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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

필름 속 사건 그는 어둠이 내리자 후미진 골목 식당가를 거닐었다. 프랑스에서 온 그에게 네온사인이 화려한 간판들은 낯설고 이국적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다음에 유리문이 젖혀진 어느 건물의 실내에 눈길을 빼앗겼다. 다만 식당가를 찍은 직후였는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인지는 알 수 없다. 그의 동선과 관심사를 정확히 알고 있는 필름이 말해주는 단서는 여기까지다. 그러나 필름을 현상하자 분명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 빛은 새어 들어왔고, 마지막에 찍은 실내는 절반만 남아 있던 필름 속에서 잘린 채로 존재하고 있다. 네거티브 필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의도치 않았기에 분명 ‘네거티브’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필름이 사진기라는 기계 속에서 스스로 일으킨 화학적 사건의 결과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두 겹의 시간과 공간이 .. 더보기
메두사, 양성성의 신화 애초 아름다운 처녀였던 메두사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동침한 결과는 참혹한 것이었다. 처녀신 아테나는 결혼을 염두에 둘 만큼 포세이돈을 사랑했지만, 그는 아테나에게 별 매력을 못 느꼈던 것이다. 그런 포세이돈이 메두사라는 묘령의 여인과 정사를, 그것도 자기 사당에서 치렀다는 사실은 아테나를 엄청난 질투와 분노에 떨게 했다. 결국 아테나의 저주로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뱀들로 변했고, 얼굴도 흉측하게 변해버렸다. 이때부터 메두사의 시선과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돌로 변했다. 훗날 메두사는 아테나와 공모한 영웅 페르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의 경고에 따라 그녀를 직접 보지 않고 방패에 비추어 보면서 죽여야 했다. 그 머리는 아테나의 방패 혹은 옷에 장식되었다. 바로크 화가들은 이 드라마틱한.. 더보기
마감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1829년 창간했다. 현재까지 발행하고 있는 신문 중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되었다. 퓰리처 언론상을 17차례나 수상했을 만큼 자부심도 대단하다. 1925년에 세워진 이 언론사의 사옥 또한 필라델피아의 상징적 건물이었다. 그러나 이 정론지도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2000년대 이후, 미국 언론인 20%가 매체를 떠나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또한 2011년 새로운 사주를 맞이했고, 그해 11월 사옥 매각이 결정됐다. 사진가 윌 스테이시는 이 언론사가 급변하던 2009년부터 신문사가 이전을 한 이후까지 신문사를 내밀하게 기록해 왔다. 아버지가 평생 동안 근무하던 회사였기에 섭외가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마감’이라는 제목의 이 작업은 18.. 더보기
철의 바다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조각가 리처드 세라는 철을 물결처럼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무겁고, 거칠고, 위험해 보이는 철로 부드럽고, 유약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만든다. 마치 내 마음대로 안되는 상대를 구슬러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미술에서는 딱딱한 물질을 부드러운 물질로 바꾸고, 작은 물건을 큰 물건으로 바꾸어 놓는 것만으로도 관객을 크게 감동시킨다. 현대미술은 발상의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세라는 영문학도 출신으로 예일대 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때 생계를 위해 제철소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의 세라를 있게 한 소중한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200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재개관 기념전의 단독 작가로 초대되었다. 세라의 두 번째.. 더보기
삼분의 일 지구 위 9억명이 넘는 인구가 굶주림에 위협받고 있다. 반면 1년 동안 전 세계 식량의 3분의 1이 버려지거나 손실된다. 유엔 농업식량기구의 2011년 연구에 따르면 대략 13억t이 이렇게 사라진다. 잘사는 나라는 음식물 쓰레기를 걱정하고, 못사는 나라는 기술 부족으로 인해 생산 과정에서 손실되는 식량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유럽과 북미에서는 소비자 한 명당 1년에 평균 100㎏의 식량을 버린다. 그들의 반대편 나라보다 최대 20배 많은 양이다. 부의 불균형은 이렇게 밥상에서부터 일어난다. 클라우스 피클러는 이 음식물 쓰레기에 관한 작업을 하는 작가다. 현실 참여적이지만 방법은 선언적이지 않다. 그는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와 본래 식탁에 있었을 법한 모습대로 혹은 최대한 먹음직스럽게 꾸며 놓는다. 헝가리산.. 더보기
