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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다시, 작은 세계

섬광기억 #여름방학2, 2017 ⓒ권도연 (제공_갤러리 룩스)


간신히 책의 몰골로 남은 종이 뭉치들이 재처럼 바스라질 것 같다. 영안실의 시신처럼 표본실의 표본처럼 창백한 얼굴을 카메라 앞에 드러낸다. 플래시의 강한 섬광과 함께 방부된 종이 얼굴에서 책의 영정을 떠올린다.

 

개인전 <섬광기억>(갤러리 룩스, ~4월22일)을 열고 있는 권도연 작가가 연출한 장면은 유년 시절의 기억과 연결된다. 어린 시절, 작가의 아버지는 헌책방에서 사온 책들로 집 지하실에 작은 도서관을 꾸며줬다. 작가는 이곳을 자기만의 놀이터로 삼아 내밀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홍수로 지하실이 침수되는 걸 목격했다. 물이 차오르고 빠져나가는 과정 속에서 뭉개지고 찢어지고 분해된 것은 단지 책만이 아니었다. 현실과 독립된 채 완벽한 문장들로 둘러싸인 작은 세계가 그의 눈앞에서 붕괴된 것이다.

 

작가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성장한 뒤에도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 기억(이미지)을 사진으로 불러온다. 도서관에서 기증받은 헌책에서 낱장을 분리해 나무선반 위에 배치하고, 물리적·화학적 처리를 거쳐 기억 속 이미지에 더 다가간다. 어제 속절없이 눈으로 지켜봐야 했던 장면을 이제 손으로 복원하는 과정은 스스로를 다시 자기만의 작은 세계에 인도하는 일일 것이다.

 

이 이미지는 과거의 기억과 얼마나 일치하느냐보다 현실에서 사라진 장면의 빈자리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빛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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