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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선승혜의 그림친구

태권도, 내 손과 발로 길을 만들다 마음과 몸의 단련은 하나다. 마음의 수양은 몸의 단련으로 완성된다. 학수고대하던 태권도 수련을 시작했다. 태권도 사범께서 태권도는 발을 움직이는 ‘태(跆)’와 손을 움직이는 ‘권(拳)’으로 길(道)을 연다는 의미라고 했다. 내 손과 발로 길을 연다는 삶의 태도에 도복을 여며본다. 태권도는 개인의 심신단련뿐만 아니라 문화로서 무예(武藝)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무예의 기본은 예의다. 상대방과 정정당당하게 대결하고, 승패에 관계없이 예를 갖추는 삶의 기본을 몸에 익혀본다. 태권도를 배우는 것은 어린 시절 보던 애니메이션 (1977) 덕분이다. 파란해골 13호가 세계 핵물리학자 회의가 열리는 수중공원을 공격하고, 장박사를 납치해 지구의 왕이 되려는 음모를 꾸민다. 태권동자 마루치와 아라치가 파란해골 13호와.. 더보기
국제감각과 문화영토 국제감각이란 세상을 보는 관점이자 힘이다. 나와 관련된 세상이다. 문화인식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문화영토다. 세계인식으로 힘의 균형을 잡고, 문화인식으로 감성의 조화를 기른다. 세계지도는 지리지인 동시에 세계인식을 반영한다. 우리나라가 그려낸 세계지도로 무엇이 있을까? 1402년 조선의 태종은 조선건국 3년차에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하게 했다. 이 지도는 현존하는 세계지도 중에서도 그 중요성이 주목받는다. 이탈리아의 콜럼버스가 아시아의 인도로 가기 위해 탐험을 떠난 것이 1492년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얼마나 일찍 제작된 세계지도인가를 알 수 있다. 15세기 초 조선,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 아프리카대륙까지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아쉽게도 원본은.. 더보기
멀리서 오는 친구를 가졌는가? 우정을 생각한다. 한 서류에 친한 친구 두 명을 쓰는 칸이 있었다. 누구를 쓸까?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친구 한 명과 늘 변함없이 지지해주는 대학선배의 이름을 썼다. 잠시 나는 그들에게 좋은 친구일까라고 아득한 심연에 빠졌다. 논어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세 가지 감정으로 시작한다. 공부의 기쁨, 우정의 즐거움, 인정받지 못한 노여움이다. 공자는 배우면 기쁘고,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즐겁고,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군자라고 했다. 기쁨은 나로부터, 즐거움은 우정에서, 노여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우정은 소리를 넘어선 울림이다. 통일신라의 최치원은 선승 무염(無染)을 위해 비문을 썼다. 그는 무염을 회상하며 도연명이 즐겨 말한 ‘줄 없는 거문고’라는 ‘무현의 금’을 인.. 더보기
행운감수성 운명은 친절할까? 삶의 순간마다 천사들이 나를 돕고 있다. 소소한 행운들을 잘 알아차리는 감성이 행운감수성이다. 금방 도착하는 지하철, 때마침 맑은 날씨, 좋아하는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올 때, 별것 아닌 일들이 사실은 모두 행운이다. 알고 보면 허점투성이인 삶을 붉게 물들인다. 행운감수성은 작디작은 일마저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 점점 운이 좋아지는 특이한 작동원리로 움직인다. 행운감수성은 평범한 나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내 삶에 배경음악을 틀 것인가는 내 몫이다. 불교에서 음악을 관장하는 신인 건달바(Gandhava)는 향을 먹고 살며 할랑할랑하게 나타난다. 천상과 지상의 사이에서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음악을 들려줄 때, 아름다움의 행운을 알아채는 것이 감성이다. 백제 용봉향로에서 음악으로.. 더보기
지옥과 이슬 한 모금의 이슬이 소중한 까닭은 삶이 지옥이 아닌 적이 없어서다. 사람은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유한한 생명체다. 삶은 생명의 기쁨인 동시에 사멸의 고통이다. 고통이 강할수록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상향을 갈망한다. 감로도(甘露圖)는 지옥에서 어머니를 구하려는 강렬한 자식의 마음이다. 목련존자가 아귀도에서 먹지 못하는 고통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구원의 방법을 물은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엄격한 유교사회 조선에서도 감로도와 같은 불교회화가 허용된 것은 이런 효심 때문일까. 구원의 태도란 어머니를 구하는 마음으로 대중의 고통을 구원한다는 뜻이 숨어있으리라. 18세기에 그려진 감로도는 중앙에 커다란 아귀가 있고, 하단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단에는 구원자가 등장한다. 왜 이렇게 아귀를.. 