메아리와 수선화 강의 신 케피소스가 강의 요정 리리오페를 감싸안았다. 리리오페는 달이 차올라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어찌나 예쁘던지 보는 사람들마다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그런 까닭에 이름을 ‘망연자실’, 즉 ‘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 테이레시아스는 나르키소스가 평생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는다면 오래 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나르키소스의 미모 속에 도사린 파괴적 결말을, 그의 불운한 운명을 직감했던 것이다. 어느 날, 헤라의 징벌로 반벙어리가 된 요정 에코가 나르키소스를 보고 반했다. 얼씬거리며 말을 걸고 싶었지만, 나르키소스의 말만 따라할 뿐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를 조롱한다고 생각, 자기 손을 잡는 그녀를 뿌리치며 매몰차게 떠났다. 에코는 고독 속에 나날이 야위어갔고, 결국 목소리만 남아 메아리가 되었다... 더보기
진짜 초현실주의자 막스 에른스트 막스 에른스트, 이번 주의 친절, 1934년, 석판화독일 태생의 막스 에른스트는 초현실주의자 중의 초현실주의자다. 그는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보다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마니아들은 그를 최고의 초현실주의자로 간주한다. 에른스트는 프로이트적인 잠재의식을 화면에 정착시키는 방법으로 프로타주(frottage: 문지르기)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년 시절 그는 마룻바닥에 종이를 대고 긁으면 나타나는 형상에 매료되었다. 그것을 무의식의 자동기술법이라고 생각했다. 에른스트의 작품에 집요하게 드러나는 어떤 형상이 있다. 새 부리 형상을 한 로플롭이다. 이 새 인간은 에른스트가 개발한 분신이자 페르소나다. 마치 마르셀 뒤샹이 로즈 셀라비라는 여자를 만들어낸 것처럼. 에른스트는 유년 시절 사랑했던 .. 더보기
팬톤표 얼굴색 미국 팬톤사가 만든 팬톤 컬러 가이드는 가장 과학적인 색채집이다. 색마다 알파벳과 숫자로 고유 번호를 붙인 이 색표들은 인쇄, 페인트, 패션 등 정교한 색의 구분이 필요한 모든 산업 영역의 표준으로 통할 정도다. 유광과 무광으로 나뉜 이 색채들은 각각 1000가지가 넘는다. 팬톤 컬러는 언어에서의 흰색이 시각적으로는 결코 같은 색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올해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에 참여하는 브라질계 사진가 안젤리카 다스는 이 과학적 색채표를 사람에게 적용했다. 작가는 우선 각 인물을 찍은 뒤 그 주인공의 얼굴에서 추출한 11×11픽셀의 견본과 정확히 일치하는 팬톤의 색을 골라낸다. 그 다음 사진의 배경색을 포토샵을 통해 이 팬톤 색으로 바꿔 넣는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라틴어로 사람을 뜻하는 ‘.. 더보기
밀레보다 더 유명한 밀레가 활동했던 시절, 그의 ‘이삭줍기’보다 훨씬 더 인기 있었던 그림이 있다.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인 쥘 브르통(Julles Breton)의 그림인데, 당시 살롱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황량한 들판의 저녁 무렵, 남루한 복장의 한 무리 여성들이 짚단을 이거나 든 채 걷고 있고, 몇몇은 아쉬운 듯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이삭을 줍고 있다. 여인들은 추수가 다 끝난 대지주의 밭에서 바닥에 흩어진 지푸라기를 주우러 온 가난한 농민들이다. 사실 이 풍경 속에는 짠한 스토리가 숨겨 있다. 당대 프랑스 소작민들은 추수 후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갈 수 있도록 허락됐지만, 동시에 이삭줍기는 가장 천한 일로 여겨졌던 것. 이 작품을 두고 당대 보수적 비평가들은 사실주의의 정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혹 그들이 칭송한 것.. 더보기
강박적 트로피 출근길. 노아의 방주를 방불케 하는 지하철 안의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져서 어떤 일을 하는 걸까. 커피나 휴지 같은 회사 비품을 마련하기 위해 결재를 받으러 쫓아다니고 있을까 아니면 하루 종일 환자의 입속을 들여다보며 충치를 치료해 주고 있을까. 따지고 보면 저마다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 전쟁의 성격과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떤 식으로 식별할 수 있을 것인가. 사진가 최현진의 ‘트로피’는 이 전쟁 속 전리품과도 같은 사물들에 관한 작업이다. 그것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서랍이나 바구니 같은 사각의 틀 안에 담겨 있다. 네모난 사무실의 네모난 서류철처럼 틀에 박힌 형식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전리품이 보관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 안에 담긴 내.. 더보기
