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시 모팻, 플랜테이션, 2009
백인들을 위한 식민지풍의 저택. 그 주변으로는 광활한 농장이 펼쳐져 있다. 역시나 햇볕은 따갑다. 식민지 시절, 그 뜨거움 아래서 자라나는 농작물들에 대한 욕망과 그 뜨거움에 익숙한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열기는 아마 더 강렬했으리라. 작품 속에서 시대와 장소를 짐작할 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켄터키인지, 쿠바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탕수수 농장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곳이 어디이건 플랜테이션 개발에 혈안이 됐던 백인 지배 아래의 원주민들의 상황은 아마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은 직설적으로 이 모든 것을 얘기하는 대신 궁금증 가득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흑인, 태양열 아래서 무심하게 자라는 식물들 혹은 그 위로 피워 오르는 화염처럼 뭔가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암시들로 가득하다. 이 작업은 비디오 아트와 사진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인종 차별과 계급, 식민지의 상처를 다뤄온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트레이시 모팻(Tracey Moffat)의 최근작 ‘플랜테이션(Plantatio)’이다. 그녀는 늘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B급부터 고급 예술까지를 넘나드는 독특한 방법으로 그 무게감을 넘어선다.
작가는 이 작품을 농장 주택 지하의 낡은 가방에서 발견한 오래된 엽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 과정을 거쳤다. 낡은 기종의 디지털 프린터를 활용해 질감이 독특한 종이 위에 사진을 출력한 뒤 다시 수채화 물감으로 덧칠했다. 흐릿하면서도 얼룩진 기억과도 같은 작품 분위기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노동자의 후예였을 그녀가 백인 가정에 입양돼 학대를 받았던 개인사와 겹쳐지면서 꽤 오랜 시간 눈길을 끈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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