더보기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마음을 합쳐서 같이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지혜가 한국미학이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회복탄력성이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 크고 작은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회복탄력성이란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다시 일어나는 힘이다. 심지어 사람은 고난을 겪고 나서 마음이 더욱 풍부해진다고 한다. 회복탄력성은 생존과 진화의 원동력이다. 조선 후기 임희지(林熙之·1765~?)의 난초 그림을 본다. 그는 조선 말 중인 출신으로 중국어 번역을 담당하는 한역관이었다. 그는 중인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높은 관직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깨끗한 풍모를 지녔다고 지인에게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서울의 중인들과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옥류동의 송석원에서 결성한 문학 동아리인 송석원시사에 참가했다. 그의 행복은 벗들과 함께 나.. 더보기
신나는 모험 삶에서 몇 번이나 모험을 할까. 지금은 고독의 성찰보다 생존의 야성을 되살릴 때다. 강렬한 야성의 활력소는 호기심과 모험심이다. 때로는 역경에 부딪혀 살아남고자 하는 절박함은 생명의지를 선사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모험을 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이라기보다 수직상승을 향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트리나 폴러스·시공사)이라는 책에서 위로만 오르려면 욕망은 결국 지금을 잃어버린다고 경고한다. 신나는 모험은 수직상승보다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탐험의 삶이다. 신라 5세기 무덤에서 봉황 머리 모양 유리병과 유리잔이 출토되었다. 누가 가지고 왔을까? 유리병 모양은 오이노코에(Oinochoe)라고 불리는 그리스 로마의 병과 형태가 같다. 소담하게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 더보기
[선승혜의 그림 친구]디지털세대의 감성 혁명 21세기는 디지털 적응 여부로 세대가 나뉜다. 영화의전당 LED 공모전과 광복 70년 대한민국미술축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디지털아트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는 김성필(홍익대 3학년)에게 4가지를 묻고 배운다. - 디지털로 작업하면서 언제 아름다움을 느낍니까? “디지털 매체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느끼는 그리움-그리고 그 그리움에서 파생되는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당장은 만질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때 제 작업에 물성을 부여해 현실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움이 제가 상정한 하나의 유토피아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편으로는, 제 작업이 데이터로서 존재한다는 점이 재미가 있어요.” - 디지털 세계에서 감정은 어떻습니까? “감정은.. 더보기
왜 얼굴에 집중할까? 얼굴은 얼이 담긴 틀이다. SNS에 수많은 셀카 사진들이 올라온다. 예쁜 얼굴사진을 올릴수록 무수한 ‘좋아요’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얼굴을 보는 것은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 온라인이라는 가상현실조차 얼굴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초상화의 마력 같은 힘은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사람의 내면을 전달하고 그려서 비춰내는 데에서 나온다. 얼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본능이다. 얼굴 표정은 상대방과 관계맺기에 가장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외로워요’로 보이면 보호본능을, ‘즐거워요’로 보이면 웃음을, ‘화났어요’라고 보이면 두려움을 느낀다. 얼굴에서 상대방의 마음상태를 전달받아서, 내 마음이 반응에 들어간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 반응하지 않고, 예쁜 얼굴.. 더보기
