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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션 플랫폼 “내 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은 미술 외적인 것들이다. 나는 예술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나는 바깥을 내다보면서 저 버스에는 왜 저런 색깔을 칠했을까, 저 건물을 왜 저런 색일까 생각한다. 일상적으로 지나치기 쉬운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리암 길릭이 예술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종착점은 없다. 예술이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예술이라는 공간을 통해 무엇인가 일어날 법하게 만드는 정도다. 그는 건축 환경의 이념적 규범과 이것이 인간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법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감을 작업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이 문제들에 대처하는 방법들은 종종 매우 다른 시각을 통해.. 더보기
외로운 골목 지키는 의자 하나 큰길 건너 동네 안 풍경이 마치 이리 오라는 듯 신호를 보내왔다. 손으로 휘갈긴 듯 붉은색 글씨로 거칠게 쓰인 현수막들이 한때 이곳의 절박했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서울 우이경전철 삼양역 1번 출구 앞 골목길 초입. 우연히 접한 이끌림의 기운에 응해 골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좁고 뒤틀어진 골목길은 미로처럼 어지러웠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삭막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가전제품들, 전깃줄에 흉물스럽게 걸쳐진 전기매트, 자물쇠를 채운 것도 모자라 나무판자에 X자 형태로 못이 박힌 채 봉쇄된 모든 주택과 상가건물들, 벽과 담장 현관문마다 붙여진 출입금지 경고문, 험한 욕설과 이별의 서운함이 담긴 낙서들, 쓰임새를 잃은 채 머루포도 잎새 넝쿨로 완전히 뒤덮인 CCTV 그리고 사람 키 .. 더보기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친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직접 말로 하는 전화통화 대신에 모두들 온라인 메신저를 이용하여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이모티콘과 이상한 조합의 상형문자들이 섞여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상대방이 어떤 의도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어떤 기분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혹 분위기 파악 잘못하여 글을 올렸다가 오해를 사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잘못된 이미지나 글 하나가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평생 나를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문자 대화가 익숙해져 버린 지금은 전화통화가 오히려 실례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조용한 문자 대화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보기
침묵의 자신감 “제대로 된 화가가 되고 싶다면 먼저 혀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래야 전달하고 싶은 것이 오로지 붓질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 될 테니.” 화가 앙리 마티스가 1942년 어느 라디오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북구 스웨덴의 건축가 시구르드 레베렌츠(1885~1975)는 바로 이 말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대다수 건축가가 과장된 말로 자신을 포장하는 방식과는 달리 그는 침묵의 건축가였다. 60여년에 이르는 창작활동 동안 평생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고 따로 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친 적도 없이 작업실에 은둔하며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하였다. 하지만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은 그가 남긴 건축의 농후한 공간 속에 구석구석 살아 숨 쉬며 오늘날까지 보는 이로 하여금 귀 기울이게 한다. 당시 20세기 중반은 철과 유리의 첨.. 더보기
저격수의 거리 색깔 있는 옷은 입지 말 것. 화려한 색은 건물 꼭대기 곳곳에 몸을 숨긴 채 거리로 총구를 겨눈 저격수에게 손쉬운 타깃이다. 일상을 사는 시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를 걷는다. 어느 날은 3777발의 포탄이 시내로 떨어졌다. 건물 아래 골목길에 몸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다가 한 사람씩 거리를 가로지르며 목적지로 달려간다. 그렇게 그들,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시민들은 매 순간 죽음을 각오하는, 길 위에서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1395일을 살았다. 이슬람교인 보스니아계,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 가톨릭 신자인 크로아티아계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보스니아가 갈등에 휩싸인 것은 서로가 다른 삶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보스니아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세르비아계는 그들과 다른 비전을 제.. 더보기
메롱 습기가 늘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생각대로 안되면 바로 화가 나고, 모두들 “메롱~ 약 오르지” 하며 나를 약 올리는 거 같습니다. 퇴근길 꽉 찬 지하철에서는 옆사람의 뜨거운 체온과 땀냄새가 얼굴을 찡그리게 합니다.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몸을 웅크려 보지만, 퇴근길의 지하철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럴 땐 찡그린 얼굴을 펴고 휴가 때 찾을 상쾌한 바다를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식혀 보아야겠습니다. 더보기
