 

그렇다면 해외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는 한국문화원 같은 재외기관은 어떠할까. 밖에 있으니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작가들은 기회 부족에 따른 절박함을 헐값에 이용하는 일부 재외문화원의 행태를 해악이라 정의한다.

 

국제적 작가 양성 차원에서 작가들을 초대하지만 항공료도 되지 않는 예산으로 재료비와 운송비를 해결하라 하고, 통관절차까지 작가에게 전가하니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하다. 심지어 현지에서 작품을 보관할 창고를 구하는 것도 작가 몫이다. 결국 손 하나 까닥 않고 전시공간을 채우는 착취가 나라 밖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고 있는 셈이다.

 

경험 많은 예술가들은 정부나 정부출연기관에 의존해서는 한국이라는 문지방을 넘기도 어렵거니와 외국에서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조차 개인 인맥을 활용해 헤쳐 나간다고 말한다. 이는 그만큼 기댈 곳이 없다는 뜻이자 각자 알아서 하지 않는 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작가들의 역할과 그에 따른 긍정성을 바란다면 보다 넓은 영역으로의 진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의지에 맞춰 공적 관심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 미술의 우수성을 알린다는 측면에서 합리적 대우에 소홀하지 않아야 하고, 무리 없이 안착할 수 있도록 행정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 지금처럼 무늬만 지원이거나 홀대해선 세계적인 한국 작가 배출은커녕 빠르게 변화하는 당대 미술 흐름마저 따라잡을 수 없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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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된 한 시사프로그램의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을 시청하던 중 문득 옛일 하나가 스쳤다. 오래전이라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질 법하건만, 희한하게도 아직 망각의 영역에 들지 않은 그 사건. 아마 쉽게 치유되지 않을 깊고도 시린 상흔 때문일 것이다. 

 

갓 30대였던 당시 나는 기사 하나를 썼다. 제자들이 함께한 전시에 무임승차한 교수들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2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실명을 죄다 거론한 것이 그만 소송의 발단이 됐다. 피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어느 다다미방 비슷한 곳으로 나를 불러 무릎을 꿇으라고 할 때 순순히 응했으면 말이다. 하나 그러지 않았다. 자존심도 상했지만 무엇보다 잘못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쿠엔틴 메치스, 환전상(대부업자와 그의 부인), 1514. 종교화 외에도 권력과 무관한 소시민의 삶을 자주 그린 쿠엔틴 메치스는 여러 풍자적인 작품을 통해 정직과 성실, 청렴과 도덕성을 강조했다. 남녀, 부부 등 종속적이지 않아야 할 관계에 대한 메시지도 그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특징이다. ⓒ 홍경한

송사는 1년을 넘겼다. 홀로 두 명의 변호사와 상대하는 건 꽤나 버거웠다. 지치다보니 개중 한 명이 휘두른 ‘그 유리컵에 맞았다면 차라리 덜 힘들었을 텐데’라는 아쉬움까지 밀려왔다. 그렇다고 불의를 불의하다 말한 걸 후회한 적은 없다.

 

훗날 그들 중 몇은 내게 사과했다. 한데 그때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가지고 있는 방법의 전부를 동원하여 억누르려던 양태에 곪았고, 개인 또는 집단이 다른 개인 또는 집단을 지배하려는 행태권력, 그 통제의 힘에 마음의 생채기는 더욱 덧났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교수는 미술계 권력이다. 작가에겐 대접하지 않는 사회지만 교수라는 직함을 달면 달라진다. 미술동네에서도 교수란 곧 성공을 의미하고, 이는 재벌작가로 성장할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담보한다. 제도권의 핵심중추로 들어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기도 하다.

 

문제는 직위권력에 비해 초라한 실력이다. 가끔 조악하고 경박한 이발소 그림이나, 전혀 동시대적이지 못한 작품을 보면 대체 어떻게 교수가 되었는지 의아하게 한다. 자신이 배우던 시대와 오늘이 다름에도 공부하지 않은 채 낡고 식상한 커리큘럼으로 강단에 서는 모습에선 저런 용기는 어디서 비롯되는지 궁금해질 때도 있다.

 

흥미로운 건 그들의 적지 않은 수는 교육자인지 작가인지, 전문 교육자도 전업 창작자도 아닌 어정쩡한 정체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배워야 할 이가 가르치고, 실력보다는 인맥·학연·지연에 얽매이는 시스템 속에서 답답한 보수적 성향을 가보처럼 대물림한다. 인정을 하던 안 하던 이는 일부 교수들의 현주소 이다.

 

측은한 건 아무 죄 없는 학생들이다. 당대 미술 흐름을 발 빠르게 수용하는 학생들 입장에서 교수들의 안일함과 게으름, 구닥다리 조형언어는 현실적 괴리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상아탑의 권력이자 생살여탈권을 쥔 교수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다. ‘예술계 교수의 민낯’에 등장하는 발언처럼 “키울 수는 없어도 밟을 수는 있다”.

방송에 나온 공연계 교수들만큼은 아닐지라도 미술계 또한 캔버스에 예술 대신 권력을 그리는 사람들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19세기에나 유행했을 법한 그림을 작품이라 강요하는 ‘미적폭력’이 다른 나라의 얘기인 양 눙치기도 어렵다.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은 아니지 않은가.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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