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우리들 곁으로 성큼 다가섰다. 주위의 녹음들이 형형색색 색동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이즈음, 서울에서 가장 가을의 향기를 잘 맡을 수 있는 창덕궁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안국역 3번 출구를 나와 현대빌딩과 아라리오 미술관(구 공간 사옥)을 지나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 다다른다. 주위에 큰 건물들이 바싹 붙어 있어서일까? 광화문의 웅장함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아늑하게 느껴지는 포근한 돈화문의 모습이다.
창덕궁은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렸다.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조선시대 두 번째로 세워진 궁궐이다. 이 궁은 조선 초부터 많은 임금들이 법궁인 경복궁을 대신하여 찾았던 곳으로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868년 재건될 때까지 가장 오랫동안 실질적인 정궁의 역할을 했다.
창덕궁은 크게 인정전과 선정전을 중심으로 한 치조(治朝) 영역, 희정당과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침전 영역, 동쪽의 낙선재 영역, 그리고 북쪽 언덕 너머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궁인 경복궁은 평지에 건립되어 왕실의 위엄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주요 전각들이 좌우대칭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에 반해 창덕궁은 구릉지에 자리 잡은 궁으로 주변의 구릉을 최대한 살리는 배치기법을 사용하여 주요 전각들이 약간씩 비틀어져 자리 잡고 있어 경복궁의 배치기법과는 크게 대비된다.
이렇게 자연에 순응하는 건축미는 한국의 유일한 궁궐 후원인 창덕궁 후원에 들어서면 더욱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앞쪽의 종묘와 마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경복궁에 가까운 서쪽 측면으로 위치를 옮긴 돈화문조차도 전체적인 창덕궁 배치에 자연스러움을 더해준다. 자연에 묻혀 마치 자연 그 자체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창덕궁이 이제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그림은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단풍이 물든 창덕궁 전체의 모습을 표현해 본 것이다. 이 가을에 잠시 짬을 내어 자연미 물씬 풍기는 창덕궁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을 내음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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