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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아말감

미국 북동부 메인주 핍스버그를 흐르는 뉴 메도스 강 입구에는 미국 원주민들이 1000년 전부터 모여 살았던 가난한 어촌 마을 말라가 섬이 있다. 1794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벤자민 달링이 말라가 섬 인근의 ‘홀스 섬’을 구입하면서 이 지역으로 이주하는 흑인이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혼혈인구가 증가했다. 그들은 1860년대부터 말라가 섬에 본격적으로 정착하면서 혼혈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티어스터 게이츠, Island Modernity Institute and Department of Tourism, 2019, 팔레 드 도쿄 설치 장면.


‘흑인 미국인’인 티어스터 게이츠는 2017년 메인주 콜비 칼리지에 머물면서 이 공동체가 정부와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해체된 역사를 접했다. 1900년대 초,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미국으로 모여 들자, 미국의 기득권자인 앵글로색슨은 그들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당시 유행하던 우생학의 잣대를 들이대며 ‘외부인’ 배척의 당위성을 획득했다. 앵글로색슨족과 다른 문화와 관습을 가진 이들로 인해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는 논리는 백인과 다른 인종 간의 혼혈을 반대해온 이들의 지지를 얻었다. 언론은 흑인과의 혼혈인들이 살고 있던 말라가 섬을 향해 인종차별의 활을 쏘았다. 말라가 주민을 ‘특이한 사람들의 이상한 공동체’라고 조롱하면서 이들을 배척하는 논조를 확산시켰다. 말라가 섬을 구입한 메인주는 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관광산업을 육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먼저 기존의 지역공동체를 해체해야 한다며 1912년, 45명의 주민을 강제로 내쫓았다.


게이츠는 말라가 섬의 역사를 다룬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전시 제목으로 ‘아말감’을 선택했다. 수은과 하나 이상의 다른 금속으로 이루어진 합금인 아말감은 ‘혼혈’과 ‘인종차별주의’를 포괄하는 상징어로 쓰였다. 다른 지역에서 온 나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은 그 자체로 ‘아말감’이다. 그는 섬을 둘러싸고 벌어진 식민의 역사를 매체, 재료를 섞어 표현하면서, 혼합이 탄생시킨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다룬다. 이는 ‘결국 순수한 것은 없다’는 메시지에 닿는다. 관광의 메카를 꿈꾸었던 말라가 섬은 현재 무인도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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