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스 스나이데어스, 죽은 사냥감, 1614년
데미언 허스트의 박제된 상어 이전에 죽은 짐승을 그린 그림이 있었을까? 본격적으로 죽은 사냥물 그림이 그려진 곳은 1650년대 이후 남부 네덜란드였다. 죽은 사냥감을 그린 그림의 특징은 바로 그 압도적인 크기와 실제처럼 보이는 트롱프뢰이유(눈속임그림)에 있었다. 따라서 이런 그림은 작은 주택에는 걸맞지 않고, 성이나 저택의 중앙홀에 걸려 있어 관객으로 하여금 잠시나마 진짜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사냥은 왕과 귀족, 기사의 품위에 걸맞은 취미활동으로 근본적으로 특권계층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그림은? 원래 사냥감 정물화도 사냥처럼 왕족과 귀족을 위한 그림이었지만, 상류 부르주아들이 앞다투어 구매했다는 사실은 아주 흥미롭다. 대개 사냥에 대한 취향을 가지기에는 교양적,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던 부르주아들의 애호품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냥물 회화의 대가 프란스 스나이데어스(1579~1657)가 그린 그림 속에는 특별히 아름다운 깃털과 형태를 가진 백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백조는 순결한 색채와 우아한 움직임, 게다가 죽기 전에 단 한번 노래한다는 이유로 가장 귀족적인 새로 알려져 있다. 유연하고 가느다란 목을 길게 빼고 죽음을 맞이한 백조의 모습은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이런 백조의 죽음은 마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처럼 장엄하고 고상하기만 하다. 개신교 국가로 성상 제작이 금지되었던 네덜란드답게 죽은 사냥물 정물화는 제단화와 같은 위엄을 주면서도 적당히 세속적인 취향에 부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내 칼럼의 독자인 나주의 한 공무원이 조류독감으로 닭들을 살처분하러 나가는 고통에 대해 토로했다. 멘붕상태를 지나 트라우마가 되었노라고, 인간의 탐욕이 만든 재앙이라고 했다. 살아있다는 일이 타인의 죽음을 먹고 사는 일임을 매 순간 깨닫고 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우리의 삶이 타인의 죽음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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