[선승혜의 그림 친구]“꿈을 선물하다” 마음을 사로잡는 강렬한 선물은 꿈이다. 겹겹이 쌓인 마음 깊은 곳의 꿈을 심어두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선물이 있을까? 막상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당황스럽다. 행복이라는 모호함으로 대답한다. 과연 이루고 싶은 꿈이 행복인가? 상상의 꿈이 있다. 백제 무령왕(462~523) 무덤의 출토품은 대부분 왕비를 위한 물건들이다. 왕이 그녀에게 보내는 선물들이다. 무령왕의 팔베개와 같이 그녀를 보듬어준 무령왕비의 베개를 본다. 왕비의 베개는 나무를 깎아서 만들고 주칠을 했다. 금을 가늘게 잘라 붙여서 거북이 등껍질을 연상시키는 육각형으로 구획을 나누었다. 그 안에 해, 달, 봉황, 용 등 갖가지 모티프로 세상을 그려 넣었다. 죽음 뒤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긴 여정을 위해 꿈을 선물한 것이다. 베개 좌우에는 두 마.. 더보기
하나하나의 마음가짐 떠도는 마음을 잡고 하나에 온 마음을 다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스마트폰 덕분에 수많은 친구가 생겼을까? 도무지 하나에 마음을 모으기가 어렵다. 수많은 대체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무의식을 끌어당겨서 시간을 쏟게 하는 디지털 놀이판에서 노닌다. 정작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뒤쫓는다. 그나마 곁에 있던 한 사람의 마음이 이미 떠나버린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 떠남조차 무겁지 않게 자유라고 선언했다. 한국화의 거두 송수남(1938~2013)의 ‘붓의 놀림’(2000) 앞에 선다. 거대한 하나의 붓결마다 응축된 힘에 마음이 멎었다. 하나, 하나, 붓결을 천천히 본다. 결마다 흔들림 없이 곧게 내려오면서도 강압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붓이 종이에 닿을 때, 먹물.. 더보기
멀리 보는 마음가짐 마음이 답답할 때 멀리 보면 좋다. 산에 오르면 멀리 보이기 때문에 등산이 인기가 많다. 산에 올라 멀리 보이는 풍경을 보면, 마음에 쌓이고 맺힌 응어리들이 풀어지는 듯하다. 직접 산에 갈 수 없다면, 산수도를 편다. 작은 산수도라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산에 오른 듯 마음이 풀어지는 효과를 느낀다. 왜냐하면 멀리 보기 때문이다. 이징(1581~?)이 그린 산수도를 편다. 산수도를 멀리 보는 법은 ‘높게 보기’(高遠), ‘수평으로 보기’(平遠), ‘깊게 보기’(深遠)의 삼원법이라고 부른다.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처럼 중심점을 모아서 보는 원근법과 다르다. 산수도는 멀리 보는 법을 바탕에 둔다. ‘높게 보기’는 자신을 낮추는 마음가짐이다. 산을 낮은 곳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법이다. 높게 올려다보.. 더보기
나라의 미학 나의 미감은 나의 땅에서 나온다. 은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한다. ‘나라’라는 단어로 가장 먼저 시작한다. ‘나라’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나’와 관계가 있다고 직감한다. ‘나라’는 내가 사는 땅으로서,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터전일 뿐만 아니라, 생각과 느낌이 자라나는 문화적 바탕이다. 타자와 다른 나를 무엇으로 표현할까? ‘조선국신사 등성행렬도’는 1711년 조선통신사가 왕의 국서를 가지고 일본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대마도의 번주가 당시의 행렬을 다와라 기자에몬이라는 화가를 시켜 그린 기록화로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그림 속에서 조선의 대표사절단임을 보여주는 깃발이 형명기(形名旗)다. 흰색 바탕에 용이 그려진 깃발로 조선의 국왕을 상징해 통신사 행렬의 지휘 깃발이다. 하지만 용.. 더보기
사랑으로 본 태극함 태극(太極)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태극은 궁극적인 원리와 가치로서 끝없는 무극이다. 태극은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영원성과 무한성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꿈꾸는 무한한 가치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인 사랑이기를 바란다. 태극이 사랑의 극치라는 의미에서 ‘인극(仁極)’으로 부르고 싶다. 역시 사람의 궁극은 사랑이다. 사랑이 무얼까? 조선시대의 작은 백자합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 합에는 태극과 건곤감리가 그려져 있다. 그 문양은 조선시대에 향로나 연적에도 종종 사용되었던 태극과 주역의 상징이다. 그 상징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랑을 묻는다. 사랑은 품이다. 사랑이란 중앙에 음으로 양으로 사람을 아끼는 끝없는 품이 있고, 주변에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하는 우주와 자연이 감싸주.. 더보기
한국 종이의 ‘참을성과 질김’ 중국 명대 문인화의 거두 동기창(1555~1636)이 맑은 가을날을 소재로 ‘강산추제도’를 그렸다. 그가 이 명작을 완성한 것은 한국 종이의 미감 덕분이다. 동기창은 그림에 “거울 표면처럼 부드러운 한국 종이를 구하여 영감을 받아서 이 그림을 그렸다. 만력황제에게 보내는 종이로, 조선 왕실의 인장이 보인다”라는 글을 써넣었다. 그가 조선의 외교사절단이 중국 황실에 선물한 한국 종이를 구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 종이는 ‘고려지’라는 국제 브랜드로 인기가 높았다. ‘강산추제도’에는 기운생동을 얻기 위해 “만권의 책을 읽고, 천리를 여행한다”라는 동기창의 깨달음이 담겨져 있다. 동기창이 추구한 문인의 기운은 무엇일까. 어떤 점에서 한국 종이의 미감과 통할까. 한국 종이의 미감은 참을성이다. 한국 종이는 닥나.. 더보기
