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 압데세메드가 홍콩 탕컨템포러리 아트 개인전에 펼쳐놓은 장면은 핏빛이다. 전시장 가운데 놓인 조각을 둘러싼 붉은 캔버스는 피를 연상시키고,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자극적이다. 아직 제대로 말라붙지 않은 붉은 덩어리가 끈끈하게 흘러내려 바닥까지 떨어진다.
알제리 출신인 아델 압데세메드는 내전으로 폭력이 확산되던 1994년 모국을 떠났다. 알제리 정부는 민간인을 상대로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다른 계산을 머리에 담고 전쟁에 가담한 외부자들로 인해 내전은 점점 ‘더러운 전쟁’이 되었다. 극단주의자들의 한계 없는 폭력과 공동체의 울타리 안으로 숨어든 인간의 야만성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던 그는 매우 극단적인 방식으로 난폭한 이미지를 내세워,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작가가 되었다.
아델 압데세메드, 해쇄(Unlock), 2018, 탕컨템포러리 아트 설치 장면.
그가 선택한 ‘붉은색’은 영화 현장에서 ‘피’의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물감이다. 그는 캔버스 전면에 연필로 촘촘한 그리드를 그려 넣은 뒤 ‘붉은 피’를 휘저어 바르고 찍었다. ‘금기의 색’이라고 이름 붙인 붉은 캔버스 작업은 뉴스에 넘쳐나는 전쟁과 죽음, 국경을 넘어 매일 퍼져나가는 폭력이 쏟아내는 피의 역사와 연결된다. 그러나 뉴스가 전달하는 정보에는 가짜와 진짜가 모호하게 뒤섞여 있으며, 설사 어떤 정보가 ‘가짜’로 판명되더라도 이미 그 가짜는 현실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현대인이 취하는 정보는 끊임없이 암호화되고, 다시 해킹당하기를 반복하면서 모호함 속으로 정체를 숨긴다고 보았다.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 안에서 인간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작가는 온갖 시각적 방법을 동원해 관객의 감각을 계속 자극한다. 이 메시지를 위해 영화산업의 속성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인 그는 드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항공촬영의 핵심이었던 헬리콥터 역시 전시장으로 불러들인다. 짓이겨져 형태를 상실하고 추상조각의 옷을 입은 헬리콥터는 이제, 유혈의 풍경 안에 폭력과 거짓의 기념비처럼 서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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