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스 메카스(1922~2019)의 편집실에는 1950년 이후 지금까지 작품을 완성하고 남은 필름조각을 담은 통이 잔뜩 있었다. 90번째 생일을 몇 달 앞둔 2012년 어느 날, 그는 이 빛바랜 푸티지 가운데 1960년부터 2000년 사이의 장면들을 추려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로 한다.
요나스 메카스, 행복한 삶의 기록에서 삭제된 부분 Out-Takes from the Life of a Happy Man, 2012, 68분 ⓒ요나스 메카스
그의 작업이 늘 그렇듯, 필름통에서 건져 올린 가족의 일상, 친구의 모습, 도시며 자연의 소소한 풍경, 고향 리투아니아로의 여행 장면이 ‘무작위적이고 우연적인 질서’에 따라 연결되어 한 편의 서정시처럼 흐른다. 한때는 ‘완성작’에 적합하지 않아 잘려나갔던 장면이지만, 카메라가 스치듯 포착한 그 모든 순간은, 삭제되었던 과거가 무색할 만큼 아름답다.
오래된 필름을 편집하면서 그는 지금은 사라진 것들, 떠나간 사람들을 만났다. 그 장면들을 만지며 그는, 사라진 것들이 남긴 공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지나간 시간을 향한 회한에 잠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지나간 시간의 이미지를 그는 이를 ‘기억’이라고도, ‘과거’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메카스에게 그가 기록한 이미지는 ‘기억’이 아니라 모두 지금 여기에 있는 진짜다. “기억은 가버리지만 이미지는 여기 있으니, 당신이 보는 것, 보는 모든 순간, 여기가 진짜다.” 그는 영상에 이런 내레이션을 담았다.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전쟁 난민으로 떠돌다 미국으로 이주,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를 개척했던 요나스 메카스가 지난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결코 과거를 찍지 않고, 찍을 수도 없고, 찍고 싶지도 않다. 나는 늘 지금 있다”고 말하던 그의 ‘진짜’를 만날 수 있는 건 기억을 붙잡아주는 이미지 덕분이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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