불꽃처럼, 생명처럼 백제 무령왕릉은 왕과 왕비가 1400년 넘게 세월을 함께한 사랑과 축복의 힘이 강하다. 신라의 황남대총을 보면 부부가 북분과 남분에서 각각 떨어져 세월을 보냈지만, 백제의 무령왕은 벽돌무덤을 짓고 왕비와 한곳에 묻혔다. 무엇이 더 좋은지 알 수 없으나, 역시 무령왕과 왕비의 금슬은 부럽다. 백제 무령왕은 불꽃 같은 힘과 풀꽃 같은 생명력을 준다. 무령왕과 왕비의 금관에는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힘과 풀꽃처럼 피어오르는 생명이 담겨 있다. 백제의 불꽃 같은 아름다움은 신라 금관이 보여주는 나뭇가지의 직선미와 사슴뿔의 힘과 다르다. 백제와 신라의 오묘한 미감의 차이는 우리 문화에 다양한 기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령왕의 금관은 불꽃이다. 금관의 화염이 유연한 곡선미로 솟아오른다. 왕의 금관은 화염이 자유롭.. 더보기
“지난 상처로 미래를 대비하다” 충효당 길사에 다녀왔다. 충효당 길사란 서애 류성룡(柳成龍·1542~1607)의 종가인 충효당에서 종손이 바뀐 것을 조상님께 고하는 제사다. 한 종가에서 종손이 바뀌는 것은 30~40년 만에 한번 있는 종손 교체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로, 각 문중의 어른들이 모였다. 길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을 탔다. 먼동이 트면서 드러난 한국의 산천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류성룡이 보여준 조선의 생각가치는 무엇일까? 그 핵심에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반성적으로 기술한 이 있다. 그 가치는 지난 상처로 미래를 대비하는 태도다. ‘징비’는 시경의 ‘작은 것을 삼간다는 소비(小毖)’의 첫 구절이다. ‘징비’의 부분을 나름대로 현대어로 쉽게 풀어본다. “지난날의 상처를 살펴, 앞날의 우환을 대비한다. 벌을.. 더보기
백제, 그 웃음의 힘 석수(石獸)야, 너는 백제 무령왕릉의 수호 동물이다. 돌로 만든 동물이라는 의미로 석수라고 부른다. 애칭을 붙여주면, ‘통통 수호 전사’가 어떨까. 1971년 무령왕(462~523)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너도 세상에 소개되었다. 네가 무령왕의 무덤을 지켰으니, 벌써 1500살도 넘었구나. 석수야, 너를 보면 웃음이 난다. 큰 눈이 툭 튀어나오고, 입을 헤벌린 모습은 보는 이를 웃게 한다. 수호 동물은 악귀를 쫓으려고 무섭게 생겼다는데, 너는 반대로 웃긴다. 맞다. 너의 수호전략은 두려움보다 웃음이구나. 그래, 웃음은 적까지 친구로 만들어 버린다. 석수야, 네가 무령왕과 왕비를 지켰구나. 부드러운 능선 속에 감추어진 무덤은 다행히 일제강점기의 도굴을 피했다. 천만다행이다. 네가 무덤을 잘 지켜서 그런 듯하.. 더보기
한·중·일, 도원의 꿈 한·중·일 정상회의가 곧 열린다고 한다. 외교가 국가이익의 각축장이라면, 문화는 화합의 열쇠다. 과연 한·중·일이 같은 이상을 품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도원(桃源)’을 보게 하라. ‘도원’은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이다. 그 마을에 한·중·일 정상들의 꿈도 있기를 바란다. 20세기까지 한·중·일은 한자문화권에서 같은 고전을 읽고 생각하는 사고공동체였다. 다시 한·중·일이 공유해온 고전에서 공통의 화두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도원’은 동아시아에서 이상적인 사회의 고전적 상징이다. 중국 동진시대에 지방관료였던 도연명(365~427)이 쓴 ‘도화원기’라는 짧은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한 어부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곳에 이른다. 배에서 내려 동굴을 통과하니, 남녀노소가 평화롭.. 더보기
슬픈 전설의 역사 천경자 화백(1924~2015)은 ‘슬픈 전설’과 화려한 작품으로 살아간 20세기 한국화의 전설이다. 그의 부고 역시 전설처럼 세상에 알려졌다. 마지막까지 ‘슬픈 전설’을 놓지 않은 삶이다. 천경자의 전설은 20세기 한국에서 예술가로, 여성으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한국의 역사다. 정치사가 한국 근현대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예술과 삶으로 방증한다.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는 50대에 22살을 기억해낸 자화상이다. 그녀가 22살이던 1945년에서 70년이 지난 올해 ‘슬픈 전설’은 역사가 되었다. 천경자의 슬픈 전설은 의 뱀과 장미를 떠올리게 한다. 욕망의 뱀. 머리에 뱀 4마리가 오글거린다. 뱀은 어린왕자에게 “사람들이 있어도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야”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