비빌 언덕 가만히 한 사람의 이름을 ‘바라본다’. 그녀를 아는 사람 대부분은 본명인 ‘최정은’보다 ‘비덕’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 뜻이 꽤 알차다. ‘비빌 언덕’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얘기이다. 그녀의 품 넓은 언덕은 보통 밥상 위에 펼쳐진다. 건강한 식재료를 모아 온갖 정성으로 빚어낸 음식들이 마치 예술작품인 양 고고한 자태를 발광한다. 바라보는 순간부터 밥상을 물리게 될 때까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이 밥상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주며 어루만져주기까지 하는 느낌을 예외없이 받는다. 세월호 유가족, 국가폭력 고문피해자들을 포함해 사회적 그늘 아래 힘겨워하던 더 많은 이들이 그랬다. 그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밥상, 사람을 절로 행복하게 하는 치유의 밥상이다. 지난 5월 경.. 더보기
풍요 속 빈곤에 흔들리는 그들 약 반세기 전만 해도 텔레비전을 구입하려면 ‘추첨’을 거쳐야 했다. 흑백에 불과한데도 쌀 스무 가마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할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소수의 부자들은 행여 도둑이라도 맞을까 봐 시청이 끝나면 서둘러 미닫이문을 닫은 채 고이 간직하곤 했다. 문 달린 텔레비전은 이제 생활사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지능형 기술을 통해 모든 사물을 연결하여 상호 소통하는 시대로, 김일 선수의 한·일전 TV 중계를 보려고 집주인의 비위를 맞추던 시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네 삶의 환경은 많이 변했다. 모든 것이 풍족해졌고, 넉넉해졌다. 지난 시간, 미술계 역시 천태만변했다. 예를 들어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은 기존 회화나 조각 외에도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표현의 지층에 영향을 미쳤.. 더보기
화가의 초상 “필립 거스턴은 너무 감동적이에요. 그의 작품을 보면서 계속 작업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받았어요.” 좋은 그림을 만났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미술계 지인들이 필립 거스턴(1913~1980)에 대한 무한 애정을 고백했다. 화가로서 그가 보여준 집념, 선택을 보면서 예술가는 누구인가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유대인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름 ‘골드스타인’ 대신 ‘거스턴’을 사용하면서, 잭슨 폴록 등과 함께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화가로 활동하던 그는, 화면의 순수함과 평평함을 추앙하던 당시 주류 미술 담론 안에 온전히 있었다. “순수함에는 이제 염증이 난다. 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당시 화단의 분위기상 추상화라는 대세에서 비켜나와 화면 안으로 형상을 돌려놓은 것.. 더보기
두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 아끼는 지인이 며칠 전 먼 여행길에 나섰다. 아마 지금쯤이면 커다란 배낭에 한 짐 가득한 여행보따리를 꿰차고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옛스러운 골목길을 돌며 동네 주민들과 희희낙락거리고 있을 듯싶다. 출국 전 일부러 찾아온 그녀의 표정은 기대심에 잔뜩 부푼 어린 소녀처럼 맑고 화사했다. 1년 정도 생각하지만 끝날 즈음이 되어 혹시 마음이 내킬 경우 귀국일을 훨씬 뒤로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에 무조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르라고 등을 떠밀었다. 오래전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자유로운 여행자로 살아갈 꿈을 꾸어온 것을 잘 알기에 드디어 실행에 옮긴 그녀의 선택과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한 장 찍어드릴게요!” 악수를 나누고 떠나기 전 그녀는 가방 속에서 작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더보기
파도에 몸을 맡겨 보아요 요즘 서핑이 인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서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해변은 지금 서퍼들로 꽉 차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인라인이 유행해서 동네 공터에서 모두들 인라인을 타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유행일 때 그것을 안 하면 뭔가 뒤처지는 것 같아,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한번 해보려고들 합니다. 물이 무섭고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저는 인라인도 싫어했고, 서핑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여름휴가 때 맘 편하게 튼튼한 노랑 튜브 끼고 애들과 함께 얕은 바다에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노는 것이 저한테는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더보기
기술의 참된 의미 좋은 건축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논할 때 우리는 그것이 담고 있는 시대성을 이야기한다. 고고학자가 유적의 발굴을 통해 과거를 밝힐 수 있는 것은 바로 건축이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건축은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기술과 재료로 지어야 한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통한옥이나 초가집을 짓지 않고 벽돌로 이쁘게 치장된 건축을 새롭다고 부르지 않는 이유이다. 지난 20세기 건축사를 돌이켜 보아 그 시대를 결정짓는 원형과도 같은 건축을 찾는다면 독일 베를린 캠퍼 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 신관이 바로 그것이다. 이 혁명적 건축은 1968년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어 생애의 마지막 완성작으로 매우 단순한 입방체의 형태를 하고 있다. 모더니즘 거장이자 ‘Less is more.. 더보기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플로어의 미래 관계는 상대적이다. 너는 그가 세상에 다시없을 좋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계기가 있다면, 어제의 우리와 오늘의 우리가 만드는 관계는 달라질 수 있겠다. 다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그 옷이 너에게 찰싹 달라붙는 걸 보며, 내가 멀리하는 음식이 너에게는 보약이 되는 걸 보며, 나에게 추억을 소환해주던 물건이 네 손에 들어가서는 주저 없이 쓰레기가 되는 걸 보며 세상은 온통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전시장에 빼곡한 비치볼은 내 발목 근처에서 오종종 굴러다녔다. 네댓 살쯤으로 보이는 꼬마가 들어 올리자, 가슴팍으로 한아름 안겨든다. 비치볼이 더 이상, 내 무릎 아래에서 보았던.. 더보기
