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오른팔을 들어 팔뚝질을 한다. 사진에서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바라보면 함성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불끈 쥔 주먹과 구호가 향하는 곳은 ‘한열이를 살려내라’고 적힌 커다란 걸개그림이다.
큰 규모의 시위나 집회, 장례 행렬마다 대형 걸개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모인 연유를 시각적으로 요약하는 걸개그림의 모티프는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사진에서 비롯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그랬고, 1989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노동해방도’도 그랬다.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어머니 영정을 끌어안은 상주 전태일의 모습이 담긴 걸개그림이 앞장섰다. 단순히 현장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진이 투쟁의 현장에서 구심점이 되는 걸개그림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바다에서 떠오른 젊은이의 사진 한 장이 커다란 투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한열 열사 추모제, 1989년 6월9일 ⓒ박용수
그러나,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바꾼다’고 쉽게 흥분하지는 말자. 엄밀히 말하면 세상을 바꾸는 건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사진에 반응한 사람들의 힘이다. 사진 한 장이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 모으는 촉매 역할을 하지만, 그건 사진 마음대로 또는 사진가의 의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결국, 사진을 본 사람들이 함께 반응하고 움직여야 생기는 결과인 셈이다. 세상이 바뀌는 고비마다 사진이 함께 깃들어 우리의 기억과 망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