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 화가의 아버지, 1865년(출처 :경향DB)
인상파
화가들은 대부분 아버지를 두려워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은 대개 연인을 숨긴다든지, 결혼하지 않고 동거한다든지, 아이를
낳고 나서 여자가 있음을 알린다든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혼인신고를 한다든지 하는 행위로 나타났다.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 즉
아버지의 말이 법이었던 시절에 아버지를 거역하고 제멋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술가들은 섬세하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인 데다 그들이 선택한 여자들은 대개 모델이나 재봉사, 점원 같은 신분이 낮은
여자들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이를테면 마네는 집안의 피아노 가정교사와, 밀레는 농사꾼의 딸과, 모네와 르누아르는 모델과 사귀고
동거한 사람들이다.
세잔은 직공 출신의 모델과 아이를 낳았지만, 오랫동안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숨겼다. 그들이 동거한 지 17년 만에 결혼신고를 한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였다. 모자 제조업자로 유명했던 세잔의 아버지 오귀스트 세잔 역시 자기 가게의 점원이었던 여자와
결혼했다.
사생아로 태어난 세잔은 다섯 살이 되어서야 부모의 정식 결혼으로 합법적 아들이 되었던 것! 엄격하고 영리한 아버지는 치밀한 사업
수완으로 벼락부자가 되어 은행을 인수하게 되었지만, 엑스의 부르주아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던 탓인지 세잔에게 법학 공부를 강요했다.
세잔은 법대에 진학했지만 자퇴하지 않고 미술학교에 입학, 결국 미술가로 전향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아들에게 지고 만 것이다.
이 그림은 세잔이 아버지를 얼마나 위대한(?) 존재로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세잔이 평생 실험적인 작업에만 몰입했던 것도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 덕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아버지는 화면을 압도할 만큼 크고 꽉 차게 묘사되었다. 게다가 세상사에
꾀바른 면모를 지닌 중산층의 아버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그는 늦되고 능력없는 아들로서 평생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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