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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납니다 요즘은 자주 화가 납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휴대폰을 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학생, 좁은 지하철 의자에서 팔짱 끼고 다리 벌리고 자는 아저씨, 이어폰 없이 휴대폰 스피커로 유튜브 보는 어르신, 좁은 길에서 쫙 펼쳐서 천천히 걸어가는 무리들, 상쾌한 아침 골목길 내 앞에서 걸어가며 담배 피우는 아저씨…. “이런 개XX.” 속으로 욕을 하며 화를 삭여 보지만, 점점 더 싫어하는 것이 많아지고 점점 더 화내는 횟수만 늘어날 뿐입니다. 예전엔 그냥 넘어간 것 같은데 이젠 참아지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말도 못하면서 속으로 화만 내며 성격만 나쁘게 변하고 있습니다. 더보기
‘완성’은 없다 독특한 나선형 관람 구조로 유명한 뉴욕의 명물 구겐하임미술관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최후 작품이자 최고 걸작이다. 생의 말년에 설계를 맡게 된 그는 미술관 인근의 호텔 객실을 장기 계약하고 사무실로 개조하여 완벽한 완성을 향한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완공에 가까워지는 어느 무렵부터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공사과정에서 미술관 측과의 마찰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어렵다는 현실에 분노와 실망을 느끼고 본거지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미술관은 개관 후 30년이 지나 다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지금과 같은 건축가의 원안에 가까운 방식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라이트는 사망한 후였다. 만약 그가 살아서 그것을 보았다면 과연 작품의 완성으로 보았을까? 흔히 우.. 더보기
사자 인간은 누구일까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에 독특한 모양의 조각을 소개한다. 몸은 인간인데 얼굴은 사자다. 지금까지 이런 형상의 생명체가 발견되거나 보고된 적이 없다. 아마 사자 인간이 조각되었던 수만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피엔스는 경험한 적이 없던 이 형상을 어떻게 조각할 수 있었을까? 하라리의 논리를 살펴보면, 어느 순간 인간 집단이 커지기 시작했다. 큰 집단을 응집시키기 위해선 먹고사는 문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했다. 가령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라고 말하고 허구적 신화나 신을 만들어 믿음을 유도하고 질서를 유지했을 것이다. 하라리는 이를 인지 혁명이라 말하고 사자 인간 조각을 증거로 제시한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사자 인간은 정말 상상 속의 동물일.. 더보기
‘개미’에 담긴 암울한 시대상 연필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필기도구이다. 돌잡이에 놓이는 것들 중 하나도 연필이니, 어쩌면 연필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손에 쥐는 몇 안되는 사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예술가들에게도 연필은 유용한 창작수단이자 소재이다. 그러다보니 연필을 이용해 독창적인 작품을 남긴 이들도 많다. 다수의 연필화를 후대에 물려준 박수근을 비롯해 이중섭, 천경자, 변시지 등의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이중섭이 그린 ‘소와 새와 게’ ‘세 사람’ 등의 작품은 연필로 그린 소품임에도 유화나 ‘은지화’ 못지않은 예술성을 지닌다. 연필화를 독자적인 경지로 끌어 올린 작가 중엔 원석연(1922~2003)도 있다. 흔히 ‘개미화가’로 불리는 그는 2003년 작고하기까지 80평생 연필화에만 집중했다. 출중한 묘사력을 충족시.. 더보기
달리는 혀 살아 있는 자의 혀는 언제까지 질주할 것인가. 그의 혀는 세상에 나온 이래, 인간계의 몸짓을 배우고, 모국어를 배우며 세상과 교류해 왔다. 더 빠른 혀, 더 능숙한 혀를 만나며 더 성장했다. 그러나 이 혀는,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달려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누구의 의지로 달려나가는지 알아차렸는가. 안무가 시오반 데이비스와 영화감독 데이비드 힌톤은 ‘달리는 혀’라는 이름으로 22명의 무용가와, 사운드 아티스트, 애니메이터를 초대했다. 무용가들은 끊임없이 달리기만 하는 여인 ‘헬카 카스키’의 이미지를 받았다. 이제 그들은 프레임 안에 헬카의 인생을 써내려가야 한다. 각자 10초의 시간을 책임졌다. 무용가들은 프레임 안에 다양한 이미지를 콜라주해 넣었고 데이비스와 힌톤은 그들이 제시한 헬카의 .. 더보기
