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석, Historic Present 001, 2009
사진가 안성석의 ‘역사적 현재’는 과거를 현재 속에 옴니버스식으로 불러오는 작업이다. 촬영은 순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뤄진다. 역사적 장소를 찾아가 그 앞에 스크린을 설치한 뒤 같은 장소의 옛날 사진을 투사한다. 이렇게 해서 첨성대도 남대문도 그의 작업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한 몸으로 존재한다.
마치 영매가 자신의 몸을 통해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듯, 안성석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과거를 현재 속으로 끄집어낸다. 아니면 현재가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의 장소에서 서로 다른 시간이 만난다는 것은 생각 이상의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흡사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첨성대 아래로는 답사를 나온 조선시대의 청년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일제가 식민지 조선의 유적지를 치밀하게 기록한 <조선고적도보>에서 찾아낸 사진이다. 스크린 속 거친 흑백 사진은 화려하고 선명한 현재와 만나 일차적으로 충돌한다. 그것은 흐릿한 기억 혹은 뒤틀린 욕망의 제국주의적 시선을 연상시킨다. 반면 컬러의 세계 속 화려한 조명, 저 멀리 빛나는 네온사인은 이 역사적 장소의 세속적 위상을 드러낸다.
왼쪽 편에는 그 두 개의 세상을 만들어낸 주체이자 역사의 목격자로서의 작가 본인이 등장한다. 그는 비록 사진 속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조선고적도보>를 기록하던 주체와 맞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는 훨씬 입체적으로 과거로부터 온 현재를 실감케 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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