노란 선물 꾸러미 안산에 다녀왔다. 홀로 다녀온 적은 있지만 초대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2014년 4월16일 이후 이 도시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에 얹힌 느낌이 항상 있었다. 초대한 이는 ‘엄마의 노란손수건’이라는 이름의 시민모임. 그분들과 함께하기 위해 라는 제목의 치유적 사진에 대한 강연을 준비했다. 단순한 기념이나 유희적 기록을 넘어 스스로 이루는 행위적 매개물로 사진을 재인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피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강연을 준비하는 내내 가슴에 맺힌 파란 멍을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 사진과 심리상담을 접목한 사진치유자로 활동해 오면서 지난 5년 동안 늘 마음이 쓰인 곳이 안산이었기 때문이다. 강연 분위기는 뭉클하면서도 따뜻했다. 어릴 적 사진으로 자신을 향한 내리사랑도 .. 더보기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 볼까요? 어제는 재미없는 하루였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 볼까요? 어제처럼 평범하고 조용하게 보낼까요? 아니면 새롭고 화려하고 재미있게 보내 볼까요? 오늘도 어제처럼 똑같이 무의미하게 보내기 싫어서, 어젯밤부터 잠도 푹 자두었습니다. 이제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 시원하고 편안한 옷으로 멋지게 차려입고 자신 있게 오늘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그동안 고민하며 미뤄왔던 일도 과감하게 결정하고, 보고 싶었던 사람에게도 연락해 봅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기 위해 힘차게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뎌 봅니다. 더보기
‘껍데기 미술관’ 더 짓겠다는 문체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2019~2023)’을 발표했다. 박물관·미술관의 양적 확대를 골자로 하는 내용도 담겼다. 공공성 강화와 전문성 심화, 지속 가능성 확보라는 3대 목표 아래 추진할 16개의 전략 및 핵심 과제 중 일부다. 문제는 ‘모두가 누리는 박물관·미술관’ 전략에 포함된 박물관·미술관 확충 계획이 과연 미래지향적인 것인지 의아하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국공립 및 사립 박물관·미술관 수는 이미 1124개에 달한다. 5년 전에 비하면 약 23%나 많은 수치다. 그러나 국민의 박물관·미술관 이용률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2018 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박물관·미술관 이용률은 16.5%이다. 2.. 더보기
마스크 “돌도 썩고 브론즈도 썩으나 고대의 부장품이었던 테라코타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잘 썩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테라코타는 1만년 전 것이 있지요.” 권진규(1922~1973)는 “불장난에서 오는 우연성을 기대할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딴 사람에게 마무리 손질을 맞길 일이 없는” 테라코타를 사랑했다. 미술품 복원가 김겸이 확대경을 끼고 권진규의 테라코타 내부를 들여다보았던 경험을 남긴 칼럼을 보니, 예민하고 섬세한 예술가의 초상이 보인다. 대개의 점토작업이 수제비를 뜨는 정도의 밀가루 덩어리 크기로 점토를 떼어내 매만지는 데 반해 권진규는 작은 콩알만 한 크기의 점토를 붙여가며 형상을 빚고 있었단다. 이 전문가는 작가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살아 움직일 듯한 생명의 긴장감이 “고집스럽게 심어 넣은 작은 생명.. 더보기
집으로 가는 풍경 하루 소임을 다한 태양이 아직 빛을 잃기 전이었다. 얼마 전 모내기를 마친 너른 들녘은 초록의 기운을 가득 품은 상태였고 사이사이 놓인 논둑길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딛는 산책길은 꽤나 평화로웠다. 한가로이 풀을 뜯던 소 떼가 눈에 띄었다. 두세 마리씩 따로 모여 여러 무리를 이루었기에 처음엔 각자 주인도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평화로운 저녁풍경을 만끽하게 하는 자연의 일부쯤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곧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덩치가 가장 큰 소 한 마리의 ‘음메에’ 하는 울음소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다른 소들이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이 색다른 풍경에 집중했다. 소들의 행동은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엉키거나 거침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더보기
싸움닭 항상 화가 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바로 폭발할 거 같습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쏟아붓습니다. 마치 독이 올라 볏을 뻣뻣이 세우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싸움닭 같습니다.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화를 채워놓고 달랠 수 있는 조그마한 여유공간을 준비해 놓는다면, 이 싸움을 멈출 수 있을까요? 머릿속으로는 참아야지 참아야지 되새겨 보지만, 얼굴 표정은 머릿속을 거치지 않고 않고 바로 튀어나와 또 싸움닭이 되어버립니다. 더보기
분수의 꼭짓점 ‘분수’는 물의 판타지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을 숙명으로 알았던 물이 모처럼 하늘로 솟아오른다. 분수의 힘에 의지해 시원하게 하늘을 가르지만, 중력과 속도의 영향을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정점에 다다르면 이내 땅으로 쏟아져 내린다. 하늘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는 물줄기를 보며 권현빈은 물방울이 가장 높이 치솟아 ‘하늘을 톡톡 치는’ 순간에 시선을 멈췄다. 물방울이 분수의 꼭짓점에 닿는 순간은 너무 짧다. 정점은 한계점의 다른 말이다. 정점에 도달하면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물줄기는 세상을 움직이는 커다란 법칙을 전한다. 간혹 어떤 물방울은 변수를 만나 정해진 동선에서 벗어나거나, 조금 더 높은 하늘을 찍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물방울도 결국은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분수의 포물선 위로 서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