말 무리 사이에 앉아 어릴 때부터 유난히 좋아하는 동물이 ‘말’이다. 반려로 삼아 직접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TV를 통해서였지만, 멋진 갈기를 휘날리며 들판을 내달리는 모습을 항상 경탄스럽게 바라보곤 했다. 서부영화나 국내 역사 드라마 등의 전투 장면 중 이 동물이 “히히힝”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안달이 났었다. 단단해 보이는 데다 수려하기까지 한 근육질 자태에 매혹당한 꼬맹이 시절 내내 나는 스케치북이 닳도록 말 그림을 그려댔다. 성년이 되고 사회생활에 절절거리는 오십 대의 나이까지 이른 지금에야 어느 정도 수그러들긴 했다. 그러나 얼마 전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서 우연히 말 무리를 본 순간 다시 심장이 요동쳤다. 수십마리의 말들이 땅을 굴려 들리는 말발굽 소리가 내 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더보기
지금 누구를 쳐다보고 있나요? 카페에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앞사람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앞사람이 눈을 돌려 나를 쳐다봅니다. 눈이 마주친 나는 괜히 죄지은 기분이 들어 얼른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동물들은 먹을 때나 잠잘 때도 항상 위험에 대비해 주변을 경계합니다. 사람들도 자기 일을 하면서 계속 주변을 경계하고 있지만, 동물의 그것과는 좀 다른 듯합니다. 동물들은 주변의 위험에 대비해 살피고 있지만, 우리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살피고 있습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 겉모습만 보고 나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도 그렇게 서로의 시선을 느끼며 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더보기
모두의 역세권 프리미엄 시민의 발이자 도시의 핏줄이라는 지하철. 서울 지하철은 1974년 처음 개통된 이후 현재 10개 노선, 330개 역사, 351㎞의 구간을 통해 연간 약 20억명을 수송한다. 역사 공간은 전철을 타기 위한 단순한 통로 역할에서 도시의 발달에 따라 점차 환승영역이나 인접한 건물의 지하와 연결되는 부분까지 포함되면서 그 규모나 복합성이 날로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간이 광고판이나 상점 이외에는 별다른 기능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면서 지하철 역사는 시민들에게 지하철을 타기까지 마냥 걸어야 하는 지루한 통로에 불과하다. 지하공간은 사계절이 뚜렷한 지상에 비해 항온·항습에 유리하고 또한 버스, 주변 건물 등과 바로 연결되는 장점이 있다. 역세권의 프리미엄은 지상에서 상업적으로만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역 .. 더보기
동굴에서 아파트까지 “더운 한여름 피서로 동굴이 인기입니다.” 장을 발효시키는 자연동굴에 관람객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동굴 관리자는 한여름에도 실내 온도가 16도로 유지된다며 자랑한다. 머루를 발효시키기 위해 조성된 인공동굴 온도도 비슷하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고 왜 구석기인들이 동굴에 거주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동굴은 배후지로서 안전했을 뿐만 아니라 추운 날 따뜻하고, 더운 날 시원한 최적의 생활 공간이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동굴 벽화가 발견되었다. 특히 프랑스 남부 베제레 계곡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베제레 계곡은 석회암 지역이다. 벽화가 발견된 동굴 중 상당수도 석회동굴이었다. 왜 그럴까? 석회벽이 밝은 흰색이라 그림 그리기 좋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뼈가 칼슘(Ca).. 더보기
24시간 사이코 하루하루 별일 없이 사는 것이 기적에 가까워 보일 만큼, 세상은 상상 이상의 사건 사고가 넘친다.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들, 잔혹한 결정들, 자기모순이 선명하지만 자신의 허물에는 한없이 자비로운 비열하고 뻔뻔한 존재들에 둘러싸인 채 24시간 생활하다보니 어느 새, 윤리라든가, 상식, 사회질서가 견인하는 ‘올바른’ 가치는 나약한 개인을 통제하고자 강한 자들이 늘어놓은 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 앞에 도착한다. 이제 비일상은 일상이, 비정상은 정상이, 사악함은 선함이 되었다. 비상한 속도와 현란한 편집으로 전개되는 세상의 격랑에 휩쓸린 채, 보라는 것을 보고, 들으라는 것을 듣고, 생각하라는 대로 생각하면서 ‘나’를 방치한다. 나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기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거리가 필요할 텐데.. 더보기
