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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마음의 건축

“조각을 만들 때, 나는 지적으로 통제하고 싶지 않다.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지성을 발전시켜나가고 싶다.” 작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이제 그의 작품은 자신을 벗어난 존재다. 데이비드 알트메즈는 거대한 아크릴 박스 안에 그가 펼쳐놓은 풍경을 마주한 관객들이 그의 작업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가 숲에 들어섰을 때, 자연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소멸해가는 과학적인 원리를 굳이 이해하지 않더라도 경외감이나 어떤 느낌을 포착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관객이 그의 작품 앞에서 긴장을 풀고, 복잡한 세상을 그저 대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데이비드 알트메즈, The Flux and the Puddle, 2015, 루이지애나 미술관 설치장면. ⓒ데이비드 알트메즈


인간의 몸이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 알트메즈에게 인체는 그 어떤 발명품보다 경이롭고,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 모든 것이 인체 안에서 창조되며, 예술계에서 말하는 아름다움 역시 그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 그는 창작의 출발점을 인체의 모든 부분으로부터 찾았다.


그는 뇌와 신경기관을 통해 마음이 존재하는 비밀의 장소에 다가간다. 빅뱅 이전에는 사람 머리만 한 크기였다는 우주를 상상하며 ‘머리’를 만들어 전시장 안에 적절한 위치를 찾는다. 제대로 자리를 잡은 ‘머리’는 공간 안에서 균형을 만든다. 그가 만든 인체는 모두 파편화되어 아크릴 박스 안에 배치되어 있지만, 그저 흐트러져 있는 것이 아니다. 관객의 시점에 따라 계속 다른 방식으로 연결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그 관계망을 끊어내기도 한다.


알트메즈는 그 자신이 세운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버리는 것을 만들고 싶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산하고 조절하려고 해도 그런 얄팍한 설계로는 결코 장악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진 어떤 것을 만들고 싶다. 그가 심어놓은 사물들이 각자 다른 형태로 변형될 잠재력을 지니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자라고 진화하고 변하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내 의도 아래 놓고 완벽하게 조율하고자 하는 의지는 너무나 무의미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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