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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화가와 화상, 그 애증의 관계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화가들과 사조들이 명멸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름이 붙어있는 많은 화가들과 사조들이 미술사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다만 미술사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미술가 무리를 넘어선 자들만 우선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우리 곁에 남았을 뿐이다.

고흐가 생전에 그림을 한 점 밖에 팔지 못했던 시절, 당시 사람들은 그림을 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고흐의 동생 테오가 형의 작품을 단돈 100프랑에 팔던 시절 같은 화랑에서 프랑스 화가 알프레드 드 뇌빌(Alfred de Neuville, 1852~1941)의 그림은 15만 프랑에 팔렸다.

화가들의 경제적, 세속적 성공은 그가 살아있던 시절에 이루어졌다면 더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았을 터이지만 모든 화가들에게 그런 영광이 찾아드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경우는 어이없게도 그가 어렵게 살다 죽고 나서 그 생전의 비운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되어 부러움과 함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미술시장의 메커니즘에 따르면 이런 일은 단순하게 운명이 결정지어주는 것은 아니다. 신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마법의 힘, 가치 없는 것을 돈을 주고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귀한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이 화가들에게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마치 사제가 밀떡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를 ‘주님의 피’로 변화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화가들의 것이 아니라 화상(gallerist)들의 몫이다.

이들은 문화적 재화인 미술품을 경제적 재화인 ‘돈’으로 바꾸어 낼 줄 아는 환전상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물적인 감각과 천부족인 사업 감각으로 작가와 그림을 고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미술시장이라는 체제가 만들어내는 신화가 작품의 경제적인 가치의 척도가 된다. 미술시장에서 전설 같은 이익을 가져다 준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런 화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무명의 청년작가를 발견하고 그를 지원하고 후원하면서 많은 그림을 확보한다. 그 후 그가 유명해지면서 그 화상은 천문학적인 돈방석에 올라앉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화상들이 이렇게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화상으로서의 본분(?)을 벗어나 작가와 작품에 대해 작가 못지않은 열정으로 덤벼들었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해서 불우한 말년을 맞은 이들도 많다. 경우에 따라 돈만 아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화상들이지만 이들 중에는 돈만 아는 이들, 돈도 알고 그림도 아는 이 그리고 돈 보다 그림이 좋아 실패한 화상들로 나뉜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와 다를 바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돈도 벌고 명성도 얻는 동시에 미술사에서도 화랑과 화상들의 감각과 의지는 때로는 새로운 미술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하고 실험적인 미술활동의 아카데믹한 평가를 이끌어 냄으로서와 미술사 발전에 한 몫을 하기도 한다.

인상파를 키운 폴 뒤랑 뤼엘.


현대미술의 단초가 된 인상파는 폴 뒤랑 뤼엘(Paul Durand Ruel, 1831∼1922)이라는 파리의 화상이 없었다면 미술사에 등재되지 못 했을 것이다. 또 20세기 미술사를 관통하면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피카소 역시 프랑스의 화상이자 출판업자였던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 1868~1939)와 만남을 통해 그의 천재성은 발휘될 수 있었다. 그는 드가와 세잔, 마티스와 같은 무명 화가들을 발탁해서 천부적인 안목과 비즈니스 감각의 조화를 통해 작가들을 지원해 줌으로써 화상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입체파 작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다니엘-헨리 칸바일러


칸 바일러(Kahnweiler, Daniel-Henry,1884~1979) 화랑과 입체파, 오늘날의 구겐하임미술관의 모태가 된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1898~1979)의 금세기 예술화랑(Art of this Century Gallery)과 추상 표현주의, 베를린 슈투름(Der Sturm) 화랑을 열고 같은 이름의 잡지를 발간하면서 코코슈카 등 표현주의 미술을 미술사에 등재시킨 헤르바르트 발덴(Herwarth Walden,1879~1941),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야스퍼 존스, 앤디워홀, 로버트 라우젠버그 등을 키워낸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1907~1999)의 존재 등을 살펴보면 미술사에 새로운 유파가 등장할 때 마다 화랑의 후원과 이해아래 발전해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또 1955년 ‘움직임’이라는 전시를 개최한 드니즈 르네(Denise Rene, 1913~ )는 ‘키네틱 아트’의 산파로 미술사에 당당하게 그 이름을 등재시켰다.

이렇게 미술사를 풍성하게 해준 패트론(Patron)으로서의 화상의 면면을 살펴봄으로서 그들의 삶을 지배한 것이 돈이었는지 아니면 예술에 대한 열정과 혜안이 그들에게 부를 가져다주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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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