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와, 조경사진, 2010
- 집 앞
나뭇가지가 조금만 더 자라면 방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다고 한 친구가 말한다. 집 앞에 울창한 숲이 펼쳐져서가 아니라, 집과
충분한 간격을 두고 나무를 심을 수 있을 만큼 여유 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다른 친구는 그런 나무가 없으니 앞집이 너무
훤히 보여서 어떤 반찬을 먹는지도 맞출 정도라고 부러워한다. 더부살이를 하듯 집과 집 사이에 끼여 가까스로 자라는 한 그루의
나무. 건물을 모두 배치하고 남는 자투리 땅에 심겨 당산나무처럼 번듯하지도 않고, 시골 집 마당의 탐스러운 과실수처럼 눈길을
뺏지도 않는 초라한 나무들이 그렇게 일상의 대화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은근 존재감이 있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사진가 유리와는 이렇게 해서 나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조경이랄 것도 없는, 하찮은, 마지못해 심은 듯한 나무를 중심에 놓고 보면 신기하게도 도시 공간이 더 분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조금이라도 더 넓게 건물을 올리려는 욕심도 보이고, 그렇게 하고도 땅이 남으면 나무 한 그루라도 심고 싶었던 초록에 대한 미련도 보인다. 비좁은 그곳에서 어떻게든 몸을 맞춰 자라는 나무들은 삭막한 도시의 사람 처지와 다르지 않아서 더 안쓰럽기도 하다. 자연을 가두는 인공 정원이라는 말조차도 거창하게 느껴지는 이 풍경이야말로 현대판 진경산수다.
-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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