‘옥인콜렉티브’ 작가 부부의 죽음 미술가그룹 ‘옥인콜렉티브’는 지난 10년 동안 사회와 예술의 상관성을 넓은 맥락에서 가시화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교육·노동·성·장애·지역 등과 얽힌 예민한 동시대 문제를 여러 작품과 전시를 통해 공론의 장으로 소환했고, 사적 가치를 공적 가치로 전치시키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다. 그 시작은 강제철거가 진행 중이던 옥인아파트에서 진행된 1박2일 공공예술 프로그램 ‘옥인아파트 프로젝트’(2009)였다. 이후에도 그들은 미술과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예술로 풀었으며, 그 궁극의 지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더 나은 삶’이었다. 하지만 ‘더 나은 삶’에 옥인콜렉티브의 구성원이었던 이정민, 진시우 작가 자신들의 삶은 들어 있지 않았다. 최근 ‘허망함’과 ‘죄송함’.. 더보기
무너진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무너져내린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사랑에 실패해서, 경쟁에 밀려나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져서 무너진다. 믿었던 사람들과 세상이 무심하게 등을 돌리고 비난해서 무너지고,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었던 신념을 배반당해서 부서진다. 그 자신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망가진 상황에 내려앉기도 한다. 오류와 모순을 헤치고 나서려 해봐야 출구를 찾을 수 없고, 지금보다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없는 친구들은, 차라리 지금 여기 있는 내 존재의 명분을 설득하기 위해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들이 하늘이 무너지고 마음도 몸도 부서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나면, 서로의 어깨가 쓸모 있는 버팀목이었을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도 무너진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삶의 바닥에 도달한 친구들이 보내는.. 더보기
화려한 꽃송이보다는 승부욕에 빠져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학업을 이루는 시기에도 친구들과 경쟁해서 앞서겠다는 생각을 크게 한 적이 없다. 아둔한 머리 탓이기도 하지만 일등이라는 지위 역시 남의 것이라 여길 뿐 피곤하게 거기까지 갈 욕심도 없었다. 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 날을 새운 기억도 많지 않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100m 달리기를 해도 악착같은 경쟁심보다는 뜀박질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등수가 뒤처져도 그러려니 했다. 나름 경쟁자들 틈 속에서 뛰어야 했던 직장전선에 있을 때에도 그 생각은 여전했다. 천성적으로 남과 승부를 내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싫다. 맨 앞자리보다는 중간쯤이 편하고 조직의 리더보다는 보좌의 역할을 하는 것에 더 만족한다. 그렇다고 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보기
커피 꽃향기 좋은 커피에서는 여러 가지 향을 맡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재스민, 민들레, 쐐기풀 같은 꽃향기와 딸기와 감귤 같은 과일향과 초콜릿과 땅콩 같은 견과류 향, 그리고 곡물, 나무향이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여러 자극적인 냄새로 둔감해진 나의 코는 그런 다양한 향들을 구분해 맡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태운 듯한 강열한 쓴 커피 향만이 저의 코를 자극합니다. 점점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지고, 또 그 익숙해진 것보다 더 자극적인 것을 계속 찾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말에 늦잠 자고 일어나 천천히 내려먹는 커피에서는 가끔 그 다양한 향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너무 바빠서 그 다양한 향기를 안 맡으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보기
서울의 속살 채석장 전망대 서울의 풍경은 굽이치는 산들과 언덕들의 자연과 도시가 묘하게 어울린 독특한 매력이 있다. 우리는 높은 곳에 올라 자연이라는 경관을 자신의 깊은 내면세계와 결합해 우리가 경험치 않고 보지 못한 감성의 풍경으로 탈바꿈시킨다. 마주한 풍경을 벗어나도 그 장소는 향수로 우리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게 된다. 풍경은 나를 통해 스스로 사유하며, 나는 그것의 의식으로 성립된다. 세잔의 말이다. 풍경은 거기에 일어나는 여러 상호 관계의 놀이 속으로 우리를 흡수하기도 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긴장감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또한, 그 안의 뭔가 특별한 것이 우리에게 존재한다는 느낌을 일깨우는 것 같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원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꿈에 빠지기도 하고 몽상가가 되기도 한다. 그 속에.. 더보기
