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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당 길사에 다녀왔다. 충효당 길사란 서애 류성룡(柳成龍·1542~1607)의 종가인 충효당에서 종손이 바뀐 것을 조상님께 고하는 제사다. 한 종가에서 종손이 바뀌는 것은 30~40년 만에 한번 있는 종손 교체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로, 각 문중의 어른들이 모였다.



길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을 탔다. 먼동이 트면서 드러난 한국의 산천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류성룡이 보여준 조선의 생각가치는 무엇일까? 그 핵심에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반성적으로 기술한 <징비록(懲毖錄)>이 있다. 그 가치는 지난 상처로 미래를 대비하는 태도다. ‘징비’는 시경의 ‘작은 것을 삼간다는 소비(小毖)’의 첫 구절이다. ‘징비’의 부분을 나름대로 현대어로 쉽게 풀어본다.

“지난날의 상처를 살펴, 앞날의 우환을 대비한다. 벌을 만지다가, 아픈 독침에 쏘인다. 처음에는 뱁새인 줄 알았는데, 날아가는 큰 새다. 아직도 집안의 어려움을 다 감당하지 못하여, 아직도 쓰디쓴 풀숲에 모여 있다.”

벌은 간신이고, 새는 충신을 비유하지만, 역시 현실은 쓴 풀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작은 일부터 잘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류성룡은 하회마을의 강 건너 옥연정사에서 징비록을 쓰고, 그 후 은거하여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 초고의 글씨는 비장하다. 전쟁을 반성하는 마음의 고통일까? 빠르게 써내려 간 글씨체에 회한이 묻어난다. 어떤 명분이든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게 하는 것에 대한 고통스런 책임감이다.

<징비록>은 비극적인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국내 상황뿐만 아니라 국제정세를 살펴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조선이 난세를 겪은 이유를 20세기 초 일본 학자들은 당쟁이 문제였다는 올가미를 씌웠다. 한국 사람들마저도 종종 조선문화를 당쟁으로 바라본다. 이제 그 올가미를 벗자. 조선의 생각가치는 당쟁이 아니라, 애민정신의 유학가치에 기반을 둔 생각의 힘과 태도다. 애민정신이 기반이 될 때, 과거의 상처가 미래를 대비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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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