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기, 나폴리 02, 2014
이곳은 나폴리다. 동해안에 있는 카페. 도대체 마릴린 먼로는 어떤 연유로 이곳에서 바닷바람에 치마를 날리고 있는 걸까. 저 흰 원피스를 날리면서 일약 섹시 스타의 자리에 올랐을 때 신었던 샌들을 나폴리 지역 출신인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만들었기 때문에? 혹은 한국전쟁 때 강원도까지 찾아와 위문 공연을 해준 답례의 표시로?
이도 저도 아니면 나폴리다운 기분을 만끽하려면 적어도 마릴린 먼로와 황금색 말과 그리스 조각상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카페 주인장의 취향 덕분에? 이유야 어떻든 제 아무리 마릴린 먼로가 유혹한다 한들, 철조망을 넘어 돌격해 오는 용감한 병사가 함께 등장하는 이곳은 나폴리가 아니다.
김전기는 6년 동안 동해안을 따라 난 7번 국도를 누비며, 분단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이 만들어낸 ‘불편한 풍경’을 기록해 왔다.
처음에는 속초, 강릉, 동해로 이어지는 기가 막힌 해안선에 군사시설이 어떻게 간섭하는지가 흥미로웠다. 하도 많이 다녀서 어지간한 초소의 위치를 외울 정도가 되었을 즈음에는 그 간섭의 결과가 얼마나 생뚱맞은지를 절감했다. 철조망이 상징하는 안보에 대한 국가의 강박은 그곳에 개구멍을 내고 드나드는 주민들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식이다.
이제 민간인 출입 통제가 해제된 초소 옆으로는 관광객을 유혹하는 국적 불명의 수많은 ‘나폴리’들이 성업 중이다. 한국전쟁 65주년이 만들어낸 분단 풍경은 웃기고도 슬프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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