[디자인 읽기]인류 최초의 디자인, 주먹도끼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의 뜻은 ‘두 발로 보행하는 원시인’이다. 이들은 나무와 뼈, 돌 등 다양한 재료로 도구를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와 뼈로 만든 도구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돌만 남았다. 그것이 바로 주먹도끼다. 주먹도끼는 1797년 영국 고고학자 존 프레리에 의해 최초로 발견된 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유형의 주먹도끼가 발견되고 있다. 주먹도끼 덕분에 사람들은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주먹도끼는 돌로 깨서 만든 타제석기와 정교하게 갈아서 만든 마제석기가 있다. 전자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고 후자는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오면서 제작 기술이 발달했다. 형태는 대부분 유사하다. 손잡이가 둥글고 끝이 뾰족하며 좌우가 대칭이다. 정성스레 갈아.. 더보기
어두울 때 보이는 것 어둠이 필요하다. 찬란한 빛이 쏟아내는 정보를 처리하며 세상과의 만남을 앞장서 주선해 온 두 눈의 수고로운 세월은 잠시 뒤로하자. 너무 밝은 빛은 오히려 눈을 가리는 법. 지금은 차라리 이 부지런하고 영민한 시각이 그간 축적해 온 경험을 내세워 판단하고 타협하고 수용할 여지를 줄 수 없을 정도의 어둠이 필요하다. 빛에 취한 망막에 기대고 싶은 그 어떤 가능성마저 온전히 차단당한 어둠 앞에 섰을 때, 동공은 더 크게 열릴 것이다. “어둠은 빛의 부재이나, 빛 없이 어둠을 말할 수 없다.” 빛에 제대로 닿고 싶다면 어둠을 파헤칠 일이다. 도달하고 싶은 세상이 있다면, 차라리 그 반대를 살핀다.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일은 종종 당혹스럽지만, 극과 극은 동전의 앞뒤처럼 닿아 있다. 극에서 극으로 가는 .. 더보기
철원역 철원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다. 6·25전쟁 당시 폐허가 된 뒤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제국주의 일본이 이 땅을 강점하던 시절 지어져 그들을 위해 쓰였음을 역사는 모르지 않는다. 서울 용산에서 시작해 북녘땅 원산까지 223.7㎞에 이르는 경원선의 중간역이자 금강산 내금강까지 116.6㎞ 철로의 시발점으로 남과 북을 아우르는 교통요지였다. 당연히 그 시기 건설된 모든 철길의 이용목적에 ‘걸맞게’ 철원역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80명에 이르는 역무원들이 종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한반도 전역에서 수탈한 물자들의 반출처이자 일본 본토의 배를 불리는 젖줄기로서 그 역할이 참으로 지대했을 터다. 땅을 빼앗은 이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땅을 빼앗긴 이들은 절망의 눈빛으로 머문 자리. 땅은 되찾았으나 갈라진 반도 한.. 더보기
소용돌이 조용히 있던 모든 것들이 뒤집히고 있습니다. 아래가 위가 되고, 맑고 깨끗하던 것들이 혼탁해졌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던 일상은 태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듯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너무 조용히 편하게 있어서인지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가 힘이 듭니다. 태풍이 지나간 바다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평온해지지만, 내 머릿속 깊은 곳에 있는 바다는 여전히 태풍이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더보기
미술품 가격을 매기는 데 웬 학력? 미술품 가격과 관련하여 한국 미술계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 ‘호당 가격제’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작품의 크기가 크면 작품 가격도 상승하는 가격 산정법이다. 예를 들어 캔버스 1호(우편엽서 2장을 합친 것보다 약간 작은 크기)가 10만원이라면 10호는 100만원이다. 규격화된 캔버스의 순서를 의미하는 호(號)의 개념상 10호가 1호의 10배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가격은 10배로 뛴다. 예술성보다 물리적 크기에 값을 매기는 ‘호당 가격제’ 외에도 납득하기 불가능한 가격 산정요소는 또 있다. 바로 ‘학력’과 전공 유무 등이다. 그리고 이런 황당한 기준이 자칫 세금으로 구입한 작품에 적용될 상황에 놓였다. 최근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소장품 가격을 재평가하기 위한 용역을 받아 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