‘아를의 카페’라는 환상 서른세 살 늦은 나이로 화가의 길에 들어선 반 고흐.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지나쳤다. 네덜란드에서 온 반 고흐가 파리에서 목격한 것은 인상주의자들이 더 귀하고 더 나은 목표에 쏟아야 할 열정으로 서로를 헐뜯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리스 조각 등 고전미술이 성취했던 고요하고 단순한 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사상을 가진 공동체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1888년, 그는 파리의 불협화음으로부터 벗어나 고갱과 같은 친구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이상적인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자신과는 매우 다른 기질을 가진 고갱을 초대해 공동 아틀리에에서 작업하기로 약속을 받아내고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 남부도시 아를은 아주 적막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한 시골마을이었다. 오락거리라고는 찾아보기.. 더보기
먼 곳 그가 우리 나이 스무 살 즈음에 길을 떠날 때, 자신도 그 여행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몰랐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앙투안 브뤼는 이웃 나라들을 더 알고 싶다는 심정으로 프랑스부터 모로코까지의 히치하이킹을 택했다. 얻어 탄 차가 데려다 줄 수 있는 만큼의 이동은 그에게 커다란 상점도 없고 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선물했다. 그때의 만남은 다시 수년이 흐른 뒤 앙투안에게 더 외진 곳에서 더 절제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 나서게 했다. 문명을 등진 채 살아가는 이들은 유럽 땅에서만도 꽤 많아서 그는 지난 3년 동안 유럽 전역을 떠돌며 15곳 이상을 방문했다. 전기도 없고, 아무런 편의 시설도 없는 고립된 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집을 짓고 식량을 구한다. 텃밭을 일구고 .. 더보기
토템적 식사 서양미술사에서 사투르누스(로마식 이름, 그리스 신화는 크로노스)는 큰 낫을 든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사투르누스는 그 낫으로 자기의 아버지를 죽이고, 인간의 소중한 시간을 무자비하게 베어가는 늙은 거인으로 묘사되곤 했던 것. 이 시간의 노인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태초에 혼돈(카오스)에서 가이아(대지의 여신)가 생겨났고, 가이아는 자신의 아들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교접해서 사투르누스를 낳는다. 그러나 가이아가 100개의 팔을 가진 거인들과 외눈박이 거인들을 낳으려고 하자 우라노스가 그들을 땅속에 다시 밀어넣었다. 이런 우라노스의 폭압에 분개한 가이아는 아들 사투르누스를 사주해 우라노스를 낫으로 거세해 죽인다. 우라노스가 죽어가면서 남긴 말 한마디는 “너도 네 자식의.. 더보기
째르빼니 그것은 죽이기를 작정한 이주였다.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8만명에게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들은 세간을 꾸릴 시간도 없이 가기 싫다고 우겨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화물칸 기차에 실려 1만5000리의 이주 길에 오른다. 춥고 배고프고 힘든 길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 할당된 7만7000명 중에서 1만명 가까이가 넉 달의 이주 기간에 사망했다. 산 사람을 지키려면 기차 안에서 숨을 거둔 자식을, 부모를 기차 밖으로 떠밀어 바람 찬 허공에 장사를 지내야만 했다. 도착해서는 헛간이나 땅 웅덩이를 집 삼아 모질게 살아난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김씨, 허씨, 유씨 등의 성을 쓴다. 대구의 인문사회연구소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기록 작업에 참여한 사진가 한금선이 그.. 더보기
바니타스와 미니멀 미술관 한구석에 사탕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것이 진짜 사탕일까 하고 의아해 하는 순간 사탕을 가져가도 좋다고 쓰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만 보니 관람객들이 사탕을 오물거리며 빨아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미술관 한쪽에 사탕이나 인쇄물을 배치하고 그것을 맘대로 가져가게 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마치 ‘작품을 만지지 말라’는 미술관의 권위에 은근히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토레스는 엄숙, 우아, 숭고의 상징인 미술관의 암묵적 금기들을 관객들 스스로 파괴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편견에 맞설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토레스의 작품은 관객이 손을 대는 순간, 비로소 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작품에는 아주 사적인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1957년 쿠바 태생인 토레스는 3.. 더보기
소년 여자 애들이 좋아하는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소년이 있다. 드레스를 입고 립스틱도 바르고, 심지어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 때조차도 총구에 분홍색 헤어 롤러를 꽂아 장식을 한다. 아이는 소녀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다만 계집아이다운 것들을 즐기고 수집한다. 사진가인 엄마의 눈에 소년은 지금 자신의 세상을 훨씬 폭넓게 열어둔 채 즐기고 있다. 그녀가 보기에 ‘소녀는 분홍색, 소년은 파란색’이라는 이분법은 천성이 아니라 어른들이 학습시킨 취향일 뿐이다. 지난 7월 작지만 의미심장한 재단이 이 소년에 관한 작업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이 재단의 이름은 ‘프라이드 사진상’.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적소수자들이 있음을 사진으로 알리기 위해 생겨난 모임이다. .. 더보기
신과 맞짱 뜰 수 있는 예술 어느 날 아테나는 자기가 만들어 불던 아울로스(aulos: 일종의 피리)를 천궁 아래 낭떠러지로 던져 버린다. 피리를 불면 입이 불룩해지는 것이 여신으로서 여간 민망스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 강의 정령이자 반인반수인 마르시아스가 여신이 버린 피리를 줍는다. 입에 대고 불어보니 솔솔 소리가 나는 것이 여간 청명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피리 부는 재미에 푹 빠진 마르시아스는 실력이 급진전을 보이자, 아폴론의 리라 연주보다 자신의 아울로스 연주가 더 낫다고 떠들고 다닌다. 화가 난 아폴론은 미다스왕을 포함한 인간들을 모아놓고 연주대결을 하자고 한다. 벌칙은 지는 자가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는 것! 연주가 끝나고 모든 심판들은 아폴론의 리라 연주에 손을 들어준다. 단지 미다스왕, 그러니까 만지는 것마다 .. 더보기
역사적 현재 사진가 안성석의 ‘역사적 현재’는 과거를 현재 속에 옴니버스식으로 불러오는 작업이다. 촬영은 순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뤄진다. 역사적 장소를 찾아가 그 앞에 스크린을 설치한 뒤 같은 장소의 옛날 사진을 투사한다. 이렇게 해서 첨성대도 남대문도 그의 작업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한 몸으로 존재한다. 마치 영매가 자신의 몸을 통해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듯, 안성석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과거를 현재 속으로 끄집어낸다. 아니면 현재가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의 장소에서 서로 다른 시간이 만난다는 것은 생각 이상의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흡사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첨성대 아래로는 답사를 나온 조선시대의 청년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 더보기
부채에 담긴 속 깊은 뜻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내도다/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 에 작자 미상으로 전하는 노래다. 우리 선조들은 부채를 여름철 선물로 보냈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식혀줄 뿐만 아니라, 먼지 같은 오물을 날려 청정하게 하고, 재앙을 몰고 오는 액귀를 몰아내는 역할을 했다. 서양미술 속에서 부채는 특별히 로코코 시대에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로코코 패션의 완성은 하이힐, 숄, 부채, 퐁탕주(가체), 모자, 액세서리 등이다. 이처럼 패션이 파편화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에로티시즘이 정교화되었다는 의미다. 로코코는 뭐니 뭐니 해도 유혹과 연애의 시대가 아닌가! 특히 부채는 사교계와 시민계급의 여자들 모두에게 중요한 장신구였다. 부채를 솜씨 있게 다.. 더보기
앨범 그는 브라질의 가난한 간판장이였다. 난생처음 양복을 빼 입고 행사에 가던 길에 패싸움을 목격했는데 말리려다가 그만 다리에 총을 맞았다. 그는 가해자가 제시한 합의금을 들고 덜컥 뉴욕행을 택했다. 마침 키치의 제왕 제프 쿤스가 미국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던 1980년대 초였다. 무엇으로든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라면, 자신도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문제적 인간 빅 뮤니츠는 그렇게 해서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사진가라는 수식을 다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뮤니츠의 특징은 초콜릿, 실, 설탕, 쓰레기 등 일상의 흔한 재료를 사용해 명화나 인물들을 자기 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몇 년 전에는 브라질 쓰레기장에서 사들인 폐기물들로 운동장만한 작품들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